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와인을 천지인(天地人)의 결과물이라고 부른다. 최적의 기상(天)과 양질의 토양(地) 조건에서 숙련된 농부(人)가 포도를 가꾸어 낼 때 최고의 와인이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어떤 기상 조건에서 최고의 와인이 만들어질까.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최근 50년간의 프랑스 보르도 지역 기상 데이터와 보르도 와인에 대한 평론가의 평점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연구 결과를 11일 국제학술지 ‘아이사이언스(iScience)’에 발표했다. 흥미롭게도 인간의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로 인해 와인 맛은 오히려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로 인해 품질 상향 추세
동일한 포도나무에서 자란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도 그 맛은 해마다 미묘하게 달라진다. 열매의 맛에는 나무에서 열매가 자라고 수확되기까지의 기간뿐만 아니라 나무가 휴면 상태인 겨울 날씨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는 포도 재배 기간 중의 날씨가 열매의 맛에 미치는 영향만이 다뤄졌다. 게다가, 날씨와 기후(장기간의 날씨)가 농작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는 알려졌지만, 인간의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가 농작물의 품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분석되지 않았다.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1950년부터 2020년까지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보르도 와인에 대해서는 평론가들의 평점 기록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평점 기록을 장기간의 기후 데이터와 결합하여 계절의 길이, 기온, 강우 변화 등 날씨 요인이 와인 품질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분석 기간 동안 보르도 와인의 평균 평점은 향상되는 추세로 나타났다. 강우량이 많고, 더 따듯하고, 재배 기간이 짧았던 해에 생산된 와인이 평점이 유독 좋았다. 구체적으로 더 높은 평점을 받은 해의 포도나무는 따뜻하고 습한 봄, 덥고 건조한 여름, 시원하고 건조한 가을, 시원하고 습한 겨울을 보냈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날씨 변화와 일치한다.
제1저자인 앤드료프 우드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원은 “기후변화로 인해 보르도 지역에서 이러한 유형의 날씨 패턴이 나타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후변화가 계속 진행됨에 따라 와인의 품질을 계속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만, 극한 기후변화로 인해 나무에 충분한 물이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드 연구원은 “식물은 충분한 물이 없으면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의 공급이 끊이지 않는 선에서는 품질이 향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보르도 와인에 초점을 두고 진행됐지만, 연구진은 후속 연구를 통해 다른 지역의 와인과 기후변화의 연결고리도 탐색해 볼 예정이다. 또한 초콜릿, 커피 등 다년생 작물에서 만들어지는 상품에 기후변화가 미칠 영향도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50년 와인 강국은 프랑스 아닌 영국

한편, 기후변화로 인해 전 지구적 평균 기온이 올라가면서 2050년에는 영국이 주요 ‘샤도네이(샤르도네) 와인’ 생산국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영국은 프랑스나 남유럽 국가들보다 기온이 낮고, 포도가 익는 여름철과 초가을이 짧다. 화이트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포도 품종인 샤도네이는 성장기에 따뜻한 기온에서 풍부한 일조량을 필요로 한다. 영국은 샤도네이 포도가 충분히 익을 정도로 기온이 높지 않아, 덜 숙성된 포도로도 만들 수 있는 스파클링 계열의 와인만 생산해왔다.
영국 레딩대 연구진은 4~9월 평균기온, 9월 최저기온, 6~9월 강우량을 샤도네이 포도가 잘 익을 수 있는 날씨 조건으로 설정했다. 이후 시뮬레이션을 통해 2050년 이들 조건이 어떻게 변할지를 예상했다. 210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 폭이 2.2℃ 이내로 제한된다는 시나리오를 적용했을 때, 2050년 영국 동부와 남동부는 최고 품질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기후조건과 유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주도한 알렉스 비스 영국 레딩대 연구원은 “기후변화로 인해 2050년의 영국은 고품질 샤노데이 와인을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기후가 온화해질 것”이라며 “지구 온난화가 식물 재배지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 yskwon0417@gmail.com
- 저작권자 2023-10-20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