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빵’, ‘면’
마치 삼총사의 구호 같은 이 음식을 듣고 탄수화물 특유의 달큰한 맛과 ‘최애’ 메뉴가 떠올라 침이 고인다면, 당신은 탄수화물 ‘덕후’가 맞다. 최근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탄수화물을 멀리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탄수화물은 단백질, 지방과 함께 3대 필수영양소 중 하나다. 우리 몸은 탄수화물을 포도당으로 전환시켜 근육세포와 뇌의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몸이 요구하는 연료의 공급을 위해서는 적당한 탄수화물 섭취가 필요하다고 권한다.
그런데 사람의 이러한 탄수화물 사랑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기 훨씬 전, 80만 년 전 고대 인류부터 시작됐다는 연구 결과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소화효소 복제 증가, 농경생활 시작 근거
식생활은 인간 진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되어 왔다. 특히 탄수화물 소화 능력은 생존과 환경 적응, 농경사회 시작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알려진다. 실제 현대인과 고대 인류의 DNA를 비교한 연구를 통해 농경사회 이후 소화효소 복제가 급격히 증가했음이 밝혀졌다. 또한, 농업이 시작된 지역에서 곡물 가공 흔적을 추적한 '인간의 기원과 식단 변화의 유전자 특징 비교(→바로가기)' 연구는 농경사회가 아밀라아제 유전자 선택 압력을 강화했음을 시사한다.
아밀라아제는 타액과 췌장에서 분비되어 탄수화물을 포도당(단순당)으로 분해하여 체내에 빠르게 흡수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효소다. 특히 탄수화물이 주식인 식단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며, 일반적으로 탄수화물 섭취량이 많은 인구 집단과 지역에서 높은 복제수를 가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 버팔로대와 잭슨연구소 공동연구팀이 인류는 농경사회가 시작되기 훨씬 아전부터 이미 탄수화물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80만년전에 시작된 탄수화물 소화력
연구팀은 다양한 시계열과 집단에서 얻은 98명의 DNA와 현대인의 DNA을 비교 분석하여 아밀라아제 유전자의 30개 패턴을 추출했다. 그리고 그중 68개의 DNA와 현대인의 아밀라아제 유전자 복제수, 침에 들어 있는 아밀레이스를 생성하는 유전자인 AMY1의 진화적 변화를 추적·조사했다.
연구팀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아밀라아제 유전자의 복제수는 농경사회 이전부터 점진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포당 평균 4~8개의 AMY복제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네안데르탈인과 데이소바인에게서도 같은 유전자 복제가 확인됐다.
이는 초기 인류가 수렵채집과 사냥으로 생존하던 시기에 이미 전분이 풍부한 식물을 섭취했음을 의미한다. 이전 연구를 근거로 초기 인류가 뿌리채소나 씨앗 같은 전분 함유 식물을 섭취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오머 고큐멘 버팔로대학교 교수는 “유전체의 초기 복제로 인해 이후 농경사회에서 급증한 탄수화물 섭취와 소화에 적응할 수 있게 됐다.”면서 초기의 유전체 복제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유전자 분석과 더불어 고고학적 분석을 병행한 연구진은 고대 인류 화석의 치아와 취사도구의 잔존물 분석을 통해 석기시대 인류가 전분을 가공해 섭취했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증거는 인간의 식단에서 전분 섭취가 일찍이 자리 잡았으며, 사냥·채집 사회에서 탄수화물 섭취에 대한 선택적 이점으로 작용했음을 뒷받침한다.
식생활과 두뇌 발달의 연관성
연구진은 전분 소화 능력의 향상은 에너지 밀도가 높은 탄수화물을 안정적으로 섭취할 수 있게 함으로써 두뇌 발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특히 농업의 발달은 탄수화물 소화 능력을 더욱 강화하는 촉매가 되었으며, 현대인에게 높은 아밀라아제 유전자 복제수로 이어졌다. 이는 인간이 복잡한 사회를 형성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테일러 헤르메스 아칸소대 인류학과 조교수는 “이 연구는 인간의 뇌가 커지는 데 기여한 에너지가 단백질이 아니라 탄수화물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뒷받침한다”고 평가했다.
- 김현정 리포터
- vegastar0707@gmail.com
- 저작권자 2024-12-27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