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색스(Oliver Sacks 1933~2015)는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한 작가 겸 의사였다. 그가 2015년 사망하자마자 자서전이 번역돼 나올 정도였으니까.
<온 더 무브>(On the move)는 올리버 색스가 사망하기 전에 쓴 자서전이다. 480쪽에 달하는 자서전은 평이한 문체와 다양한 여정 그리고 누구나 겪었을 젊은 날의 방황이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어 쉽게 읽힌다.
동성애 의사, 마약에서 탈출하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앞 부분은 방황하던 젊은 시절의 어둡고 혼란스런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색스의 젊음을 갉아먹은 가장 큰 원인은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점이다. 부모가 영국 런던에서 유명한 의사 집안인데다 유대교 회당을 드나들던 가문에서 태어난 아들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이 얼마나 그에게 깊은 그늘을 드리웠을까.
색스는 동성애의 상대가 됐던 인물과의 관계도 비교적 소상하게 밝혀 독자들을 끌어들였다. 다행인 것은 3류 소설이나 포르노 영화에서 나오듯이 구체적인 성애의 묘사는 하지 않았다.
영국을 떠나 뉴욕에 와서 의사로 활동했지만, 마약에 빠져들어 자살하거나 약 중독으로 죽을 것 같다는 자각에 이르면서 드디어 진정한 의사로서 거듭나게 된다.
1965년 12월 말 새해를 하루 앞둔 날 밤, 암페타민에 취해있을 때 올리버는 이렇게 생각했다.
‘올리버, 너 살아서 내년에도 새해 첫날을 맞이하고 싶다면 도움을 받아야 해.’
올리버는 자진해서 뉴욕 정신분석 전문가를 찾았다. 이때 만난 셴골드는 “마약을 끊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딱 부러지게 말했다. 올리버는 그 후 50년 동안 매주 두 번씩 셴골드 박사를 만나는 한편, 평생 독신으로 글쓰기에 몰입함으로써 마약에서 헤어 나왔다.
그 뒤 300쪽은 의사로서, 과학자로서의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진료를 하면 암호로만 기록되는 진료차트만 남기지 않고 소설보다 더 진지하고 자세하게 환자들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를 바탕으로 쓴 책이 런던과 뉴욕에서 인기를 끌고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색스의 인생도 크게 변했다.
일생동안 1,000 권의 환자관찰 기록 남겨
색스에게 글쓰기는 그를 살아있게 하는 가장 확실한 생명의 통로였다.
"베스 에이브러햄 병원의 환자 500명, 작은 자매회 입소자 300명, 브롱크스 주립병원의 입원 및 재래환자 1,000명을 진료하면서 수 십 년 동안 1,000권이 넘는 공책을 썼는데 내가 무척이나 좋아한 일이었다.
글쓰기는 잘 될 때는 만족감과 희열을 가져다 준다. 글쓰기는 주제가 무엇이든 나를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황홀한 경지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쉼 없이 써내려간다. 그러다 종이가 바닥나면 그제야 깨닫는다. 날이 저물도록 하루 온종일 멈추지 않고 글을 쓰고 있었음을.
평생에 걸쳐 내가 써온 글을 다 합하면 수 백 만 단어 분량에 이르지만 글쓰기는 해도 해도 새롭기만 하며 변함없이 재미나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던 거의 70년 전의 그날 느꼈던 그 마음처럼."
자서전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로버트 드 니로 같은 배우, 음악가, 정치가, 과학자, 의사 뿐 아니라 그가 만나서 상담하고 치료했던 환자들의 이름이 정말 많이 나온다.
후반부로 갈수록 전기는 과학적 발견에 대한 깊은 성찰과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특히 DNA 이중 나선을 발견한 노벨 수상자 프란시스 크릭(Francis Cric 1916~2004)과의 친밀한 대화와 교제를 통해서 과학적 탐구에 몰입하는 의사이자 과학자의 면모를 알 수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깊은 교제를 나눈 과학자로는 제럴드 에델만 (Gerald Edelman 1929~2014)을 꼽았다. 에델만은 ‘신경다윈주의’를 주창한 선각자로서 신경다윈주의는 20여년 뒤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된다.
이 전기는 3가지 부분에서 주의 깊게 읽혀진다. 첫 번째는 한 인간이 헤매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성장기이다. 두 번째로 얻는 교훈은 사람이 일생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과 진지한 교류를 나누어야 하는지 좋은 모범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는 과학적 탐구의 열정이 녹아 있다.
문학을 하는 사람이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고민하는 사람 그리고 지적 탐구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많은 교훈을 안겨준다. 그가 얼마나 진지하게 인간관계를 맺는지는 이런 대목에서 잘 나타난다.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로 갔다. 거기에는 내가 15년 동안 진료해온 뇌염 후 환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가족 사이의 깊은 우애와 협력에 대한 내용은 우리의 가족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색스의 큰 형 마이클이 정신진환을 겪자 동생인 데이비드 형과 릴리 형수는 토요일 저녁마다 마이클을 불러 만찬을 나눴다. 담배에 찌든 마이클 형은 들것에 실려 다리를 자르는 수술을 기다리던 중 ‘담배 한 대 피우고 와야겠다’고 일어나려다가 들것에서 떨어져 죽는다.
배우로 성공하기를 애쓰지만 돈만 낭비하고 끝내 요양원에서 폐렴을 앓다가 사망한 늙은 여배우의 마지막 순간도 그가 지켜준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과 너무나 다양하고 즐거우며 진지한 관계를 맺고 사는 삶, 부자가 되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하는 그 어떤 삶보다 더 따라하고 싶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한다.
거의 모든 시간을 주어진 학교와 군대와 직장과 가족 틈 속에서 비슷한 패턴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큰 자극을 줄 것 같다.
자폐증이나 투렛 증후군을 비롯해서 온갖 종류의 신경 및 정신질환자를 일생동한 진료한 결과 그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질환’이 그들 삶의 근본 조건이었으며 그것이 독창성이나 창조성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색스 자신을 비롯해서, 이모 저모로 뜯어보면 제대로 된 구석이 별로 없어 보이는 결점 투성이 우리 모두에게 주는 따듯한 긍정의 메시지이다.
- 심재율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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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6-02-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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