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박각시벌레 유충은 따뜻한 지역에서는 위장을 하기가 한층 쉽게 녹색을 띤다. 그러나 기온이 차가운 곳에서는 검은색으로 변해 더 많은 햇빛을 흡수할 수 있다.
일부 유기체에서 발견되는 이런 현상을 표현형 전환(phenotypic switching)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숨겨져 있는 이 같은 전환은 위험한 유전적 또는 환경적 변화에 대응해 활성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우디의 킹 압둘라 과학기술대(KAUST) 연구팀이 이 표현형 전환의 진화를 수만 세대에 걸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해, 안정적 상황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스위치 메커니즘이 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작동해 유기체의 일부 특성을 변경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전산 저널 ‘네이처 컴퓨테이셔널 사이언스(Nature Computational Science)’ 14일 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유기체가 이 ‘숨겨진(hidden)’ 스위치를 유지하는 것은 정상적인 조건에서 높은 수준의 유전자 발현 안정성을 유지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보고했다.
무성 미생물 9만 세대 진화시켜 분석
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유기체들이 수많은 세대에 걸쳐 상이한 환경에서 겪는 변화들을 조사하는 방법으로 이 과정을 연구해 왔다.
예를 들면 몇 년 전 한 연구팀은 담배 박각시벌레 유충을 몇 세대에 걸쳐 사육해 이 벌레의 친척인 토마토 박각시벌레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색 변화를 관찰, 유도했다.
KAUST의 전산생물학자인 신 가오(Xin Gao) 교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합리적 가정을 바탕으로 세심한 통제 하에 수행되면 실제 상황을 모방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도구”라며, “실물 시료와 장비를 갖추고 수행하는 실험실 실험(wet-lab experiments)에서는 관찰하기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한 원리들을 관찰,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가오 교수와 KAUST 전산생물학 연구 과학자인 히로유키 구와하라(Hiroyuki Kuwahara) 박사는 연구를 위해 1000마리의 무성(asexual) 미생물의 진화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고안했다. 각 유기체에는 특정 단백질 X의 발현을 조절하기 위한 유전자 회로 모델이 주어졌다.
연구팀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9만 세대를 진화시켰다. 동일한 비전환(nonswitching) 유전자 회로를 가진 초기 개체군은 안정적인 조건에서 3만 세대 이상 진화시키고, 이렇게 진화한 개체군을 통칭해 ‘고대 개체군’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어 중간 세대 개체군으로 명명한 다음의 3만 세대는 20세대마다 환경이 바뀌는 상황에 노출시켰다. 마지막 3만 세대의 파생 개체군은 고대 개체군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환경에 노출됐다.
진화 통해 전환 기구 장기간 유지
분석 결과, 안정된 환경에서 진화한 고대 개체군과 파생 개체군은 모두 안정성에 최적화된 유전자 발현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 상이한 점이 있었다. 고대 개체군의 안정성에는 표현형 전환이 포함되지 않은 반면, 마지막 파생 개체군에는 표현형 전환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구와하라 박사는 이 같은 차이가 중간 개체군이 변동하는 조건에 대처하기 위해 전환을 택한 데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뮬레이션 연구는 유기체 개체군들이, 변동하는 환경에서는 쉽게 전환할 수 있는 낮은 임곗값 스위치를 더욱 안정된 환경에서는 높은 임곗값 스위치로 점차 진화시킴으로써, 장기간의 환경 안정성에 걸쳐 전환 기구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구와하라 박사는 이것이 작은 돌연변이 변화들을 통해 비전환 상태로 되돌리는 것보다 용이하다고 말했다. 그는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대신에 우리는 진화의 축전기(evolutionary capacitor)처럼 작동하는 일종의 ‘숨겨진’ 표현형 스위칭을 확보해, 실질적인 변동이 일어날 때의 유전적 변이와 대체 표현형을 나타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다음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사용해 더 복잡한 생물학적 시스템을 연구하는 한편, 실물 실험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과도 상호 협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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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1-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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