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註]<사이언스타임즈>는 객원기자들과 필진, 편집진, 그리고 독자분들의 의견을 모아 '2017 사이언스타임즈 선정 과학뉴스 10'을 연재합니다. 10가지 과학기술 이슈 및 관련 기사에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 드립니다.
지난 1년 대통령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태로 시작된 한국 사회의 격동은 1천만명이 넘는 시민들의 촛불 집회와 국회의 대통령 탄핵 발의,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까지 숨가쁘게 이어졌다. 이 격변은 5월 장미 대선과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 그리고 문재인 정부 출범이라는 각본없는 드라마를 낳았다.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을 시작으로 출범한 새 정부는 혁신 인사와 탈 권위주의, 파격적인 행보로 7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이끌어내면서 국정 전반의 쇄신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여러가지 국가적 과제가 산적해있는 과학기술 분야의 혁신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지난 7개월동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출범과 과학기술혁신본부 설치, 4차 산업혁명위원회 구성 등 과학기술 정책 수행 조직이 구성됐으며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I-코리아 4.0 비전이 제시되는 등 큰 그림은 마련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초기 인선 과정에서 불거진 새 정부의 과학기술 시각에 대한 의구심은 아직 가시지 않고 있으며 과학기술 정책의 근본적인 혁신보다는 기존 정책을 4차 산업혁명으로 포장하는데 그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출범
7월 2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새롭게 출범했다. 이전 정부에서 과학기술 정책을 담당했던 미래창조과학부는 1559일만에 현판을 내렸다. 특히 정보통신이라는 들어간 것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9년만이며 과학기술이 명시된 것도 교육과학기술부가 폐지된 지 4년 반만의 일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 전략의 두 가지 축으로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을 명확하게 선언한 셈이다.
과기정통부의 수장으로는 정보화 1세대 출신인 유영민 장관이 임명됐다. 유 장관은 LG전자 CIO 출신으로 LG CNS 부사장, 한국SW산업협회 회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자문위원, 민주당 디지털소통위원회 위원장 등 SW 및 SI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벤처와 스타트업이 혁신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참여와 소통의 플랫폼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에 다소 거리가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도 나왔지만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고 인화력, 조직운영 능력 등에서 좋은 평가를 얻어 비교적 무난하게 임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후 새 정부의 과학기술 인선은 다소 삐걱거렸다. 과기정책을 총괄하는 차관급의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설치한 것은 큰 호응을 얻었으나 본부장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 황우석 사태에 연루된 박기영 당시 청와대비서실 정보과학기술보좌관(현 순천대학교 교수)을 내정하면서 정치권과 학계의 거센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초반에는 박 내정자의 해명과 청와대 강행으로 가닥이 잡히는 듯 했으나 비판과 저항의 강도가 커지자 결국 나흘만에 박 내정자의 자진 사퇴로 마무리됐다.
청와대는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대식 카이스트 교수를 임명하고 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에 염한웅 포항공대 교수, 과학기술심의회위원장에 백경희 고려대 교수를 임명하면서 과학기술 조직의 주요 인선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인선 실패는 8월 24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20일만에 자진 사퇴한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 인사와 함께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겼다. 과학기술계는 "각 분야에서 혁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새 정부가 유독 과학기술에서는 좁은 시각과 협소한 전문가 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 과학기술혁신본부와 국가 R&D 예타권 이관
인선 잡음이 있긴 했지만 과학기술혁신본부 설치는 과학기술계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과학기술혁신본부는 과기 정책을 총괄하고 R&D 사업예산 심의·조정·성과 평가를 전담한다. 차관급임에도 불구하고 국무회의에 배석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조직이다.
특히 그동안 연구개발(R&D) 분야에 국가 예산이 매년 20조원 가량 투입되고 있음에도 실질적인 성과가 나지 않고 있는 현 국가 R&D 지원 체계를 혁신할 주체로 기대를 모은다. 임대식 초대 본부장은 카이스트에서 생명과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과학기술분과에서 활동해왔다. 과거 미래창조과학부의 경우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던 1차관에 대체로 기재부 출신 인물이 임명되면서 과학기술 연구 본연의 임무와 역할보다는 기재부 시각의 단기 성과 위주로 예산이 집행돼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 정부 과학기술 정책에 있어 가장 큰 변화는 국가 R&D 예비타당성(예타) 조사권을 과기정통부(과학기술혁신본부)로 이관키로 한 것이다.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은 물론 지난 6월 우원식 민주당 의원의 대표 발의에 따라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제출되면서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이 법안에 따르면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 300억원 이상의 R&D 사업의 경우 기재부가 아닌 과기정통부에서 그 타당성을 사전에 심의하는 내용이다.
그동안 예타권은 기획재정부 소관으로 돼있었다. 그러다보니 신속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집행되어야 할 과학기술 예산이 형평성이라는 명분 하에 다른 분야의 예산과 함께 처리되면서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과기정통부가 R&D 예타권을 갖게 되면 약 2년 가량 소요됐던 기존 예타 조사 기간을 6개월로 단축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경제 논리에 묻혀 사장될 수 있는 중요한 R&D에 대한 연속 집행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예타권 이관은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당초 12월 5일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국가재정법 처리가 기대됐으나 열리지 못했고 7일에도 자유한국당의 보이콧으로 무산되면서 국가개정법 연내 처리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로 예타권이 이관되는 것은 시간문제이지만 급변하는 과학기술분야의 현안을 정치논리가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 4차 산업혁명위원회 활동 개시와 I-코리아 4.0
그동안 말로만 언급돼온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한 국가 기구가 전격 설치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가 전략과 정책을 점검하고 정부 부처간 정책을 조정하는 대통령 직속기구인 4차 산업혁명위원회가 공식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지난 8월 기구에 대한 설치 및 규정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후 장병규 블루홀 의장을 제1기 위원장으로 하는 20명의 민간위원이 위촉되면서 9월 26일 출범했다. 과학기술은 물론 교육, 사회, 산업 등 각 분야 민간 전문가들이 포함됐으며 정부위원으로는 과기정통부 장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고용노동부 장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 과학기술보좌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위원회는 2개월간의 활동을 거쳐 지난 11월 30일 '혁신성장을 위한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 대응계획'을 발표했다. 창조경제에서 모호하게 이뤄졌던 담론을 뛰어넘어 현 정부가 이룰 수 있는 현실적인 과제와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21개 부처가 합동으로 마련하고 4차 산업혁명위원회가 논의한 이 계획에 따르면 기술, 산업, 사회정책을 연계해 1) 지능화 혁신 프로젝트 2) 성장동력 기술력 확보 3) 산업 인프라 및 생태계 조성 4) 미래 사회 변화 대응 등 4대 분야를 중점 추진키로 했다.
특히 성장 동력 관련 중복 분야를 연계, 통합해 '조기 상용화'와 '원천 기술 확보'로 구분함으로써 맞춤형 지원을 실시할 계획이며 사업별 지원이 아닌 '기술+데이터+인프라+확산+제도 개선'의 전 과정을 패키지 지원하는 형태를 꾀할 방침이다. 또 일정 조건 하에 규제를 일부 면제 혹은 유예해 테스트를 허용하는 규제 샌드박스를 내년부터 도입하고 고용 구조 변화에 대응한 전직 교육 강화, 고용 보험 확대 등 일자리 안전망 구축하는 내용도 이번 계획에 포함됐다.
위원회는 이 같은 대응 계획을 I-코리아 4.0이라는 정책 브랜드로 제시했다. 과거 e-코리아(2002), u-코리아(2006) 등을 잇는 국가 과학기술정책 브랜드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기존 부처들의 계획을 한데 모은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정책의 방향성을 명확히 했고 통일성과 균형감을 갖춘 전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특히 정부의 큰 그림이 나오면서 국회 4차 산업혁명 포럼, 강원 4차 산업혁명위원회 등 지역별, 기관별 전문화된 조직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흐름이다.
- 조인혜 객원기자
- podo0320@gmail.com
- 저작권자 2017-12-15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