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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연구해야 하는가? 산업화부터 도전연구까지 Athen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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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을 앞둔 ’21년 1월 15일, 과학기술정책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하고 에릭 랜더 MIT 교수를 내정하였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해당 보직이 19개월간 공석이었고 조직 규모 또한 축소되었던 것에 비교할 때 바이든 행정부의 차별화전략은 ‘과학기술’ 이였음을 공표하는 인사였다. 1944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과학기술보좌관 바네바 부시 박사에게 2차 세계 대전 후 국민과 국가를 위해 과학과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묻는 편지를 보냈듯 바이든 또한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질문을 랜더 교수에게 던졌다. 첫째, 공중보건과 관련된 요구에 대처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둘째, 경제성장을 가속화 하고 일자리를 늘리면서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해결책은 무엇인지. 셋째, 중국과 경쟁하면서 경제번영과 국가안보에 관련된 미래기술에서의 세계선도 위치를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넷째, 과학기술을 통해 격차를 줄이고 미국인 모두가 과학기술의 성과를 누리는 법에 대하여. 다섯째, 미국 내에서 과학과 기술의 장기적인 발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였다. 본문에 편지의 질문을 축약해 옮긴 걸 감안하여도 이 짧은 질문들 속에 미국의 과학기술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지도자의 진지한 고찰이 깊이 담겨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과학기술정책의 뿌리 ‘과학 그 끝없는 프런티어’

시계를 1944년으로 돌렸을 때, 루스벨트 대통령과 킬고어 상원의원은 대통령이 통제하는 조직 설립을 통해 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축적된 과학기술역량을 뉴딜정책에서와 같이 경제 및 산업진흥의 도구 수단으로 삼고자 했다. 한편 바네바 부시 그룹은 연구의 자율성을 핵심으로 갖춘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조직을 만들길 원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그 당시 가장 큰 과학기술정책 이슈였던 1. 전시 중 개발된 과학기술관련 지식의 빠른 확산, 2. 질병퇴치를 위한 의학연구 프로그램 설계, 3. 공공과 민간 연구기관의 효율적 정부 지원과 4. 미래 우수 과학인력 확보를 위한 과학자 지원 방법 등에 대한 답을 원했고. 1945년 부시 그룹은 질문별 위원회를 구성하고 6개월의 논의를 통해 미 국립과학재단(NSF)의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보고서 ‘과학, 그 끝없는 프런티어’를 완성하였다. 위 보고서는 과학자의 연구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하고 도전을 장려하는 과학기술발전의 모티브를 제공함과 동시에 국가현안에 대한 과학자의 미션을 제안하는 등 7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 과학기술정책의 대표 기조로 유지되고 있다.

물론 부시의 보고서가 제출된 이후 바로 NSF가 설립된 것은 아니다. 5년간 킬고어 그룹과 부시그룹은 대논쟁(Long Debate)을 통해 법안을 수정하고 때로는 거부하기도 하였으며 끊임없이 보완하였다. 1950년 3월 의회와 대통령(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은 서거하였고 트루먼 대통령이 직을 수행)은 NSF의 설립을 승인하였으며 그 기본체제에는‘과학 그 끝없는 프런티어’ 보고서가 있었다. 1. 즉각적이고 단기적인 연구성과로부터의 자유, 2. 압력단체로부터의 자유, 3. 중앙집권적 기관에 의한 독재로부터의 자유라는 ‘과학연구의 자유’ 원칙이 바로 그것 이었다(이한진, 2021). 바네바 부시는 기초연구 분야를 전공하지 않은 미국의 대표적인 공학자였으며 과학기술의 경제사회적 실용화의 중요성 또한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직접적인 실용화 결과로 금방 나타나지 않더라도 기초연구가 모든 개발의 기반이 된다고 생각하였으며 연구주제와 연구자의 자유가 궁극적인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굳건히 과학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의 모습에서 그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경제적·고위험의 미래지향 연구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출연연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출연연은 어떠한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해 왔을까. 정부가 연구기관을 설립하여 운영해온 역사는 세계 주요국들의 경우도 100여년 밖에 되지 않았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1966년이 되어서야 첫 번째 정부출연연구기관인 KIST가 설립되었다. 공공연구기관의 경우 국가혁신체제 내에서의 역할과 역사적 상황에 따라 나라별로 크게 달라진다(박기범, 2016). 우리나라의 경우 1962년 6호 개정헌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과학기술이 기여하고자 하는 중점 분야는 경제 발전이었다. 선진국과의 학문적 경쟁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산업에 필요한 원천기술 개발의 역할을 수행하였고 선진기술에 대한 추격연구를 통하여 선진 산업기술을 국내 산업에 이식하는 역할에 집중하였다. KIST 초대원장 최형섭은 그 당시 인재 선발 과정에서 KIST는 노벨상을 타려는 목적의 학문연구를 수행하는 곳이 아니라고 공표하였으며 KIST를 필두로 한 국내 출연연들은 개발도상국의 ‘기초연구에 집중하느라 국가의 산업, 경제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 다른 연구기관들과 차별된 성과를 창출해왔다. 하지만 8~90년대를 거치면서 산업계의 R&D 투자가 늘어났고 출연연에 대한 연구개발 의존도가 줄어들었으며 대학연구의 활성화로 인하여 국책연구개발사업의 분배 비중 또한 다양해졌다. 기초·원천연구와 문제해결형 연구 분야 등에 대한 투자부족으로 인하여 수반된 수월성 연구부족, 사회문제 해결 기여 부족은 국민 체감성과 저하, 코리아 R&D 패러독스와 투자대비 저성과라는 비판을 불러 왔다. 이에 출연연은 원천기술을 선도하는 역할에 집중하기 시작하였으며 first-mover 연구를 수행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특히 기업이나 개인이 담당하기 어려운 국가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공공적 연구 부문에 대한 출연연의 역할 수행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비경제적·고위험의 미래지향 연구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이를 지원하는 정부 또한 기초연구예산을 증액하고 연구자들이 소신껏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등 과학기술계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위임자-대리인 이론의 관점으로 접근한 과학기술정책방향

이처럼 국가가 연구자의 미래지향 연구에 집중하기 위한 연구주제의 자유를 확보해줌과 동시에 지원하는 과정은 과학정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공익적 연구를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비영리조직인 공공연구기관의 경우 정부와 예산과 조직에 있어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정부는 직접 연구개발을 할 수 없고 비영리조직인 연구기관 또한 정부의 예산을 지원 받기 때문인데 그 계약의 구조는 위임자-대리인 이론(Principal-agent theory)의 관점으로 접근 가능하다. 해당 이론의 가장 큰 특징은 집단 간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위임자인 정부는 상대적으로 과학기술의 결과 생산방식이나 비용에 무지할 수밖에 없으며 대리인인 연구자의 경우 위임자가 지지하는 목표를 공유하지 못 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적합한 연구자를 선택하지 못하는 역선택 문제가 발생하거나 선정된 연구자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표적으로 적합한 대리인을 선정하기 위한 심사과정과 올바른 성과평가의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

적합한 대리인을 선정하는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여겨지는 방법은 동일 분야 내 다른 연구자들의 피어 리뷰를 통해 심사하는 것이다. 비전문가인 예산 집행자나 타분야 연구자들의 평가로 연구주제가 심사되는 경우 심사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연구과제가 선정될 확률이 높아 수월성이 확보되는 연구를 선정하기 어렵다.

또한 고위험의 도전적 연구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성과평가제도이다. 고도의 수월성을 확보하고 성공가능성이 낮은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연구자가 가질 수 있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결과를 인정해주는 문화와 제도의 정책이 필요하다. 모험적 연구수행의 결과물과 과정을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성과로 인정해주는 것은 도전적 연구를 장려하는 문화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 물론 연구비 유용, 연구목적과 상관없는 비용 지출 등은 강력히 막아야 하지만 성과측면에서 까다로운 성과지표를 세우고 단기간의 성과를 요구하게 되면 선정된 연구자가 기존 연구를 반복한 보여주기식 연구결과를 제공하거나 정책적 아젠다로 연구를 각색한 낮은 성과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또한 이는 감시 비용의 증가가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기에 유인을 통한 동기 확보가 더 효과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김현성, 1996).

도전적 연구의 뿌리를 내리고 조성하는 데는 더 오랜시간이 필요

10월은 노벨상 수상 발표의 달이다. 여느 때와 같이 이번 발표에서도 한국 연구자의 이름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노벨상 수상을 위한 성과를 내는데 16.9년, 노벨상을 수상하기까지 31.4년의 시간이 소요된다(차소영 외 2019). 도전적 연구의 뿌리를 내리고 연구문화를 조성하는데는 더 오랜시간이 필요하며 과학기술강국들은 그 과정을 이미 지나왔다.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더 많은 연구자들이 자신있게 ‘실패할 연구 하지만 성공하면 세상을 바꿀 연구를 하고 있다’고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미래에 한발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발간하는 ‘TePRI Report 가을호’ 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박규홍 KIST 정책기획팀 선임연구원
저작권자 2021-11-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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