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돼 있는 추상 미술작품을 보면 ‘블루 넘버 투(Blue No. 2)’와 같이 단순하면서 특이한 제목들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제목들은 정확히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작품과 연계해 무엇인가 강렬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최근 과학자들을 통해 ‘제목이 관람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밝혀지고 있다.
8일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미국 피츠버그 대학 과학자들은 최근 연구를 통해 많은 관람객들이 ‘커브드 라인(Curbed Line)’, ‘닷츠 오브 칼라(Dots of Color)’와 같은 단순한 제목을 선호하고 있는 사실을 밝혀냈다.
“과학자들의 예술 연구 급증 할 것”
연구팀은 또 ‘아이스 댄싱(Ice Dancing)’, ‘사보타주(Sabotage)’와 같이 간단한 제목에 비유적인 의미가 첨가될 경우 관람객들에게 매우 강하게 어필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람객들이 또 복제본보다 진본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그 이유가 밝혀지고 있다. 지난 6월 보스턴 칼리지 심리학자들은 관람객들이 복사본이 아닌 원본 속에서 작가의 본질적인 ‘그 무엇’이 더 많이 내포돼 있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를 이끈 보스턴 칼리지 엘렌 윈너(Ellen Winner) 교수는 “그동안 많은 철학자들이 수 세기 동안 미술작품을 통해 나타나는 이런 의문에 대해 궁금증을 가져 왔으나,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고 말했다.
윈너 교수는 또 “그러나 최근 과학자들이 미술작가과 관람객들 사이에 나타나는 이런 창조적이고 심미적인 반응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다.”며 “앞으로 예술을 대상으로 한 이 분야에서 과학자들의 연구가 급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왜 그림을 그리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혹은 해외여행 시 호텔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보다 고호의 해바라기 그림을 더 좋아하는지 등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고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리고 최근 미국에서만 뇌과학, 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 20여 개의 연구진이 관련 도메인 검색을 바탕으로 심미학 차원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시각예술(visual arts)은 물론 음악·문학·공연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각종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중이다.
관계자들은 이 같은 연구 분야를 총괄해 ‘실험 심미학(experimental aesthetics)’으로 분류하고 있다. 19세기 살았던 독일의 물리학자이면서 심리학자였던 구스타프 페이너(Gustav Theodor Fechner)가 만든 용어다. 그는 ‘페히너의 법칙’으로 알려진 공식을 통해 정신 물리학, 실험 심리학에 이어 ‘실험 심미학’을 개척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밝혀내고 있는 중
페이너의 예상대로 많은 과학자들이 ‘실험 심미학’에 몰두하며 2세기에 걸쳐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를 밝혀내고 있다. 그리고 많은 수수께끼 중 핵심 주제가 되는 두 가지 질문. 즉 무엇이 예술이고, 어떤 예술작품이 주목을 받고 있는지 밝혀내고 있는 중이다.
이와 관련 실험 심미학 관점의 세계적인 국제학술지 ‘미학, 창의성, 예술 심리학 저널(Psychology of Aesthetics, Creativity and the Arts)’에는 과학으로 예술을 설명하는 다양한 논문들이 게재돼왔다.
“만다라의 치유적 본질에 대한 실증적 연구, ‘탁월한 터키 작가들에 대한 환경·인격적 요인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적인 사례연구’와 같은 논문들이다. 지난 6월에는 런던 대학 연구진이 기계로 만든(machine-made) 예술을 공박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컴퓨터 예술에 대한 심미적 반응’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대중들은 기술을 적용해 제작한 예술작품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작가가 직접 창작에 참여한 작품에는 그 작품성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유사한 내용의 또 다른 논문들도 다수 발표됐다. 결론은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복제, 혹은 위조 성향이 있는 작품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이 들어 있는 원본 작품일수록 작가와의 더 많은 소통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의학적, 교육적인 관점에서 예술 행위가 뇌와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탐구하는 논문들도 발표됐다. 이에 고무 받은 미국의 예술 지원기관 NEA(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는 과학과 연계한 연구 지원을 강화했다.
NEA가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미술치료(art therapy)다. 대규모 지원을 통해 다양한 논문이 발표됐는데 최근 드렉셀 대학 연구진은 “예술창작에 45분 이상 참여했을 때 급성 스트레스 반응과 관련된 물질 코티솔이 크게 낮아졌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영국 리버플 대학의 심리학자 알렉시스 마킨(Alexis D. J. Makin) 교수는 예술을 통해 치유 효과를 찾아내려는 연구 방식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연구실에서 치밀하게 컨트롤되고 있는 장치를 통해 강력하게 다가오는 예술적 감성을 측정하기가 힘들다”는 것.
이에 대해 보스턴 칼리지의 심리학자 나다니엘 라아브(Nathaniel Rabb) 교수는 “심리학이 사람의 행위를 연구하는 학문인데, 예술과 같은 복잡한 구조의 행위를 내버려두고 다른 무엇을 연구할 수 있겠느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심미학(aesthetics)이란 가치로서의 미, 현상으로서의 미, 미의 체험 등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미의 본질을 묻는 분야로 임마누엘 칸트 등 철학자들이 주요 관심 영역이었다. 그러나 최근 21세기 들어 과학자들의 뜨거운 연구 현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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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7-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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