심장은 수태 후 4주 만에 스스로 뛰기 시작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작동하는 우리 몸의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다.
심장의 강력한 힘은 예부터 종교적, 문학적 테마가 돼 왔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일찍이 심장 근육을 자세히 스케치하며 과학적 접근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심장 안쪽의 특이한 근섬유 구조는 지금까지 그 역할과 기능이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었다.
최근 미국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를 비롯한 국제 공동연구팀이 심장 안쪽 표면을 지지하고 있는 복잡한 근섬유 망(mesh of muscle fibers)의 기능을 조사해, 다빈치가 제기한 의문에 답하는 한편, 심장 근육 모양이 심장의 기능 수행과 심부전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19일 자에 발표됐다.

심장 2만 5000개 MRI 영상과 유전 데이터 분석
발달 초기에 심장은 내부 표면에 기하학적 패턴을 형성하는 섬유주(trabeculae) 혹은 섬유 다발로 불리는 복잡한 근육 섬유 네트워크를 성장시킨다. 이 섬유주는 조직 구성요소의 하나로, 장기를 별도의 방으로 분할하거나, 조직을 지지 및 고정하는 다양한 막대 모양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섬유주는 발달하는 심장에서 산소 공급을 돕는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되나, 성인이 된 뒤의 기능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심근 섬유주와 이 섬유주의 눈송이 같은 프랙털 패턴을 16세기에 처음으로 스케치한 바 있다. 다빈치는 이런 모양의 섬유주가 심장을 통해 흐르는 피를 따뜻하게 한다고 추측했으나, 섬유주가 갖는 실제의 중요성은 최근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섬유주의 역할과 발달을 이해하기 위해 인공 지능을 사용해 심장 2만 5000개의 자기공명영상(MRI) 사진과 심장의 형태 및 유전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리고 이 분석을 통해 섬유주가 어떻게 작동하고 발달하는지 그리고 섬유주의 모양이 심장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냈다. 영국 바이오뱅크가 이 연구를 위해 자료를 제공했다.

심근 섬유의 프택털 패턴이 심부전에 영향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섬유주의 모양이 심장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한편 심장 질환과도 연계될 가능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환자 5만 명의 유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심근 섬유의 다양한 프랙털 패턴이 심부전 발병 위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국에서는 약 500만 명이 울혈성 심부전(congestive heart failure)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섬유주에 대한 추가 연구는 일반적인 심장 질환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더 잘 이해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탐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심장 근섬유의 프랙털 패턴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인체 DNA의 여섯 개 영역을 찾아내는 성과도 올렸다. 연구팀은 흥미롭게도 이 가운데 두 영역이 신경세포의 분기를 조절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유사한 메커니즘이 발달 중인 뇌에서도 작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것.
연구팀은 또 골프공 표면의 작은 홈들이 공기 저항을 줄이고 공이 더 멀리 날아가도록 돕는 것처럼, 심장 심실의 거친 표면은 심장이 박동하는 중에 피가 더 효율적으로 흐르도록 한다는 점도 제시했다.

“심부전 연구의 새 방향 제시”
논문 저자인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의 한나 메이어(Hannah Meyer) 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심근 섬유주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를 크게 향상시켰다”고 말하고, “특히 다학제간 연구팀이 협동해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고 밝혔다.
유전학과 임상 연구 및 생명공학자 팀이 잘 협조해 성인 심장의 기능에서 심근 섬유주(myocardial trabeculae)의 예상치 못한 역할을 발견했다는 것.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EMBL) 부소장인 이완 버니(Ewan Birney)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는 기본적인 인간 생물학의 매우 오래된 질문에 답을 했다”며, “대규모 유전자 분석과 인공지능 수행을 통해 생리학에 대한 이해를 전례 없는 규모로 재시동했다”고 평가했다.
영국 MRC 런던 의과학 연구소 임상 과학자 겸 컨설턴트 방사선학자인 데클런 오리건(Declan O'Regan) 박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500년 전에 스케치한 복잡한 심장 근육이 인간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제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이번 연구는 심부전 연구에서 매우 흥미로운 새 방향을 제시한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 프로젝트에는 미국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와 EMBL 산하 유럽생물정보학연구소(EMBL-EBI), MRC 런던 의과학 연구소, 하이델베르크대 및 이태리 밀라노 과학기술대 연구팀이 참여했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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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0-08-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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