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통신요금 인하 논란이 이동통신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다. 다만 예년과 달리 국회와 시민단체가 주도하지 않고 기획재정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으로 구성된 범부처 TF(태스크포스)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 업계입장에서는 더욱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특히 이동통신시장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한 통신요금 인하 방법이 대안으로 부각되면서 단말기식별번호(IMEI) 블랙리스트 도입을 놓고 정부와 이통사간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IMEI 블랙리스트는 무엇이고 도입되면 어떠한 변화들이 벌어질까?
IMEI(International Mobile Equipment Identity)란 총 15자리(형식 승인코드 6자리, 모델 제조코드 2자리, 모델별 일련번호 6자리, 검증용 숫자 1자리)로 이루어진 3G 단말기 식별번호를 말한다. 제조사 출고시에 부여되며 분실·도난시 통화를 차단하는 목적으로 활용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각 이통사는 IMEI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화이트리스트에 오른 단말기에 한해 통신망을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즉 SK텔레콤에서 출시된 단말기는 SK텔레콤을 통해서만 개통할 수 있고, KT를 통해 출시된 단말기는 KT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이처럼 IMEI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도입한 배경에는 제조사-이통사-이용자의 단말기 유통구조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통신시장 환경에서 비롯된다. 이통사가 1차적으로 단말기를 구입할 때 단말기의 IMEI를 받아 전산망에 등록하고 이를 이용자에게 판매하므로, 자연스럽게 IMEI 화이트리스트 제도가 구현된 것이다. 이용자가 제조사로부터 ‘공단말기’를 직접 구매한 후 이통사를 찾아가 개통하는 것은, 이통사의 단말기 보조금 지급이 일반화된 현실에서 공단말기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으므로 찾아보기가 어렵다.
즉 제조사-이용자 간의 직거래를 차단(국내 단말기 선택권 통제)하여 이용자가 단말기 제조사로부터 ‘공단말기’를 바로 구입하여 사용할 수 없게끔 하는 것이 현재의 우리나라 이동통신시장의 유통구조인 셈이다. 또한 이통사의 보조금 관행에 따라 제조사-이통사-이용자의 유통구조가 정립되어 있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이통사들이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유지하는 이유
이처럼 국내 이통사들은 왜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걸까? SK텔레콤과 KT의 명분은 이렇다. SK텔레콤의 경우,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방식 간에는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가 공존하고 있어 이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이해 관계자들 간의 충분한 논의 및 신중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존의 화이트리스트 방식이 단말기의 도난·분실시 이동전화 번호로만 신고해도 단말기 사용 차단이 가능한데 이는 전산상 이동전화번호와 IMEI를 함께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국내 통신망 및 서비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출처불명의 해외단말기에 대한 최소한의 관리장치 역할을 하고 최적화된 서비스 제공을 위해 단말기 스펙을 파악하는 대리변수로 활용할 수 있는 순기능이 있다는 논리이다.
KT의 경우에도 단말기 분실ㆍ도난 대응, 네트워크 품질 제고, 고객 편의성 제공 등 현행 화이트리스트의 순기능을 감안시 블랙리스트 도입은 중장기적으로 신중히 검토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화이트리스트 관리 시 단말기 도난, 분실 발생시 처리가 용이하여 해당 통신사에만 신고하면 타인의 불법 사용 등 오용을 막을 수 있고, 블랙리스트만 확인하는 국가는 단말기 분실시 통신사가 이를 확인할 수가 없어 개인이 직접 경찰서 등에 신고해야 하는 불편함과 동시에 단말기 소유권의 문제 등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블랙리스트로 전환할 경우 사전에 검수되지 않은 단말기 유통으로 인한 네트워크 품질 및 단말기상 문제도 발생할 우려가 있고, 사업자의 공식 검수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은 단말기로 인해 네트워크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이 높아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는 MMS(Multi-media Message Service) 서버를 통해 각 단말기의 모델 정보를 관리함으로써 지원 불가 모델에는 MMS 미지원 단말기임을 고객에게 피드백하고 있지만 단말번호를 등록 없이 사용할 경우, 모델에 대한 정보가 사업자에 없어 MMS를 포함한 각종 부가서비스 제한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존의 화이트리스트 제도는 이용자의 해외 단말기 선택권을 통제해왔다는 점에서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이 정부와 국회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IMEI 관리권한을 이통사에게 부여함으로 인하여, 이용자가 해외 단말기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저해하였고, 현재 전파연구소에 의하여 해외 단말기에 대해서도 적합성 평가가 실시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통사의 화이트리스트에 의한 단말기 통제는 이중 검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국가에서 블랙리스트 제도 도입
이와 함께 소비자가 제조사로부터 직접 단말기를 사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제조사는 통신사에 단말기를 납품하고 통신사가 대리점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되파는 왜곡된 유통구조가 만들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출고가를 부풀리고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대신 비싼 통신요금으로 비용을 회수하는 기형적인 이동통신 시장이 형성된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통신사가 특정 단말기의 대리점 마진을 조정하는 것만으로 휴대폰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특히 이통사간 USIM 이동이 저해될 수도 있다. IMEI 화이트리스트 방식은 특정 단말기를 해당 이통사에서만 쓰도록 강제하기 때문에, 이통사들이 단말기 유통권과 가격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근본 원인이 된다. 2010년 방송통신위원회가 USIM 이동 제약에 대한 시정 명령을 내리면서 SK텔레콤과 KT가 사업자간 USIM 이동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했지만, 개통이력이 없는 신규 휴대폰은 해당되지 않아 미봉책에 그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달리 미국과 유럽 등 많은 국가에서 단말기를 호환이 가능한 모든 이통사를 통해 마음대로 개통할 수 있는 IMEI 블랙리스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통사가 기본적으로 모든 단말기의 가입을 허용하고, 분실이나 도난 등으로 사용할 수 없는 휴대폰의 IMEI 번호만 따로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IMEI 블랙리스트 제도가 도입돼 제조사가 직접 소비자에게 단말기를 팔고 이통사는 요금 상품과 USIM만 판매하게 된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이동통신 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다.
원고는 국회의 공식입장이 아니며, 국회의 입장과 배치될 수도 있는 순수한 사견임을 밝힘. |
- 양용석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정책비서관
- 저작권자 2011-05-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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