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주성분인 탄소는 지구 전체를 끊임없이 순환한다. 지구 해양과 생물권, 대기권에 존재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10%에 불과하다. 빙하기와 간빙기를 반복하는 장기적 기후변화에도 불구하고 해양 밑 지각으로 흡수되는 탄소의 양은 일정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금까지의 정설이었다. 최근 해양 퇴적물을 조사한 국제공동연구결과 이 정설이 틀렸음이 밝혀졌다. 지각으로 흡수되는 유기탄소의 양이 기존 예측과 달리 기후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해양 퇴적물 통해 신생대 기간 해양 유기탄소 매장의 직접 증거 찾아
국제공동해양시추프로그램(IODP) 연구진은 1월 4일 저명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해양 퇴적물 속 유기탄소 양을 분석한 연구결과를 보고했다. IODP는 전 세계 26개 나라가 참여하는 공동연구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 바다를 대상으로 해저 시추를 통한 연구로 해양 지구과학 분야의 이슈를 해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IODP에 참여했으며, 지난해 2월에는 동해 울릉 분지가 IODP의 과학적 시추 연구지로 최종 승인되기도 했다.
대기 중 탄소는 대부분 이산화탄소(CO2)의 형태로 존재한다. 식물이 광합성에 의해 탄소를 흡수하면 먹이사슬에 따라 동물에게 이동한다. 일부는 생물의 호흡을 통해 기권으로 이동하고, 일부는 생물의 사체나 배설물 형태로 지권으로 이동한다. 지권에 묻힌 탄소는 오랜 시간이 흐르면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가 된다. 때로는 지구 깊은 곳에서 수백억 원의 가치를 지닌 ‘천연 다이아몬드’를 재탄생하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기후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오랫동안 해양 퇴적물에 묻혀 있는 탄소의 양을 연구해왔다. 하지만 깊은 바다 속에서 실제 샘플을 채취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예측히는 방식을 택했다. 자연에서 탄소는 두 종류의 안정적인 동위원소 형태로 존재한다. 탄소 동위원소인 탄소-12와 이보다 중성자가 하나 더 있어 질량이 무거운 탄소-13이다. 동위원소란 원자번호가 같은 원소지만 중성자수가 달라 질량이 다른 원소를 말한다.
조금이라도 질량이 무거우면 순환이 어렵기 때문에 생명체는 더 가벼운 동위원소인 탄소-12를 선호한다. 무거운 탄소-13보다는 가벼운 탄소-12를 흡수한 뒤 유기물을 생산한다. 그렇기 때문에 탄소-13과 탄소-12의 비율(탄소13/탄소12)을 고려하면 해양의 주위환경 및 고기후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점을 고려해서 과학자들은 그간 해양에 매장된 유기 탄소의 상대적인 양을 연구하기 위해 동위원소 비율을 사용해왔다. 그리고 그 계산 모델을 기반으로 지금까지 해양에 매장된 유기 탄소의 양이 지난 3,000만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믿어져 왔다.
IODP 연구진은 세계 최초로 해양에 매장된 유기탄소 양을 파악하기 위해 퇴적물을 사용했다. 퇴적물 양을 유추할 수 있는 계산 대신 실제 증거를 찾아 나선 것이다. 연구진은 1,500회 이상의 선상 탐사 중 해양 유기탄소 매장량을 조사하기 적절한 81회 동안 수집된 퇴적물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신생대 기간 동안 해양에 매장된 유기 탄소의 양을 알아냈다.
분석 결과 이전 예측과 달리 유기탄소 매장량의 변동성이 컸다. 전 세계적으로 유기탄소 매장량은 신생대 3기에 해당하는 마이오세(약 2,300만~533만 년 전)와 플라이오세(약 533만~258만 년 전) 기간에 가장 많았다. 하지만 특이적으로 약 1,500만 년 전의 플라이오세 중기에는 매장량이 대폭 줄었다. 고기후와 비교한 결과 연구진은 이 기간이 2,300만 년 지구의 역사 중 가장 따뜻했던 시기였음을 파악했다. 연구진은 유기탄소 매장이 줄어든 이유가 온도 의존적인 박테리아 때문일 것으로 추정했다. 유기물을 분해하는 미생물의 대사활동은 온도가 10℃ 올라갈 때마다 두 배가량 증가한다.
교신저자인 이게 장(Yige Zhang) 미국 텍사스A&M대 박사는 “실제 해저 퇴적물 코어 분석 결과는 온난화가 해양 유기 탄소 매장을 줄이고, 동시에 대기로 반환되는 탄소의 양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과학자들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해양은 더 민감하게 지구의 기후 시스템에 반응한다”고 말했다.
바다 식물 플랑크톤은 기후변화 피해 막는 ‘방어막’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다 식물 플랑크톤이 기후변화로부터 해양 생태계의 피해를 막는 방어막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 연구단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인한 서식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바다 식물 플랑크톤의 유기탄소 생산량은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그 결과는 지난 해 12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보고했다.
식물 플랑크톤은 바다에서 가장 중요한 유기체다. 햇빛이 닿는 바다 표층에 주로 서식하며 광합성을 통해 바다 생물의 먹이인 유기탄소를 합성하고, 인류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내놓는다. 지구온난화는 해양의 심층부보다 표층부 바닷물을 더 데운다. 표층수가 따뜻해지면 밀도가 가벼워지며 심층부와 층이 더 명확히 분리(성층화)된다. 식물 플랑크톤은 영양염과 이산화탄소를 광합성에 이용하는데, 해양이 성층화되면 심층부에 풍부한 영양염이 표층부에 덜 도달한다. 즉, 지구온난화는 식물 플랑크톤의 먹이를 줄인다.
이전 연구들은 표층부의 영양염 고갈이 식물 플랑크톤 생산성을 감소시켜 해양 생태계를 교란하고, 기후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IBS와 미국 하와이대 공동연구팀은 북태평양 해양과학기지 관측 자료와 슈퍼컴퓨터 기반 기후 시뮬레이션 결과를 종합한 결과, 이전 연구의 결론과 달리 표층부 수온 상승에도 불구하고 식물 플랑크톤 생산성은 증가한다는 결론을 내놨다.
공동연구진은 선행 연구들이 식물 플랑크톤의 ‘영양 흡수 조절 능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와이 해양 시계열 관측(HOT‧Hawai’i Ocean Time-series)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난 30년간 수집된 식물 플랑크톤 자료에 따르면, 표층 영양염이 매우 고갈된 시기에도 식물 플랑크톤 생산성은 일정하게 유지됐다. 열악한 조건에서 식물 플랑크톤은 인(P) 대신 황(S)을 광합성에 사용하며, 영양염 부족 환경에 적응하기 때문이다. 이를 영양 흡수 조절 능력이라고 한다. 바다 식물 플랑크톤이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신진대사 전략을 바꾼다는 의미다.
IBS 연구팀은 슈퍼컴퓨터 ‘알레프(Aleph)’ 기반 기후 모델 시뮬레이션을 통해 식물 플랑크톤의 영양 흡수 조절 능력이 향후 전 지구 해양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했다. 그 결과, 전 지구 표면 온도가 약 4℃ 상승하는 2100년까지 플랑크톤 생산성은 전 지구적으로 약 5%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제1저자인 권은영 IBS 기후물리 연구단 연구위원은 “식물 플랑크톤 생산성이 강화되면 바다는 대기로부터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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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3-01-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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