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지 않게 포근했던 지난 7일 방문한 대전 신성동에 위치한 과학카페 ‘QUA(쿠아)’에서는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2022년 12월 설립된 과학‧메디컬 일러스트 제작 매니지먼트 회사 ‘사이언스노트’의 설립 1주년 전시 ‘Science Illustrator: 무엇을 그리는가?’가 이곳에서 열렸다. 연구 현장과 피부를 맞대고 활동하고 있는 작가 12팀의 작품이 더 넓은 세상과 만났다.
한 폭의 그림에 담기는 수년의 연구
과학자들의 새로운 발견은 논문이라는 글로 세상에 공개된다. 한 편의 논문이 완성되기까지 과학자들은 수년 동안 밤을 지새우고, 실패를 거듭한다. 실패를 끝에 얻은 값진 내용을 더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각종 그래프나 그림이 논문에 삽입된다. 논문 속 그림은 다른 예술 작품처럼 지나치게 추상적이어도, 심미적 아름다움만 추구해서도 안 된다. 수년간의 노력이 담긴 연구 결과를 정확하면서도 함축적으로 담아야 한다
이중 시각적으로 훌륭한 그림은 해당 논문이 실리는 국제학술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국제학술지는 논문의 우수성을 중심으로 표지논문 2~5편을 고른 뒤, 그림을 투표 등으로 평가하여 표지논문을 결정한다. 표지논문을 장식하게 되면 연구자 스스로에게 영광인 것은 물론 자신의 연구를 더 널리 퍼뜨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래서 과학자들도 자신의 논문 속에 좋은 그림을 포함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러한 필요성에 맞춰 국내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과학자들의 연구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작가군이 형성됐다. 복잡한 새로운 발견을 직관적으로 그려내는 이들은 ‘과학 일러스트레이터’로 불린다. 처음에는 소수의 회사만 있었지만, 국내 과학자들의 연구 역량이 높아지며 자연스럽게 이 시장도 커졌다. 사이언스노트는 저마다 각개전투하고 있던 과학 일러스트레이터들을 과학자들과 연결해주는 매니지먼트 회사다.
과학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어떻게 과학을 그리나
사실 과학을 전공한 과학 일러스트레이터는 소수다. 그럼에도 ‘과학스러운’ 결과물을 낸다. 사이언스노트의 전시회에서는 과학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어떻게 과학 그림을 그리는지 알 수 있도록 구성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자와의 소통이다.
과학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의뢰인인 연구자에게 논문 초록과 대략적인 시안을 받은 뒤 작품을 시작한다. 의뢰인 초안을 제시하고, 이를 끊임없이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예술성 뒤에 연구의 의의가 갈리지 않도록 연구자들과 의견을 나누는 것이 이 과정의 핵심이다. 논문을 제출할 학술지의 취향도 중요하다. 학술지마다 정확한 전달력, 신비한 느낌, 재치 등 선호하는 그림이 다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림 한 장에 연구 성과를 대략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가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작품을 그려낼 때는 과학보다 재치와 상상력을 앞세우는 묘미도 낼 수 있다. 사이언스노트 전시에서는 작가들의 상상력이 가득 담긴 작품들이 많았다. 크록스를 신고 발자국을 찍는 우주인, 행성 여행자를 위한 AI 여행 키트 등의 작품이다.
한편, 전시가 열린 과학카페 쿠아 역시 조금 특별하다. 과학카페 쿠아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의 ‘민간 과학문화 활동지원’ 사업의 지원으로 지난 해 11월 개관했다. 이곳에서는 산‧염기성에 따라 색이 변하는 원리를 이용한 ‘오로라에이드’, 압력을 체감할 수 있는 ‘스타프레소’ 등 과학적 원리를 이용한 식음료를 판매한다. 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카페 내부에서 열리는 다양한 과학문화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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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3-12-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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