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과학기술 R&D 투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비율로만 보면 세계 1위다. 그런데 투자대비 성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면서 사회 일각에서는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정권마다 바뀌는 정책과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투자 때문에 ‘R&D 투자비 세계 1위’라는 통계는 허울뿐이고 정작 과학기술계는 연구비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과 사회의 소통 창구 마련
이처럼 과학기술계와 사회의 시각차가 큰 까닭은 무엇일까. 이를 과학기술계와 일반사회의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고, 과학기술인과 사회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겠다는 뜻을 표방하며 ‘과학기술과 사회발전 연구회(이하 과사연)’가 창립됐다.
이상목 과사연 회장(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은 “인류문명과 사회발전은 과학기술과 그 맥을 함께 해왔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사회에서는 과학기술에 의한 영향력이 점차 더 빠르게 커질 것이고 과학기술은 사회와 동떨어져서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과학기술과 사회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창립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효율적이고 행복한 과학기술공동체 구축을 위해 과학기술인 스스로 사회에 참여, 소통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특히 연구비와 관련된 억울함으로 비극적인 선택을 하는 과학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과학기술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법률자문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창립과 함께 과사연에서는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세미나를 열고 미래사회를 전망하며 우리나라 과학기술에 대한 과제를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정선양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는 “그동안 지향해 온 과학기술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국가의 경쟁력 유지와 강화였으나 최근의 과학기술과 경제환경의 변화는 과학기술정책이 경제성 위주의 목표에서 점점 다른 분야로의 목표영역을 확대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배경으로 그가 과학기술정책의 목표확장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포괄적 과학기술정책’이란 것인데, 과학기술이 미래지향적 문제 해결을 위해 경제적 책무, 환경적 책무, 사회적 책무, 국제적 책무, 통일을 위한 책무 등 5가지 책무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로 독일을 예로 들었다. 이는 독일이 과학기술을 통해 경제발전, 사회적 발전, 환경친화적 발전, 국제적 친화성과 나아가 동서독 통일까지 이루는 등 포괄적인 정책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정선양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포괄적 과학기술정책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범부처적인 과학기술 진흥 프로그램과 관련 부처 간 공동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과학기술공동체 한 목소리 필요
송하중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의 과학기술 시스템과 공동체 해부’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현재 과학기술 공동체의 위기를 ‘쇠락, 와해, 붕괴’라는 말로 표현했다.
즉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고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며 과학기술적 합리성에 근거한 판단과 선택 방식이 사회 전반에 걸쳐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그 해결책으로 송 교수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과학기술 거버넌스와 세상의 변화와 흐름에 맞춰갈 수 있는 정책 역량을 과학기술공동체의 과제로 제기했다. 즉 유능한 정책 결정자와 합리적이고 유연한 정책 체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밖에도 과학기술계의 현안 문제들을 놓고 지정토론이 진행됐는데, 권혁동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인구감소로 인해 5년 이내 100여 개 대학을 줄여야 하는 상황인데, 어떤 식으로 대처해 나갈지 명확한 답이 아직 없다”며 “이공계 인력 양성을 위해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10년 후, 20년 후 국가경쟁력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장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존경 받아왔던 과학기술계가 지금은 돈만 잡아먹는 조직, 연구비에 취약한 조직, 권력에 약한 조직으로 여겨지는 등 현재 과학기술공동체의 위상이 최악”이라며 “이제는 과학기술공동체가 합의한 기구와 규범이 있어서 과학기술계의 요구사항에 한목소리를 내고, 사회적 이슈에도 함께 행동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정토론회 좌장을 맡은 임교빈 수원대 교수는 “시국도 복잡하고 어지러운데 이처럼 과학기술계가 다양한 문제 제기로 우리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것은 지금 대책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심각한 문제의식 때문”이라고 밝혔다.
- 김순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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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6-11-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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