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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연: 위기와 도전을 넘어 과학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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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동오
한국물리학회 출연연 특별위원회 위원장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연구소 연구위원 (jeond@ibs.re.kr)

한국의 1966년 일인당 GDP를 찾아보니 $133로 전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으나 2023년엔 $33,147로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뉴스 기사에도 자주 나오듯이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최초의 나라를 이룩한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바탕은 미래를 내다보는 리더십(lead- ership)과 정부, 산학연의 노력과 희생, 교육열 등을 꼽을 수 있겠다. 그 중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등 연구기관의 중요성, 기여와 역할, 도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출연연의 시작은 베트남전 파병을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받은 원조금으로 1966년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이다. 그 당시 예산을 써야 할 데는 넘쳐났을 것이다. KIST 설립은 아무것도 없던 시절, 미래를 내다보고 과학기술에 투자한 것과 원조금을 부패한 세력의 손으로부터 지켜낸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포항제철을 건설할 때도 그 자금을 뺏어가기 위해 활동했던 세력에 대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여러 후진국들이 원조를 받았으나 부패로 종자씨를 다 먹어버린 것을 볼 때 이런 면도 가볍게 봐서는 안 되겠다.

이후 여러 출연연 기관들이 설립되며 우수한 인력이 모이고 젊은 인재가 배출되고 좋은 결과가 생산되는 선순환의 시작을 이루어, 한국의 산업화와 고도발전을 견인했음은 주목할 사실이다. 원자력연구원을 통한 원자력발전 산업 선진화, 전자통신연구원을 통한 반도체 산업 발전, 최근 주목 받는 국방과학연구원을 통한 방위산업 선진화 등등 지면이 부족하다. 공통점은 오랜 기간의 꾸준한 투자와 연구원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결과를 이룬 것이다.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한국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규모가 큰 R&D도 가능해지고 있다. 한 국가의 국력을 평가하는 척도로 대형 가속기시설과 핵융합로 등이 이용되기도 하며, 많은 노벨물리학상이 가속기시설을 이용한 연구에 기반하고 있다. 국내에도 1988년 포항방사광가속기 건설을 시작으로 여러 대형가속기 시설이 구축되고 있다.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새로운 영역을 가다보니 구축과정에서 부족한 점이 노출되기도 하지만, 앞서가며 성공과 실패를 경험한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의 대형 프로젝트 관리 방법을 적극적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을 동원한 철저한 점검과 사업관리 시스템 도입 등을 들 수 있다. 최근 좋은 번역기들이 많아져서, 한국인 전문가만으로 평가단을 구성하고 보고서를 한글만 고집할 이유가 없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이번 호에 함께 실린 “국내 대형가속기 기관의 운영 현황과 미래 계획” 관련 글들은 국내 4개의 대형가속기 시설에 관한 것으로 거대과학(Big Science) 관련한 정부의 투자 노력과 성과를 공유하고자 함이다.

출연연 등 연구기관들은 국가 임무와 다양한 연구를 위해 대형 연구프로젝트부터 소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이 과정에서 대학과 협력하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한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경쟁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서로에게 메기가 되어 더욱 발전을 불러오는 시너지를 가져온다. 미국도 여러 국립연구소들이 대학과 협력·경쟁하고 있으며, 미국 국립연구소 간에도 가속기시설 등 대형 프로젝트에 대해 경쟁적으로 제안서를 내고 선정 이후 각 연구소의 장점에 따라 협력하여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 미국이 전 세계 연구 분야의 리더십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밖으로는 미·중 패권경쟁이 가열되고, 안보환경이 급변하는 시기로 진입했다.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차세대 원자력, 인공지능, 차세대 통신, 첨단 로봇 제조, 양자 등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지정하며 과학기술의 우위와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출연연 등 연구기관들의 역량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안으로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히 젊은 인력 확보와 관련해 급격한 출산율 하락, 중·고등학교의 수학·과학 교육의 약화, 의대 쏠림현상 등을 들 수 있다. 여러 연구기관에서 젊은 연구원을 뽑을 때 지원자가 최근 급감하는 것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인재이며, 인재 확보를 위해 국가 간, 분야 간 글로벌하게 경쟁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과학기술분야의 외국의 젊은 인력과 중견 인력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이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비자와 영주권을 늘리고 정주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을 가속할 필요가 있다. 급격히 줄어드는 젊은 세대 인구를 생각할 때, 좋은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출연연 등 연구기관의 65세 정년인 우수연구원의 비율을 확대하고 나아가 정년 환원을 심각하게 고려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다. 다른 여러 이유도 있지만, 연구원들이 진로를 선택할 때 정년도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 교원과 비교 시 열악한 연구원들의 임금피크제도 역시 보완되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의대가 인재 블랙홀이 되는 것은 의사는 대우가 좋고 정년도 없는 것이 학생들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처우가 좋은 분야로 인재가 몰리는 것이 당연하니 과학기술분야의 처우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연구원들이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다는 긍지를 갖게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출연연의 특성상, 획일화와 경직성을 벗어나는 유연함이 없으면 AI 같은 급변하는 분야에서 출연연이 마주하는 위기와 도전은 클 것이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1966년처럼 지금도 예산을 쓸 데는 넘칠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미래 지향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보다 공격적인 과학기술분야 투자와 우수인재 유치와 양성으로 파도를 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국이 천인계획과 과감한 투자로 근래 급격하게 과학기술 역량을 키워 어떤 분야는 미국을 앞섰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R&D 생태계를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변환을 이루고자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으며 2011년 기초과학 발전과 리더십을 위해 기초과학연구원을 설립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선도형 R&D 생태계가 되기 위해서는 한 분야에 선도형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과 이들을 양성하고자 하는 정부와 연구기관의 의지가 중요하다. 선도한다는 것은 추격자보다 더 많은 힘과 노력이 든다. 정부의 의지와 결단이 중요하다. 지난날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를 만들어 도약했듯이, 현재의 한국도 위기와 도전을 넘어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 이 글은 한국물리학회에서 발간하는 웹진 ‘물리학과 첨단기술’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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