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영장류와 쥐, 고래까지를 포함하는 포유류, 또는, 개미나 벌 등의 무척추동물에서 우리는 사회성을 관찰할 수 있다. 부모와 자녀가 아니더라도 다른 개체들과 교류를 하며 살아간다는 의미다. 이에 비해, 곰이나 코알라, 레오파드와 같은 동물들은 짝짓기나 새끼들을 돌보는 일 외에는 대체로 혼자 지낸다.
사회성과 생존의 관계
사회성이 발달된 종들의 경우에 다른 개체들과 얼마나 많은 개체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가는 그들의 생존과 번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를 테면, 사람은 대인 관계가 돈독한 경우 질병으로부터 회복이 좋고, 테러 공격 이후에도 정신적 회복력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암컷 차크마 개코원숭이(Papio ursinus)의 경우도 다른 개체들과 사회 유대가 안정적이고 강력한 개체들이 그렇지 않은 개체들보다 사회적 불안 상황을 더 잘 견딘다고 보고되어 있다.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사회적 불안 요인인데, 이 같은 재난 뒤의 회복력이 사회적 유대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우리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는, 사회적 유대 관계가 재난 시에 우리가 마주하는 부정적 영향을 완화시킨다는 ‘사회적 완충 가설(Social buffering hypothesis)’과도 닿아있다.
최근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연구 논문은 카리브해 푸에르토리코 근처의 작은 섬 ‘카요 산티아고’에 사는 붉은 털 원숭이들을 관찰한 결과, 파괴적인 허리케인이 지나간 이후 원숭이들의 사교성이 전보다 높아졌다고 보고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연구진들은 이 섬의 붉은 털 원숭이들을 수십 년간 관찰해왔다. 2017년 9월에 굉장한 위력을 가진 허리케인 ‘마리아’가 섬 근처를 지나갔는데, 이로 인해,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사망했고,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허리케인으로 기록되었다.
폭풍 뒤에 더 가까워진 원숭이들
카요 산티아고 섬에도 이 허리케인으로 인한 피해가 컸는데, 섬의 초록이 63퍼센트 쓸려가 사라졌다. 그에 비해, 섬에 살고 있던 붉은 털 원숭이들의 개체수는 크게 감소하지 않았다. 허리케인 직후에 그 이전 해에 비해 세 배 많은 사망이 있었지만, 이후 개체수는 금방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재해에 의해 환경이 크게 변한데 비해 개체수 감소는 그리 크지 않고, ‘섬’이라는 환경상 서식지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는 것은 재난을 당한 이후 지역에 남아 이를 극복해야 하는 인간의 상황과 흡사하다고 해석한 연구진은, 허리케인 이전의 3년, 이후의 1년간의 원숭이들에 대한 행동학적 데이터를 비교해 분석해 보기로 했다.
먼저, 연구진은 허리케인 전후로 원숭이들의 친화적 행동에 변화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개체별로 그 양상이 어땠는지 등을 분석했다. 원숭이들 간의 유대는 2미터 거리 이내에 함께 앉아 있는 ‘근접성’의 시간당 빈도와, 서로 ‘털 고르기’를 하는 시간으로 측정했다.
내성적인 원숭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변화
허리케인 이후 원숭이 집단 내에서 친화적인 행동을 더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개체별로 보면, 허리케인 이전에 사교성이 적었던 원숭이들일 수록 허리케인 이후 이전보다 사회적 유대 활동이 눈에 띄게 늘어났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원숭이들은 원래 친하던 개체들과의 털 고르기 시간을 더 늘리는 대신 새로운 털 고르기 대상을 늘리는 식으로 사회 관계망을 넓혔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연구진은 이것을 더 내성적이거나 소극적이던 개체들이 적극적으로 사교성에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특히, 그것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해석했다.
사회적 유대를 통한 포용, 지지 확보
이후, 연구진은 허리케인 이후 원숭이들이 유대 관계를 위해 선택한 대상은 어떤 개체들이었는지를 분석했는데, 새로운 털 고르기 대상들은 혈연관계에 있는 개체들이 아니었고, 특별히 집단 내의 높은 계급의 개체들도 아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특정 대상과 집중적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대신, 전반적으로 사회 관계망을 형성하고 사회적 지지와 포용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인 것으로 연구진을 해석했다. 재난 이후 먹이나 앉아서 쉴 그늘과 같은 자원들이 이전보다 부족해진 환경에서 원숭이들이 사회적 유대를 바탕으로 취약성을 보완해갔다는 것이다.
인류세(Anthropocene)에서 기후에 의한 환경 변화는 건강에 해로운 여러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이번 연구에서 본 바와 같이 허리케인 이후 원숭이들의 사회적 유대가 강화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관찰이라고 연구진은 강조한다. 그간 인간 활동으로 인한 여러 환경 변화에 특히 높은 적응력을 보여온 붉은 털 원숭이들에게서 확인한 이 같은 특성은, 재난 상황에서 종에 따라, 개체에 따라 달라지는 회복력과 적응력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준다고 덧붙였다.
- 한소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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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5-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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