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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함께 한 물의 신비 (10) (240) 물 없이 견디는 동식물과 레퓨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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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인간을 포함한 거의 모든 동식물은 물 없이는 생존을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지구 상에 존재하는 매우 다양한 식물 중에는 상당히 오랫동안 물 없이도 버틸 수 있는 종들도 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인 치와와사막 등을 비롯한 건조한 지역에서 서식하는 이른바 부활초(Resurrection moss)가 대표적인 예이다.

말라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희귀한 식물의 학명은 ‘Selaginella lepidophylla’이며, 종자식물이 아닌 양치식물에 속한다. 그러나 이름처럼 완전히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고, 물이 없는 건조한 환경에서는 어두운 갈색으로 변하고 줄기가 모여지면서 마치 공처럼 둥글게 뭉친 형태로 된다. 그러다가 물을 붓거나 습한 환경에 노출되면 수분을 빠르게 흡수하면서 마치 되살아난 것처럼 원래의 모양과 색상을 회복한다.

물이 없으면 공처럼 말렸다가 물을 받으면 원상회복되는 부활초 ⓒ James St. John

부활초는 매우 건조한 환경에서는 일종의 휴면 상태를 유지하는 것처럼 신진대사를 최소화하여 버티는 것인데, 물 없이도 몇 년간 생존할 수 있고 원래 무게의 3%밖에 안 될 정도로 말라버린 상태에서도 죽지 않는다고 한다. 건조한 휴면 상태에 돌입하면 식물의 체내에서 특수한 물질을 합성하여 조직과 세포의 손상을 방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활초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 식물이 물 없이도 버틸 수 있는 메커니즘을 완전히 밝혀내서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 애쓰고 있다. 만약 부활초의 원리를 다른 농작물 등에 적용할 수 있다면, 가뭄에 매우 강한 품종을 개량해내거나 수분을 거의 상실해서 말라버려도 비가 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작물을 만들어서 인류의 식량난 해소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부활초와 같은 경우는 상당히 특별하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식물은 물이 없는 환경에도 대비할 수 있는 나름의 대책을 이미 지니고 있다. 즉 종자식물들이 만들어내는 씨앗이 바로 그것인데, 환경이 좋지 않을 때에는 씨앗 상태로 버티다가 식물이 성장하기 좋은 환경이 되면 발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백 년 이상 된 씨앗이 놀랍게도 발아했다는 외신 기사 등이 간혹 보도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식물에 비해 동물, 특히 척추동물과 같은 고등동물은 물 없이는 살아가기가 더욱 어렵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더구나 평소 물속에서 사는 물고기 종류가 물 없이도 몇 개월 이상 버틸 수 있다면 더욱 신기할 것이다.

물이 없는 환경에서 휴면 상태를 유지하여 견딜 수 있는 물고기는 바로 폐어(肺魚; Lung fish)인데, 장어 비슷하게 생긴 가늘고 긴 몸을 지니고 있다. 흔히 ‘살아 있는 화석’의 하나로 불리는데, 약 4억 년 전인 고생대 데본기에 나타나서 현재까지도 생존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널리 번성했던 먼 과거에 비해 종의 다양성은 크게 줄어들어서, 오늘날에는 세 가지의 속(Genus)에 여섯 종의 폐어가 서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물고기들은 물속에서는 아가미를 통해 호흡하지만, 폐어는 이름에 걸맞게 부레를 통하여 공기 호흡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물이 없는 곳에서도 점액질로 고치를 만들어 몇 개월씩 버틸 수 있는 폐어 ⓒ Eden Janine and Jim

폐어의 더욱 놀라운 점은 공기 호흡뿐 아니라, 물이 없는 메마른 상태에서도 유도 동면 상태에 들어가서 몇 개월 이상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폐어 종류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의 폐어 종들은 강이나 호수의 물이 마르면, 진흙 속으로 파고 들어가 몸에서 점액질을 분비하여 일종의 고치 비슷한 것을 만들고 그 안에서 버티곤 한다. 그 후 비가 와서 물이 풍부해지면 진흙더미를 뚫고 나와서 다시 물속으로 돌아간다.

동면하는 동물이 신진대사를 최소화하여 겨울잠을 자는 것과 얼핏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폐어는 물 없이도 최소 수개월 심지어 몇 년 이상을 견뎌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만약 폐어가 유도 동면으로 진흙 속에서 버텨낼 수 있는 원리를 밝혀서 응용할 수 있다면, SF영화 등에서 자주 나오듯이 향후 장거리 우주여행을 하는 사람이 에너지와 식량을 아끼고 수명을 연장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물에 대한 의존도가 다른 대부분의 동식물보다 더 높은 편이어서, 물을 마시지 않으면 불과 며칠도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식량으로 삼고 있는 다양한 곡물과 육류 또한 많은 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큰 가뭄이 들면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굶주려 죽기도 한다.

지구온난화와 기후 변화로 인하여 거의 전 세계적으로 가뭄과 산불 등이 예전보다 잦아지고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다, 더구나 그동안 요긴하게 이용해왔던 지하수마저 곳곳에서 고갈의 조짐을 보이면서, 향후 인류의 물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어떤 보고서에 의하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전 세계의 물 수요가 공급량보다 40%나 초과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또한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뭄과 산불은 최근 열대우림의 파괴 등에 의해 ‘물의 흐름’이 바뀌었기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최악의 상황에서도 물을 지켜줄 마지막 피난처, 즉 레퓨지아(Refugia)를 잘 찾아서 보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2만년 전의 빙하기 당시 레퓨지아의 분포도 ⓒ Fahrtenleser

원래 레퓨지아란 과거 지구 대부분 지역에 추위가 덮친 빙하기 때에, 기후 변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서 동식물이 멸종하지 않고 생존을 유지한 곳을 의미한다. 가뭄을 이겨내고 물을 지켜줄 현대판 레퓨지아는 여전히 지구 곳곳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가뭄이 극에 달했을 때에도, 토양의 수분이 충분했던 레퓨지아 지역에서는 미국삼나무(Redwood)들이 가뭄을 버텨내고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물을 보존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발전뿐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일일 것이다. 열대우림과 레퓨지아 등의 보존과 아울러, 물은 함부로 낭비해도 되는 무한정의 자원이 아니라 온 인류가 아껴서 써야 하는 귀중한 ‘공공재’임을 자각하고 물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최성우 과학평론가
저작권자 2021-12-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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