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에서부터 몽골인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대초원의 유목민들은 오랫동안 흥미로운 관심의 대상이 돼 왔다.
이 지역의 초기 유목민 그룹 중에는 5,000여 년 전 폰틱-카스피해 대초원에서 확장하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 목축인인 얌나야(Yamnaya)인들이 있었다.
이 같은 청동기 시대의 인구 이동은 광활한 지역에 걸쳐 유전자도 이동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궁극적으로 스칸디나비아 목축인과 시베리아로 팽창한 그룹을 서로 연결했다. 그런데 이들 유목민들이 청동기 시대에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런 먼 거리를 여행했는지는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이런 의문에 대해 독일 예나의 막스플랑크 인류사연구소(MPI) 팀이 주도한 새로운 연구에서 놀랄 만한 중요한 단서가 드러났다.
청동기 시대의 이주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식이 변화, 즉 가축의 젖을 마시기 시작한 식습관 채택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15일 자에 발표됐다.

고대인 치석에 있는 펩타이드 분석
연구팀은 고고학 기록에서 흔하지만 특별한 정보 소스를 활용했다. 보존된 고대인 골격의 치아에 있는 치석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치아에 쌓인 치석을 떼어내 첨단 분자 기법으로 성분을 추출한 뒤 저항성 보호 물질 안에 보존돼 있는 단백질들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가축 젖을 마셨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식별해낼 수 있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연구를 이끈 고단백질체학 전문가인 시반 윌킨(Shevan Wilkin) 박사는 “패턴이 엄청나게 강력했다”며, “테스트한 청동기시대 이전 동석기시대 인의 90%는 유제품을 섭취한 증거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고, 반대로 초기 청동기시대 인의 94%는 명백하게 밀크를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중요한 패턴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밀크 음용 목축인들이 어떤 종류의 젖을 먹었는지 알기 위해 추가로 데이터를 분석했다.
윌킨 박사는 “다른 종 사이의 젖 펩타이드 차이는 근소하지만 중요하다”고 말하고, “이를 통해 소나 양, 말 등 어떤 종의 젖을 마셨는지를 재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말 가축화 시작된 곳, 기존에 알려진 곳과 달라
대부분의 밀크 펩타이드는 소나 양, 염소 같은 종을 나타내고 이는 고고학 유물에 비춰볼 때 놀랄 만한 일이 아니지만, 두 고대인 치석에서는 예상치 못하게 말젖의 펩타이드가 발견됐다.
윌킨 박사는 말 가축화가 유라시아 고고학에서 깊이 있게 토의되는 주제라고 전했다. 중앙아시아에서 말젖 음용이 초기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카자흐스탄의 보타이(Botai) 지역이었다. 연구팀이 두 개체의 보타이 유골에서 나온 치석을 분석한 결과 말젖 음용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최근의 고고학 연구에서 보여주듯이, 보타이 지역에서 발굴된 초기 형태의 프르제발스키(Przewalskii) 말이 오늘날의 가축화된 말의 조상이 아니라는 생각과 일치한다.
대신 말 가축화와 마유 음용은 폰틱-카스피해 대초원으로부터 서쪽으로 1,500km 떨어진 곳에서 시작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논문 시니어 저자인 니콜 보이빈(Nicole Boivin) MPI 고고학 분과장은 “이번 연구 결과는 매우 명확하다”며, “목축인들이 동쪽으로 팽창해 나가기 시작한 바로 그때에 낙농으로의 주된 전환이 있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낙농 채택은 문화적 혁명”
동쪽으로의 이동에서는 말들도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보이빈 교수는 “대초원 인구집단은 가축들을 더 이상 식육용으로만 활용하지 않고, 다른 추가적인 특성 예를 들면 젖을 짜거나 수송용으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밀크가 정확하게 어떤 중요한 이점을 제공했는지는 더 조사해 보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매우 건조한 환경에서 추가적인 영양분과 풍부한 단백질 및 수분 공급원인 가축의 젖은 가혹하고 광활한 대초원에서 생존에 매우 중요했을 가능성이 높다.
윌킨 박사는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하나의 문화적 혁명”이라고 말하고, “초기 청동기 시대 목축인들은 유제품이 몇 가지 근본적인 이점을 제공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고, 그렇게 되자 이들이 광대한 대초원을 가로질러 팽창해 나가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김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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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9-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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