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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이 만드는 뜻밖의 신체 변화 과학자들의 연구로 푼 육아 궁금증…‘임산부의 날’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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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보건복지협회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임산부의 44.1%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부정적인 경험으로 대중교통 배려석 불편을 꼽았다. ⓒGettyImages

10월 10일은 임산부의 날이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제고하여 저출산을 극복하고, 임산부를 배려‧보호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자 2005년 제정했다. 임산부의 날이 제정 된지 어느덧 17년째. 하지만 우리 사회의 임산부 배려 분위기는 여전히 낙제점인 모양이다. 인구보건복지협회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임산부 2명 중 1명이 ‘임신기간 동안 배려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는 평균 0.81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부동의 꼴찌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시행됐지만, 현실은 역부족이다. 필자 역시 회사에 임신 소식을 알리며, ‘미안하지만’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을 수행하겠다고 이야기 한 기억이 난다. 첫 심장소리를 듣고 임신확인서를 발급받을 때 쯤 태아의 크기는 고작 1cm 내외. 뱃속의 이 연약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갖춰진 제도와 정책은 당연히 활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새 생명을 축복해준 동료들을 뒤로한 채 먼저 퇴근하려니 영 마음이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첫 심장소리를 듣던 날 까까(태명)의 모습. 고작 1.4cm의 태아가 우렁찬 심장소리를 냈다. 심장소리를 듣고 난 후에야 산부인과는 ‘임신확인서’를 발급해준다. 임신확인서는 임신기 단축근무 시행 등을 위한 증빙 자료로 쓰인다. ⓒ 사이언스타임즈 권예슬

 

임신이 만드는 변화

임신은 여성의 몸에 상당한 변화를 야기한다. 체중 증가, 배를 세로로 가로지르는 임신선, 유방과 유두의 변화 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변화들도 많다. 산모는 태아를 위해 혈액 수분량이 증가하며 붓기가 생기는데, 이로 인해 기존에 신던 신발이 맞지 않을 정도로 발이 붓고는 한다. 이런 변화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구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 임신 중 체중 및 수분량 증가로 인한 부종은 발의 크기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 연구진은 발의 형태 변화가 임신 중 일시적인 변화가 아니라 영구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GettyImages

미국 아이오와대 연구진은 임신 전후 여성의 발 형태 변화를 조사한 결과, 임신이 여성의 발 모양을 영구적으로 변형시킨다는 결과를 얻었다. 연구진은 산모 49명을 대상으로 임신 3개월 이전 초기와 출산 5개월 후에 각각 발의 형태를 측정했다. 그 결과 참가자의 60~70%가 발이 2~10mm 가량 길어지고, 넓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발 아치의 높이가 낮아지며 평발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연구결과는 2013년 국제학술지 ‘미국 물리요법의학 및 재활 저널(American Journal of Physical Medicine & Rehabilitation)’에 게재됐다.

연구를 이끈 네일 세갈 교수는 “체중 증가로 발이 눌리고, 임신 중 호르몬 변화로 인해 관절과 인대가 느슨해지며 발 형태에 변형이 생긴다”며 “첫 임신과 출산 때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두 번째 임신 때는 발의 구조에 더 이상 변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 임신 중엔 즐거운 음악은 더 즐겁게, 불쾌한 음악은 더 불쾌하게 들린다. 음악을 청취할 때의 혈압, 심장박동 등 체온 변화 폭이 커지기 때문이다. ⓒcolourbox.de

한편, 임신은 매일 즐겨 듣던 음악에 대한 반응도 바꾼다. 음악은 우리의 혈압, 심장박동, 호흡, 체온 등을 변화시킨다. 임산부에게서는 그 변화가 더욱 두드러진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지뇌과학연구소 연구진은 32명의 여성(임산부 15명, 일반 여성 17명)에게 10~30초 길이의 듣기 좋은 음악과 귀에 거슬리는 음악을 들려줬다. 임산부는 비임신 여성에 비해 즐거운 음악은 더 즐겁게, 불쾌한 음악은 더 불쾌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런 경향은 신체 변화에서도 나타났다. 불쾌한 음악을 들은 임산부의 혈압 변동 폭이 비임신 여성에 비해 현저하게 컸다.

연구를 진행한 톰 프리츠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 임신 여성과 비임신 여성의 신체 반응 차이의 원인까지 명확히 규명하지는 못했지만,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주된 원인일 것으로 추정된다”며 “음악은 임산부 뿐 아니라 자궁 속 태아의 심박동과 움직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2014년 국제학술지 ‘정신심리학(Psychophysiology)’에 게재됐다.

 

임산부에게 재택‧단축근무가 필요한 이유

정부는 근로기준법에 의해 임신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여성 근로자가 1일 2시간 단축 근무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2014년 300인 이상 사업장에 시범 도입한 뒤, 2016년부터는 모든 사업장에 확대 적용된 상태다. 과학 연구에서도 임산부의 근로 시간이 태아의 성장 및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증명됐다.

▲ 임신 중 근로는 임신합병증 발생 확률과 기형아 출산 가능성을 낮춘다. 하지만 근로 시간이 길어지면 평균 보다 작은 아기를 낳을 확률이 높아진다. ⓒGettyImages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 연구진은 임신 중 장시간 노동이 평균 보다 작은 아이가 태어날 가능성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를 2012년 국제학술지 ‘직업과 환경의학(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2002~2006년에 자연임신으로 단태아를 출산한 산모 4,680명을 대상으로 근로 형태와 태아 성장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임신 중 1주일에 40시간 이상 일한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기는 25시간 미만으로 일한 여성에게 태어난 아기보다 출생 시 머리 둘레가 평균 1cm 작고, 체중이 148~198g 적게 나갔다. 장시간 근로로 인한 태아의 성장 차이는 임신 3분기(임신 8~10개월)에 두드러졌다. 특히, 장시간 서서 일하는 임산부 근로자의 경우 태아의 머리 둘레 성장률이 더욱 낮았다.

임신 중 근로는 임신합병증 발생률을 낮추고 사산 또는 기형아 출산 가능성도 적다는 장점이 있다. 연구진은 “임신 중 근로 자체가 태아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며, 출산 직전까지 근로해도 미숙아 출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다만 장시간 근로와 육체적 요구가 필요한 근로 형태는 미숙아 출산과 연관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균보다 작은 머리 둘레는 두뇌 인지기능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긴 출퇴근 시간 역시 저체중아 출산 확률을 높인다. 미국 리하이대 연구진은 장거리 통근이 태아 및 출생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세계 최초로 조사하고, 그 연구결과를 2019년 국제학술지 ‘경제와 인간생물학(Economics & Human Biology)’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미국에서 통근 시간이 가장 긴 지역인 뉴저지 주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2014~2015년 직장까지 매일 50마일(약 80.5km)에서 100마일(약 161km)의 거리를 이동했던 임산부들의 출생 기록을 분석했다. 그 결과, 직장까지 최소 50마일 통근하는 임산부의 경우 이동 거리가 10마일(약 16.1km) 증가할 때마다 2.5kg 미만의 저체중아를 출산할 확률이 0.9%포인트 높아졌다. 태아의 자궁 내 성장률은 0.6%포인트 낮아졌다. 50마일은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광화문에서 경기도 평택시 정도의 거리다.

▲ 연구진은 미국에서도 통근 시간이 가장 긴 지역으로 꼽히는 뉴저지 주를 대상으로 통근 시간과 저체중아 출생간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2014~2015년 뉴저지 주의 임산부들은 평균 64마일을 매일 통근했고, 이 거리를 차로 이동한 시간은 평균 78분에 달한다. ⓒEconomics & Human Biology

무체 양 리하이대 경제학과 교수는 “임신 중 장거리 통근이 산모의 만성 스트레스를 높이고, 결과적으로 저체중아 출산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며 “또한 통근 거리가 10마일 증가할수록 산전 산부인과 검진 횟수가 2.5% 감소하고, 임신 3개월 이내에 첫 검진을 받을 확률이 2.84% 감소했다”고 말했다. 긴 통근 시간으로 인해 여가 시간이 부족해지며 산전 관리에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된다는 의미다.

공동 연구를 진행한 양 왕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 교수는 “장시간 통근의 잠재적 역효과로 인해 산전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부정적인 출산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산모 및 태아 관리를 위해 재택근무, 산전 출산 휴가 적극 도입 등의 공공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산부에게 스트레스는 쥐약, 더욱 배려하는 문화 조성돼야

임신 중 스트레스는 산모와 태어날 아기에게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미 많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스트레스가 조산 확률을 높이며, 태어날 아기의 기질 및 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밝혀졌다. 직장에서의 임산부 차별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베일러대학교 연구진이 ‘응용심리학 저널(Journal of Applied Psychology)’에 게재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10년 간 5만 건 이상의 임신 차별 청구가 미국 정부에 접수된다. 직장 내 산모 차별은 산모의 산후우울증 정도 증가, 아기의 출생 체중 감소, 조산 등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딸아이를 낳고 나니 임신 중에 겪은 크고 작은 차별 그리고 불편들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까까(태명)가 어른이 되고 출산 여부를 결정할 때 사회적 환경이 고려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한 가지 아닐까. 우리 모두 임산부인 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

권예슬 리포터
yskwon0417@gmail.com
저작권자 2022-10-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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