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신청부터 인기 공연 예매까지. 1초는 많은 이들의 운명을 가른다. 1초 보다 더 작은 단위를 지켜야 하는 분야도 있다. 스포츠 시합에서는 100분의 1초, 교통관리 시스템은 1,000분의 1초, 휴대전화는 10만 분의 1초, 인공위성항법장치(GPS)는 10억 분의 1초 단위로 시간을 맞춰야 한다. 더 정밀한 1초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인류와 함께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전엔 태양이 1초의 주인이었고, 현재는 세슘원자시계가 1초를 만든다. 새로운 1초의 주인이 될 시계가 등장할 전망이다. 바로 원자보다 작은, 원자핵을 이용하는 시계다.
우리의 1초 만드는 원자시계
천년만년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곳이 있을까. 과학자들은 천년만년을 넘어 수억 년이 지나도 1초의 오차도 없이 일정하게 흐르는 시계를 개발하고 있다.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하는 시간을 1일이라고 한다. 이것을 쪼개 시간과 분, 초를 정했다. 하지만 지구 자전 속도는 시간에 따라 변하므로 시간에 오차가 생겼다. 새로운 시간의 정의가 필요해진 이유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원자시계다. 원자가 1초 동안 움직이는 횟수인 ‘고유진동수’를 이용해 정확한 1초를 측정한다. 원자 속에 있는 전자들은 특정 에너지 상태로 있다. 이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화하려면 에너지를 두 상태의 차이만큼 흡수하거나 방출해야 한다. 전자가 에너지를 얻기 위해(다른 에너지 상태로 변하기 위해) 전자기파를 흡수할 때 진동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바로 고유진동수다.
현재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정한 1초의 정의는 세슘-133 원자가 91억 9263만 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한국의 1초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이 개발한 세슘 원자시계 ‘KRISS-1’을 기준으로 삼는다. 9대의 세슘원자시계가 측정한 평균값이 한국 표준 시간이다. KRISS-1의 오차는 300만 년에 약 1초 정도다. 최초로 개발된 세슘원자시계에 비해 오차를 많이 줄였지만, 더 이상 성능을 높이긴 어렵다. 세슘 원자의 고유진동수가 변하지 않아 성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역사 동안 불변하는 시계
고유진동수가 높은 원자를 활용할수록 원자시계의 정확도는 높아진다. 그래서 고유진동수가 518조 2958억 3659만 865인 이터븀과 429조 2280억 422만 9877인 스트론튬을 이용한 원자시계 개발이 시작됐다. 두 원자의 진동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원자를 향해 여러 방향에서 레이저를 쏴 격자 형태로 가둔 뒤, 고유진동수와 동일한 주파수를 발생시킨다. 이 역시 원자시계지만 마이크로파를 이용하는 기존 원자시계와 달리 가시광선을 이용해서 ‘광’, 그리고 격자에 원자를 가둔다고 해서 ‘광격자 시계’로 부른다. 이론적으로는 300억 년 동안 1초가 어긋나지 않는다.
KRISS는 2021년 20억 년 동안에 1초의 오차를 가지는 이터븀 광격자시계를 개발했다. 그리고 이 시계를 이용해 같은 해 세계협정시(UTC) 멤버가 됐다. UTC는 세계가 공통 시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한 과학적 표준이다. KRISS 연구진은 2025년까지 우주의 나이인 약 138억 년 동안 오차가 1초가량인 이터븀 광시계를 개발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국내 기술로 개발한 광격자시계는 2035년께 상용화 예정인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에 싣는 것이 목표다.
300억 받고 3조년
300억 년이면 충분한 걸까. 아직 초기 실험 단계이지만 원자 속 원자핵을 이용하는 시계를 구현하면 이론적으로 3조 년 동안 1초가 어긋나지 않는 시계를 개발할 수 있다. 지난 4일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는 세계 최초의 원자핵 시계를 개발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국 콜로라도볼더대의 공동연구소인 JILA연구소와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공동연구팀은 지난 4월 레이저를 이용해 원자핵을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환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핵 시계 구현에 필요한 핵심 부품을 완성했다는 연구를 발표한 것이다.
원자시계의 원리를 원자가 아닌 원자핵에 적용하면 더 높은 정밀도를 얻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그간 꾸준히 제시됐다. 게다가, 원자핵은 원자에 비해 크기도 작고 전자기장 등 외부 방해에 더 안정적이라는 장점도 있다. 문제는, 원자핵의 상태를 전이시키려면 레이저의 광자보다 최소 1000배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토륨의 경우 예외였다. 토레스텐 슈움 오스트리아 빈공대 교수는 “토륨의 핵은 매우 유사한 에너지 상태 두 개를 가지기 때문에 두 상태 사이의 에너지 차이를 매우 정확히 알아낸다면, 레이저로 전환이 가능하다”며 “4월 우리가 발표했던 성과가 바로 이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한 가지 더 필요한 기술이 있었다. 원자보다도 더 작은 원자핵에 정확하게 레이저를 조사하는 기술이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진은 풀루오르화 칼슘 결정을 이용했다. 플루오르화 칼슘 결정의 격자 내부에 토륨 핵을 내장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진공 자외선을 쪼여 토륨 원자 핵의 상태를 바꿨다. 핵시계 구현에 필요한 핵심 기술들이 모두 완성된 것이다.
연구진이 제시한 핵시계의 정밀도는 아직 상용 원자시계에도 이르지 못한다. 슈움 교수는 “인류가 개발한 첫 자동차는 마차보다도 느렸듯,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는 일 자체가 목표였다”며 “2~3년 내 원자시계를 초월하는 정밀도를 가지는 핵시계를 구현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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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4-09-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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