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사피엔스 30만 년 역사 가운데 인류가 단맛을 마음껏 즐긴 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열매가 익는 철에 잠깐 새콤달콤한(지금의 개량된 과일보다는 당도가 훨씬 낮은) 맛을 봤고 정말 어쩌다 꿀의 진한 단맛에 황홀해했다.
한편 탄수화물 대부분은 씨앗이나 덩이줄기에 들어있는 단백한 맛의 녹말로 섭취했다.
그러나 남아시아에서 수천 년 전 사탕수수에서 설탕(자당)을 뽑는 기술이 나왔다. 그리고 수백 년 전부터 유럽 열강이 식민지를 개척해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운영하면서 설탕이 퍼지게 됐고 이제는 넘쳐나게 됐다.
녹말은 다당류라 덩치가 너무 커 그 자체로는 맛이 없고 설탕은 이당류라 달다는 점 말고도 둘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즉 녹말은 포도당이라는 당 단위(단당류)로 이뤄진 반면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이 붙어 있는(그래서 이당류다) 구조다. 즉 위와 소장에서 소화가 되면 녹말은 전부 포도당으로 바뀌지만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이 1:1로 나온다.
따라서 인류가 설탕을 먹게 된 이후에도 포도당의 섭취량은 별 차이가 없다(물론 하루 섭취 칼로리가 꽤 늘어났을 것이므로 그만큼은 늘어났을 것이다).

반면 과당의 경우는 200년 전에 비해 100배나 늘어났다. 미국인의 경우는 오늘날 섭취 칼로리의 대략 10%가 과당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많은 가공식품에 설탕뿐 아니라 과당 자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같은 양일 때 과당은 설탕보다 1.7배나 더 달기 때문에(반면 포도당은 70% 수준) 설탕 대신 과당을 쓰면 단맛을 유지하면서도 당 함량을 줄일 수 있어 마케팅에 유리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몸이 과당을 제대로 이용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음식으로 몸에 들어온 과당은 소장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간으로 이동해 대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은 과당을 분해해 포도당으로 만들거나 다른 대사물로 전환시킨다.
그러나 과당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간도 어찌할 바를 몰라 이상한 방향으로 대사가 진행되고 그 결과 지방간을 비롯해 비만, 고혈압, 췌장염 등 다양한 대사질환이 생긴다.
즉 오늘날 현대인의 만성질환 가운데 상당 부분이 지나친 과당 섭취에서 비롯된다. 심지어 섭취량에 관계없이 과당은 ‘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소량 섭취는 소장이 해결
학술지 ‘셀 대사’ 2월 6일자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과당 대사 메커니즘이 수정돼야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과당을 소량 섭취했을 때는 소장에서 충분히 대사할 수 있고 간으로 넘어가는 양은 10%도 안 된다.
다만 과량 섭취했을 때 소장의 능력을 넘어서는 양이 간이나 대장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즉 과당이 무조건 독은 아니라는 말이다.
프린스턴대 등 미국의 공동연구자들은 방사성동위원소(탄소13)로 만든 과당을 생쥐에게 먹여 이 분자들의 이동경로와 대사산물을 분석해 이와 같은 결론을 얻었다.
즉 생쥐에게 소량의 과당(같은 양의 포도당과 함께)을 물에 타 먹일 경우(사람의 경우 설탕 5g 즉 탄산음료 40ml에 해당) 과당 대부분은 소장에서 대사돼 포도당과 유기산으로 바뀌고 소장과 간을 연결하는 혈관인 간문맥을 통해 간으로 이동하는 건 10%가 안 됐다.
반면 사람의 경우 설탕 20g(탄산음료 160ml)에 해당하게 양을 늘려 먹이면 간으로 넘어가는 과당의 비율이 크게 늘어난다. 또 분변을 분석해보면 과당이 존재한다.
즉 소장에서 처리하지 못한 과당의 일부는 혈관을 통해 간으로 이동하고 일부는 대장으로 내려가 배설된다. 이 과정에서 몇몇 장내미생물이 과당을 먹이로 삼게 되고 부티레이트 같은 대사물도 나오는 것으로 확인됐다. 만성적으로 과당을 과잉 섭취하면 장내미생물의 조성이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달콤한 디저트가 덜 해로워
한편 지금까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과당과 관련된 건강상식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실험결과도 있다.
예를 들어 같은 함량이라도 주스를 먹는 것보다 과일을 먹는 게 과당의 부작용이 덜하다는 게 알려져 있는데 기존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에 실험한 결과 과당을 물에 타 따로 먹일 때와 먹이에 섞어 먹일 때 소장에서 소화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따로 먹을 때는 소장이 다 소화하지 못해 간으로 떠넘길 양이라도 음식에 섞여 있었을 때는 소화가 돼 간이나 대장으로 넘어가는 양이 적었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음식의 고체성분이나 과일의 식이섬유가 과당을 붙잡아 소장벽으로 흡수되는 속도를 늦추기 때문에 소장에서 과당이 소화될 시간을 벌어준 결과라고 해석했다.
한편 지속적으로 과당을 섭취할 경우 소장이 나름대로 적응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즉 과당을 대사하는 효소 유전자의 발현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대사할 수 있는 양도 늘어난다.
1회성 실험에서는 사람으로 치면 탄산음료 한 캔도 안 되는 설탕 20g(과당 10g)에서도 과당이 간으로 흘러넘치지만 실제 일상생활에서 이 정도 과당은 별 문제가 안 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하루 섭취 칼로리의 10%에 이를 정도로 과도하게 과당을 먹을 경우 소장이 적응하는 범위를 벗어나 간에 무리를 주게 된다. 참고로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하루 당 섭취량은 50그램 미만이다.
우리나라 성인의 당 섭취량은 이를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고 특히 청소년은 80그램으로 1.6배나 되는데 탄산음료나 주스를 즐겨 마시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로 과당이 섭취량에 관계없이 ‘무조건 독’이라는 오명은 벗어났지만 현대인들 다수가 섭취하는 수준에서는 여전히 독일 수 있음이 좀 더 명쾌히 밝혀졌다.
아울러 식간에 먹는 탄산음료나 주스가 케이크나 과일 같은 식후 디저트보다 몸에 훨씬 더 해로울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이 마를 때는 맹물 한 잔 마시는 게 최고라는 말이다.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 저작권자 2018-02-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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