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영광 뒤에는 부끄러운 수치도 있다. 15일(한국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는 2023년 과학계를 빛낸 10대 혁신적인 사건을 발표하며, 과학계를 부끄럽게 한 수치스러운 사건 4가지도 선정해 발표했다.
성희롱으로 축소된 과학
지난 8월 남극기지에서 일하던 여성 기계공이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옷 속에 망치를 지니고 다녀야 했다고 폭로한 보도가 이뤄졌다. 남극기지 특유의 고립된 환경과 마초 문화로 인해 성폭력이 만연했으며 신고도 묵살됐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발표한 보고서의 내용은 더 충격적이었다. 59%의 여성이 남극기지에서 성희롱,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여성의 72%는 이런 행위가 남극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NSF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무실을 만들고 24시간 헬프라인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성희롱 사태만의 영향은 아니겠지만, 2023~2024년 시즌에 예정된 남극 프로젝트의 절반이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NSF 관계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프로젝트들이 연장되면서 맥머드 기지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수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노후 선박 대체를 위한 비용 증가 등으로 인해 최전방의 남극 연구가 흔들리고 있다. 사이언스는 “지구의 기후변화에 대한 영향을 조기 경고하는 지역을 모니터링하는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며 “남극 연구의 전망이 밝지 않으면 신진 연구자들이 다른 분야로 떠나갈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팬데믹보다 큰 불신

코로나19 팬데믹을 유발한 사스코로나바이러스-2가 검출된 지 3년이 넘게 지났지만 바이러스의 기원을 두고 시끄러운 한 해였다. 많은 과학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우한의 시장에서 판매되는 감염된 동물로부터 자연적인 간접 전파로 인해 시작됐다는 이론을 지지한다. 그런데 지난 3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중국 정부가 통제하는 연구소에서 바이러스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며 그저 음모설로 치부됐던 중국 실험실 유출설이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불신을 키운 데는 중국의 태도도 한몫했다. 중국은 간접 전파 시나리오를 평가하려는 시도에 응하지 않았고, 연구소에 대한 독립적인 평가 역시 거절했다. 하지만 대유행을 초래했을 것으로 보이는 구체적인 사건이나 관련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미국 대통령실 직속 국가정보국장실(ODNI)은 지난 6월 중국 우한 실험실에서 바이러스 유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보고하며 중국 실험실 기원설을 여전히 배제하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실험실 사고에 대한 우려로 인해 미국 정부는 전염병 잠재력을 가진 바이러스 연구를 보다 엄격하게 규제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규제가 전염병 관련 연구에 방해가 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초전도체, 혁명에서 수치로

올해 초 만해도 ‘혁명’으로 불리던 연구가 해를 넘기지 못하고 수치가 됐다. 지난 11월 7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는 섭씨 20.5도의 실온에서 초전도 현상을 구현했다고 밝힌 랑가 디아스 미국 로체스터대 교수팀의 논문을 철회했다. 이 연구에서 발견된 물질은 초전도성을 띨 때 분홍색으로 변한다고 해서 ‘레드매터(red matter)’라는 별명이 붙었다. 연구팀이 주장한 물질이 다른 연구에선 재현되지 않아 신빙성에 문제가 불거졌다. 11명의 공동 저자 중 8명이 ‘논문의 무결성이 훼손됐다’는 의견과 함께 철회를 요청했다. 디아스 교수가 철회에 동의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디아스 교수의 논문 철회는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2020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은 신뢰도 문제로, 2023년 7월 물리학 분야 권위지인 ‘피지컬 뉴스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에 게재됐던 논문은 데이터 조작 혐의로 철회됐다. 한편, 지난 4월에는 디아스 교수가 워싱턴주립대에서 2013년 작성한 박사학위 논문을 일부 표절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전해졌다. 디아스 교수는 의혹이 제기된 모든 부정행위를 부인했다.
한편, 네이처는 퀀텀에너지연구소 등 한국연구진이 개발했다고 주장했던 상온 초전도체, ‘LK-99’도 함께 언급했다. 네이처는 “온라인에서 확산된 한국 연구진에 의한 상온 초전도체 연구는 비윤리적 행동은 없었지만, 상온상압 초전도체 실현의 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주목받는 실수”라고 언급했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 검증위원회는 4개월의 검증 끝에 “‘LK-99’가 초전도체라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결론을 13일 발표했다.
과학계에도 미친 ‘머스크 리스크’

트위터는 수익 다각화를 모색한다는 이유로 지난 7월부터 사명을 엑스(X)로 개명했다. 트위터는 과학자들에게도 중요한 채널이었다. 연구 결과를 홍보하고, 이슈에 대해 논의하는 공간이었다. 또 잘못된 정부와 싸우기 위해 엑스를 중요한 정보 출처 플랫폼으로 사용했다. 엑스 개명 이후 콘텐츠 관리가 축소됨에 따라 혐오 발언과 오남용 등 고유의 문제는 더욱 증가했고 많은 과학자들이 엑스를 떠났다.
‘네이처’가 7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트위터를 사용하던 과학자 중 7%가 사용을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92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 조사에서 47% 이상이 엑스 사용을 줄였다고 답했다. 이들은 마스토돈, 링크드인, 인스타그램과 같은 다른 채널로 옮겨갔다.
머스크 인수 이후 학술검색 API를 유료화한 것도 한몫했다. 학술검색 API는 트위터에 기록된 방대한 데이터와 고급 필터링 도구에 대한 접근권한을 부여했다. 유료 고객이 아니라도 승인받은 연구원들은 학술검색 API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머스크 인수 이후 이 기능이 유료화되면서 매월 수만 달러의 이용료를 낼 수 없는 연구원들은 엑스를 떠났다.
사이언스는 “트위터의 데이터를 활용하던 수십 개의 연구가 중단되거나 다른 플랫폼을 활용하는 식으로 연구 방향을 바꿨어야 했다”며 “2024년 1월부터 유럽연합에서는 엑스와 같은 플랫폼이 독립적인 연구자들에게 데이터 접근을 부여해야 한다는 내용의 ‘디지털 서비스 법’이 시행되는데, 이 법이 얼마나 현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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