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1%의 튼튼한 아기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까까(태명)는 다른 아기들보다 조금 일찍 이유식을 시작했다. 까까가 자는 동안 불 앞에 서서 이유식이 냄비에 눌어붙지 않도록 쉼 없이 젓고 있자니, 모유만 먹던 시절이 얼마나 편했던 것인지를 알게 됐다. 엄마의 고생을 아는지, 까까는 이유식을 그릇까지 먹을 기세로 잘 먹는다.
쌀이나 찹쌀로 만든 미음에 한 가지의 재료가 들어가는 초기 이유식은 아기가 음식을 먹는 법을 배우고, 여러 재료를 섭취해가며 알레르기 발생 여부를 확인해보기 위한 목적이 크다. 필자는 오이는 물론 오이와 유사한 수박, 참외까지 모두 꺼리는 ‘오싫모(오이를 싫어하는 모임)’ 회원이지만, 까까를 위해 코를 막아가며 오이 미음을 만들어줬다. 그런데, 늘 이유식이 부족하다고 징징대던 까까가 오이 미음은 먹자마자 뱉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조금 게워내기도 했다. 입맛까지 엄마를 닮는 걸까.
태아도 음식 호불호가 있다
사람은 미각과 후각을 조합하여 풍미를 느낀다. 태아의 경우 자궁을 채운 양수를 통해 엄마가 섭취하는 음식의 맛을 느낀다. 태아의 미각은 임신 14주, 후각은 임신 24주쯤 완성된다. 임신 후반기가 되면 미각과 후각을 모두 이용해 맛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더럼대 연구진이 이끄는 공동연구팀은 태아가 엄마가 섭취한 음식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는 장면을 포착했다. 태아가 자궁에서부터 맛과 냄새에 반응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연구결과는 지난 9월 22일 국제학술지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에 실렸다.
연구진은 18~40세의 임산부들을 대상으로 임신 32주차와 36주차에 4D 초음파 검사를 진행하며 태아의 표정 변화를 살폈다. 산모들은 검사 20분 전에 400mg의 당근 혹은 케일 분말이 담긴 캡슐을 섭취했다. 검사 1시간 전에는 향이 있는 다른 음식이나 음료를 섭취하지 않았다. 당근은 단맛을, 케일은 쓴맛을 낸다.
연구진은 눈썹, 광대, 코 주름, 입 꼬리의 움직임 등을 중점으로 태아의 표정을 분석했다. 캡슐을 섭취한 뒤 30분 후부터 태아의 표정이 달라졌다. 당근을 먹은 산모들의 태아는 입 꼬리가 올라가는 웃는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케일을 먹은 그룹의 태아들은 입 꼬리가 처지거나 입술을 꽉 다문 우는 표정을 주로 지었다.

제1저자인 베이자 우스툰 박사는 “출생 전 맛에 대한 반복적인 노출이 출생 후 음식 선호도를 확립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케일처럼 ‘불호’였던 풍미에 태아를 자주 노출시키면 태아가 자궁에서부터 그 풍미에 익숙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산모가 섭취한 음식이 초기 입맛 결정
이유식을 먹이다 보니 아이의 음식 선호가 보인다. 까까는 콩과 두부, 들깨 등 고소한 맛을 내는 재료를 좋아하고 의외로 달달한 건포도와 짭짤한 치즈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입맛을 가지게 된 이유가 궁금해져 과학자들의 연구를 찾아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가 임신 중 콩국수, 들깨수제비, 땅콩과자 등 고소한 맛의 음식을 찾아 먹었기 때문이다.
동물실험의 결과는 임신 중 어미가 섭취한 음식이 새끼의 음식 선호는 물론, 풍미와 관련된 뇌 발달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미국 콜로라도대 연구진은 임신 중인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에는 향이 거의 없는 ‘무자극 음식’을 다른 그룹에게는 맛과 향이 풍부한 ‘자극적 음식’을 먹였다. 태어난 새끼들은 엄마가 먹었던 음식과 유사한 맛과 향을 더 선호했다. 특히, 자극적 음식을 먹은 어미에게서 태어난 새끼들은 미각을 발달시키는 뇌 부분이 더 컸다.
연구진은 “어미가 먹은 음식에 의해 양수의 냄새가 달라지고, 이 냄새가 새끼의 태아의 뇌 발달에 영향을 줘 풍미에 대한 선호를 만든다”이라며 “태아는 엄마 자궁 속에 있는 건 무엇이든지 다 좋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의 결론도 유사하다. 미각과 후각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미국 모넬(Monell) 센터 연구진은 4~8개월 영아 45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녹두를, 다른 그룹에는 녹두와 복숭아를 제공했다. 참여한 아기들은 모두 고형식 식이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였다.
관찰 결과, 모유를 먹었던 아기들이 복숭아를 더 오래 그리고 더 많이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녹두의 경우 수유 방식에 따른 섭취량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어진 설문조사에서 연구진은 모유수유를 진행했던 엄마들이 모유수유 중 과일을 많이 섭취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모유를 통해 과일 향에 더 많이 노출됐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복숭아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를 진행한 쥴리 메넬라 박사는 “엄마가 먹은 음식의 맛은 양수와 모유를 통해 전달되고, 이에 따라 아기는 엄마가 먹었던 음식의 맛을 좋아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유수유를 하지 않더라도 특정 음식에 자주 노출해주는 것만으로도 아기의 음식 선호를 바꿀 수 있다. 연구진은 실험에 참가한 영아들에게 8일 동안 계속 녹두를 섭취하도록 했다. 모든 아기들이 처음에는 녹두 섭취를 즐기지 않았지만(실험에 참가한 모든 산모들이 권장량보다 녹색 채소류를 적게 섭취했다), 8일 후에는 섭취량이 거의 3배로 늘었다.
메넬라 박사는 “아기들은 선천적으로 쓴맛을 싫어하고, 특정 향을 맡았을 때 찌푸리는 표정을 지을 수 있다”며 “실험 과정에서 우리 연구진은 아기의 찌푸린 표정이 먹고자 하는 의지와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양육자는 새로운 음식을 제공할 때 아기의 표정보다는 의지를 파악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건강한 음식을 먹이려면 임신 중이거나 모유수유 중인 산모가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고, 아이에게 맛볼 기회를 반복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게 만 5세까지를 입맛 형성 시기라고 본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출생 2~5개월 이내 유아의 미각에 노출된 맛이 평생 동안 입맛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도 있다. 출생 후 신맛이 나는 우유를 먹고 자란 소아의 경우 청소년이 된 후에도 신맛을 좋아하지만, 출생 6개월 이후 처음으로 신 우유를 먹은 소아의 경우 이런 맛을 싫어한다는 실험에 따른 결론이다. 또한, 연구에 따르면 산모의 모유 수유 중 먹은 음식으로부터 나온 미량의 맛 물질에 노출된 소아의 경우, 이런 맛 성분을 좋아하게 된다.
이처럼 산모와 아기는 입맛도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까까가 먹고 싶대’라며 한밤중에 누워 있는 남편을 일으켰던 지난 나날들의 언행이 영 거짓말은 아니었다는 뒤늦은 변명도 해본다. 엄마가 좋아하는 걸 아기가 좋아하게 되니, 결국 아기가 먹고 싶은 것인 셈이다(이렇게 주장해본다). 이유식 덕분에 생전 처음 다뤄보는 재료까지 구매하여 요리해보는 요즘이다. 지금 섭취하는 음식들이 평생 입맛을 좌우할 수 있다고 하니 책임감이 조금 더 생긴다. 곧 다가오는 ‘이유식 데이’에는 조금 더 경건한 마음으로 냄비를 휘저어 봐야겠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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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2-12-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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