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처럼 물컹물컹하고 호두 알맹이처럼 쭈글쭈글한 주름이 있는 분홍색의 물질. 무게는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심장에서 분출되는 피의 15%를 소비하며, 인간이 호흡하는 산소의 20~25%를 사용하는 인체 부위.
1천억 개 정도의 뉴런과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는 1천조 개의 시냅스로 이뤄진 고도의 복잡한 통신망. 고작 냉장고 조명을 켜는 에너지로 방대한 외부의 정보를 인식해 기억으로 저장하고, 사고하며,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곳.
뇌에 대한 연구는 아직 상당 부분이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뇌의 신비를 탐구하는 뇌과학을 인류 최후의 학문이자 노벨상의 보고라고 일컫기도 한다.
최근 뇌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기억과 관련해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연구팀은 두려운 기억이 뇌에 저장되기 전에 지울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사이언스’ 최신호에 발표했다. 우리의 뇌는 학습된 단기기억을 ‘응고화’라는 과정을 통해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데, 이처럼 기억이 응고화되는 과정을 방해하면 기억의 형성을 막을 수 있다는 것.
연구팀은 이를 위해 먼저 실험대상자들에게 별 의미 없는 사진 한 장을 보여줌과 동시에 전기쇼크를 가해 사진을 볼 때 두려움에 대한 기억이 형성되도록 했다. 그 후 실험대상자를 두 그룹으로 나눈 다음 한 그룹에게는 기억이 응고화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지난 다음 전기쇼크 없이 사진을 계속 보여주고, 다른 그룹에게는 기억이 응고화되기 전에 전기쇼크 없이 사진을 계속 보여주며 응고화되는 것을 방해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앞의 그룹은 사진에 관한 두려운 기억이 남아 있었지만, 기억의 응고화에 방해를 받은 그룹은 사진과 관련된 두려운 기억의 흔적들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두려운 기억을 저장하는 뇌 부위인 편도체의 핵군을 자기공명영상으로 촬영한 결과에서도 증명됐다고 연구팀은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 연구결과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나 공황장애, 고소공포증 등의 각종 공포증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잠자는 동안 받아들인 정보도 기억해
한편, 잠자는 동안 외부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뇌가 기억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의 연구팀은 잠자는 동안 사람들이 기분 좋은 냄새를 맡도록 훈련할 경우, 깨어 있을 때와 같은 조건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연구결과를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최신호에 게재했다.
먼저 연구팀은 55명의 건강한 실험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잠을 자는 동안 샴푸나 탈취제와 같은 좋은 냄새와 썩은 생선이나 고기와 같이 나쁜 냄새에 노출시키고, 각 향기에 대해서 연관되는 특정한 소리를 들려줬다.
실험참가자들은 잠을 자면서도 좋은 냄새와 연관된 소리를 들을 때는 강하게 냄새를 맡았지만, 불쾌한 냄새와 연관된 소리에 대해서는 약하게 반응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난 후 냄새가 없더라도 좋은 냄새와 연관된 소리를 들려주면 강하게 냄새를 맡고, 나쁜 냄새와 연관된 소리를 들려주면 약하게 냄새를 맡는 행동을 취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 더구나 실험참가자들은 냄새와 소리 사이의 관계를 학습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이처럼 냄새를 맡는 강약의 반응은 REM(rapid eye movement) 수면단계에서 연관성을 학습한 참여자들에게 조금 더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동안 수면 중 학습 가능성에 대해 많은 연구들이 진행돼 왔지만 실제로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수면과정에서 학습을 할 수 있는 능력에는 확실한 한계가 있지만, 수면학습을 통해서 행위를 변화시키는 연구와 식물인간 및 코마 상태와 같이 변화된 의식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학습의 형태를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같은 멜로디를 들으면서 낮잠을 잘 경우, 그렇지 않을 때보다 깨어난 후 연주를 더 잘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연구팀은 실험참가자들에게 인위적으로 만든 두 가지 곡조를 연주하는 방법을 학습시켰다. 그 다음 실험참가자들이 90분간의 수면을 취하는 동안 두 곡 중 한 곡은 계속 들려주고 나머지 한 곡은 들려주지 않았다.
그 결과 잠에서 깨어난 후 잠자는 동안 들었던 멜로디는 키를 눌러 재현할 때 실수가 거의 없었으나, 들려주지 않았던 멜로디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결과에 대해 연구팀은 잠자는 동안 어떤 새로운 것을 학습한 것이라기보다는 최근 획득된 정보의 재활성화에 의해 기존 기억이 강화되는 현상이라고 밝혔다. 즉, 완전히 새로운 것을 잠자는 동안 듣는 건 별로 효과가 없지만, 잠자기 직전에 학습한 것을 잠자는 동안 들을 경우 기억이 강화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수면시간이 너무 길거나 짧을 경우 뇌 노화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것도 뇌에 좋지 않다. 수면 시간이 너무 길거나 짧은 사람은 뇌의 노화가 2년 정도 앞당겨진다는 연구결과가 제시됐기 때문.
미국의 간호보건 연구를 통해 수집된 1만5천명의 중년 여성들 데이터를 14년 동안 추적 분석한 결과, 하루에 5시간 이하 또는 9시간 이상으로 잠을 자는 여성은 하루에 7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는 여성과 비교할 때 인지능력 점수가 낮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즉, 수면시간이 7시간보다 부족하거나 많으면 뇌의 노화가 2년 정도 더 진행된다는 결론을 얻은 것.
또 중년시절과 노년시절에 취하는 수면시간의 양이 달라져도 문제가 발생했다. 중년시절보다 노년 때 2시간 이상 더 자거나 또는 덜 잘 경우 수면 시간에 변화가 없는 여성에 비교해 뇌의 기능이 떨어진 것으로 조사된 것.
이 연구결과들은 수면 시간의 변화가 심할 경우 생체리듬에 혼란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인지능력이 저하되기 쉽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 저작권자 2012-09-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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