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는 해양동물이지만 인간과 닮은 점이 참으로 많다. 사람처럼 새끼를 낳는 포유류에 속하며, 무리를 지어서 생활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 지능 역시 뛰어나 자연에서 인간에 이어 두 번째로 영리한 동물로 꼽힌다.
또한 인간처럼 돌고래도 다양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큰돌고래가 내는 소리를 청백돌고래는 알아듣지 못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간의 언어에서 발견되는 사투리가 돌고래 언어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같은 종이라도 서식 지역이 다를 경우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게다가 돌고래는 각자 이름을 지은 후 평생 사용하며, 공동 육아와 위기에 빠진 동료를 구해주는 이타주의도 사람과 닮았다.

그런데 돌고래가 지닌 인간과의 공통점이 또 하나 발견됐다. 가장 흔하고 잘 알려진 돌고래인 큰돌고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수록 신진대사가 느려져 더 낮은 비율로 칼로리를 소모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생쥐에서부터 원숭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물들의 에너지 소비와 생리학을 연구해온 미국 듀크대학의 연구진은 플로리다와 하와이에 있는 해양 포유류 시설 2곳에 사는 10세에서 45세 사이의 큰돌고래 10마리에 대해 이중표지수(doubly labeled water) 기법을 이용해 실제 대사율을 측정했다.
1980년대부터 인간의 에너지 소비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어 온 이 기법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중수소와 중산소가 첨가된 무거운 물을 동물이 마시게 한 다음, 이 수소 및 산소 동위원소가 체내 신진대사를 거치며 소변 등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되는 양을 추적해 에너지 소비량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40대 되면 20세 미만보다 체지방률 2.5배 높아
인간이 채혈을 할 때 팔을 내밀 듯이 이 시설의 돌고래들은 정기적인 검진 때 자발적으로 꼬리지느러미를 물 밖으로 내밀기 때문에 연구진은 혈액 및 소변을 반복적으로 수집할 수 있었다. 혈액과 소변에 있는 중수소와 중산소의 수준을 분석하면 돌고래가 하루에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평소 얼마나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는지 계산할 수 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애초 연구진은 돌고래가 사람처럼 온혈동물이므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선 신진대사율이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공기보다는 물속에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돌고래는 물속에서 살고 있음에도 같은 몸집의 다른 해양 포유류보다 하루에 17% 더 적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진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인간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사 노화의 징후가 큰돌고래에게서도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나이가 가장 많은 40대 이상 큰돌고래의 경우 체중에 비해 예상보다 매일 22~49% 더 적은 칼로리를 사용했던 것. 그리고 인간과 유사하게 그 칼로리의 많은 부분은 근육이 아니라 지방으로 축적되었다. 때문에 40대 큰돌고래의 체지방률은 20세 미만 돌고래보다 2.5배 높았다.

하지만 40대 돌고래의 체지방률이 높은 것은 결코 운동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돌고래는 3m 높이의 공중으로 뛰어오르고 시속 20㎞ 이상의 속도로 수영할 수 있을 만큼 놀라운 체력을 지니고 있다. 이 연구에 참여한 큰돌고래들 역시 40대까지 활동적인 상태를 유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40대 돌고래들의 식사량이 유난히 많은 것도 아니었다. 이번 연구에서 돌고래가 평소 얼마나 많은 먹이를 먹는지 추적 조사한 결과, 나이가 더 많고 뚱뚱한 돌고래들이 실제로는 더 적은 칼로리를 섭취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운동량 및 식사량과 상관 없어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실험 생물학 저널(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최신호에 발표됐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듀크대학의 레베카 림바크(Rebecca Rimbach) 박사는 “인간 외에 몸집이 큰 동물 종에서 나이와 관련된 대사 저하를 측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식습관 및 생활습관을 제외하고 인간의 나이 관련 체중 증가를 뒷받침할 수 있는 다른 요인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10마리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돌고래에 대한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인간의 신진대사는 20대 이후부터 느려지는 것이 아니라 60세까지는 거의 비슷한 수준의 대사 활동이 이루어지다가 60세 이후부터 매년 약 0.7%씩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8월호에 게재됐다.
큰돌고래의 평균 수명은 45~50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신진대사가 느리고 체지방률이 높은 것으로 밝혀진 40대 큰돌고래는 인간의 70~80대 정도로 보면 된다.
- 이성규 객원기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21-08-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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