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소바인은 추운 기후를 선호했고, 네안데르탈인은 온화한 기후를 선호했다. 각자 선호하는 기후 조건의 거주지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들은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2018년 특별한 화석이 발견됐다.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장(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연구팀은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에 있는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한 화석 ‘데니(Denny)’가 데니소바인 아버지와 네안데르탈인 어머니를 가진 13세 소녀였음을 확인했다. 추운 데서 온 남자와 온화한 곳에서 온 여자는 어떻게 만났을까. 이들의 사랑을 이어준 것은 기후변화였음이 밝혀졌다.
추운 기후 선호하는 男, 온화한 기후 선호한 女
현생 인류의 유전자에는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호모종(인간의 조상으로 분류되는 종족)의 유전자도 일부 섞여 있다. 아프리카 출신이 아닌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약 2~4%의 네안데르탈인 DNA를 가지고 있다. 반면 동남아시아, 호주 등 지역의 사람들은 비슷한 비율로 데니소바인의 DNA를 가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호모 사피엔스가 12만 년~5만 년 전 아프리카 밖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인류 이동으로 떨어져 살던 호모종들의 거주지가 일부 겹쳤기 때문이다.
지금은 멸종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호모 사피엔스와 함께 가장 최근까지 생존했던 고인류다. 거주지는 서로 다르지만, 수만 년간 동시대에 살며 상호 유전적 교류가 일어났다. 현대 인류에 소량 남아있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DNA가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앞서 언급 13세 소녀 ‘데니’의 화석은 다른 인류 종들 사이의 교배가 흔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됐다.
‘인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답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희귀 화석 표본과 고대 DNA의 유전적 분석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호모종 간 상호 교배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데니소바인의 정보를 알려줄 고대 DNA 자료가 잘 보존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부 유라시아 지역에 약 773개의 네안데르탈인의 표본과 석기가 있는 반면, 데니소바인의 인류학 기록은 16개의 유적지뿐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 연구단 연구진은 색다른 방법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 해답을 찾았다. IBS 연구진은 이탈리아의 기후 및 고생물학 연구팀과 공동 연구를 통해 슈퍼컴퓨터 기반 고기후‧식생 시뮬레이션 결과와 고인류학적 증거를 결합했다. 이 과정에서 기후변화가 초기 인류 종들의 상호 교배 시기와 장소를 결정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음을 규명했다. 연구결과는 8월 11일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실렸다.
거주지 연결하는 오작교, 6번 생겼다
우선, 연구진은 슈퍼컴퓨터 기반 고기후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이 결과를 고인류학적 증거와 유전자 자료와 결합해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서로 다른 서식 환경 선호를 파악했다. 데니소바인은 툰드라와 냉대림과 같은 추운 환경에 더 잘 적응했고, 네안데르탈인은 온대림과 초원지대를 선호했다. 데니소바인의 거주지를 추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쟈오양 루안 IBS 기후물리 연구단 연구위원은 “네안데르탈인은 남서부 유라시아를 선호하고, 데니소바인은 북동쪽 유라시아를 선호했다”며 “거주지가 지리적으로 분리돼 있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동 연구진은 두 호모종 간 상호 교배가 이뤄진 장소와 시기도 추정했다. 지구 자전축과 공전궤도로 인한 기후변화는 인류 서식지에 영향을 미친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지구 공전궤도가 더 타원형이고, 북반구의 여름에 태양과 지구가 서로 가까이 있을 때 호모종 간 서식지가 지리적으로 겹쳤다. 알타이산맥, 사르마틱 혼합림, 이베리아 반도 등 북유럽 및 중앙아시아지역에서 공존 시기 중 최소 6번의 상호작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두 종 간 상호 교배 지역은 간빙기 시기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연구진은 이 변화가 기후로 인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유라시아 지역의 식생 패턴이 지난 40만 년 동안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분석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과 온화한 간빙기 조건이 온대림을 북유럽에서 유라시아 중앙부 동쪽으로 확장시키면서 네안데르탈인이 데니소바인의 주요 거주지까지 갈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진 것을 확인했다. 이 지역에는 ‘데니’의 화석이 발견된 알타이 산맥이 포함된다.
연구를 이끈 악셀 팀머만 단장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서식지를 공유했을 때 두 집단 간 상호작용이 많아져, 상호 교배의 가능성도 함께 높아졌을 것”이라며 “빙하기-간빙기 변화가 오늘날까지 유전적 흔적으로 남아있는 인류의 ‘러브스토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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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3-08-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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