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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병희 객원기자
2020-06-05

어미는 후성유전자로도 자손 보살핀다 후성유전적 변형, 자손대에 전달돼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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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어머니들은 뱃속에서 9개월 동안 아기를 키운 다음 출산 후에도 몇 년 동안 갓난 아기를 양육한다. 또 자녀가 자라면서 기본적이거나 더 단계 높은 생존 과제들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를 양육시킨다.

인간과 달리 초파리는 알을 낳은 뒤 스스로 발달하도록 내버려 둔다. 이런 현상은 마치 무책임한 부모가 어린 자녀를 포기하는 것 같이 보이게 한다.

그러나 자연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최근 독일 막스플랑크 면역학 및 후성유전학 연구소 산하 아시파 아크타르(Asifa Akhtar) 연구소의 새 연구에 따르면, 초파리 어미는 후성유전체(epigenomes)에 심도 있게 담긴 삶의 지침서를 전달함으로써 자손들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생명과학저널 ‘셀’(Cell) 4일 자에 발표됐다.

어미의 활성 후성유전적 변형인 H4K16ac가 염색질 조직을 재구성하고(녹색), 자손(핑크빛의 초파리 난소)들의 유전자 활성화를 유도하는 그림. © MPI of Immunobiology and Epigenetics, M. Samata; created using Biorender.com

유전체에서 후성유전체로

우리는 부모로부터 DNA 염기서열로 암호화된 유전 정보를 물려받는다. 그러나 인체의 모든 세포가 동일한 DNA를 포함하고 있더라도, 이 세포들은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다른 유전자를 ‘발현(express)’시킨다.

DNA는 히스톤 단백질 둘레를 감싸며 뉴클레오좀(nucleosome)이라고 불리는 단일한 반복 단위를 형성하고, 많은 뉴클레오좀은 함께 결합돼 모든 세포의 핵에 있는 염색질(chromatin)을 만든다.

그런데 히스톤 단백질에 화학기를 첨가하는 것과 같은 후성유전학적 변형(epigenetic modifications)은 염색질 조직에 변화를 일으켜 유전자를 활성화시키거나 또는 침묵시킬 수 있다. 따라서 후성유전학은 세포들이 활성화시킬 유전자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추가 정보 계층을 나타낸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공통적인 유전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서로 다른 ‘후성유전체’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어미로부터 세대 간 정보 전송

부모의 생식세포인 난모세포와 정자는 새로운 유기체를 만들기 위해 융합한다. 대부분의 후성유전적 마크들은 각 세대 사이에서 지워지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 같은 후성유전학적 되돌림(reset)은 각각의 새로운 개체에서 모든 유전자가 새롭게 읽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아시파 아크타르 박사팀은 이번 연구에서 기존의 생각과 다른 특별한 히스톤 단백질 변형을 발견했다. 16번째 라이신(H4K16ac)에서 히스톤 H4의 아세틸화가 어미의 난모세포에서 어린 배아에까지 세대 간 유전돼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라이신(Lysine)의 아세틸화를 나타낸 그림. ⓒ Wikimedia / Trcum

H4K16ac는 전형적으로 유전자 활성화와 관련된 후성유전적 변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난모세포에서나 혹은 배아 생성 후 첫 3시간 동안에는 유전자가 발현되지 않는다.

아시파 아크타르 박사는 “이 같은 사실은 배아 생성 초기 단계에서 H4K16ac가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초파리의 초기 발달단계에서 히스톤 마크의 기능을 조사하기 위해 전장 유전체(genome-wide) 분석 패널을 수행했다.

그 결과, 유전자 활성화가 시작되기 전 초기 발달단계에서 H4K16ac가 수많은 DNA 영역을 마킹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배아 발달단계에서 어미의 후성유전적 조언 필수

자손에게 H4K16ac가 갖는 중요성은 어미가 이 마크를 자식에게 전하지 못했을 때 명백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MOF 효소를 제거한 초파리 어미를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했다. MOF는 H4K16ac 변형의 증착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면역형광염색을 한 초파리 난모세포를 포함한 초파리 난소 모습. 빨간색으로 염색된 H4K16ac 히스톤 변형이 개별 난모세포에서 분명하게 보인다. 유전자 정보를 담은 DNA는 청록색으로 염색됐다. © MPI of Immunobiology and Epigenetics, A. Alexiadis

H4K16ac 정보 없이 탄생된 자식을 조사하자 연구팀은 놀랍게도 정상적인 조건에서 H4K16ac에 의해 마크된 유전자가 더 이상 적절하게 발현되지 않아 염색질 조직이 심각하게 파괴됐음을 발견했다.

모계의 H4K16ac 지시를 받지 못한 대다수의 배아들은 치명적인 발달 결함으로 연이어 사멸했다. H4K16ac는 생식세포계열에서 유익한 기능을 지니고 있으며, 이후의 배아 발달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 요소임이 확인된 것.

논문 제1저자인 마리아 사마타(Maria Samata) 박사후 연구원은 “이것은 마치 아이가 처음 집에 혼자 있을 때, 엄마가 음식은 어디에 있고 비상사태 시에는 누구에게 전화를 할 것인가 등등을 적은 스티커 메모를 남겨놓는 것과 거의 유사하다”고 말했다.

초파리에서 얻는 교훈

아시파 아크타르 박사는 “초파리 어미들이 임신하기도 전에 후성유전학을 통해 자식들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사실은 매력적인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어 포유류로 방향을 돌려 암컷 쥐도 난자를 통해 H4K16ac 히스톤 변형을 자손에게 전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인간도 역시 어머니의 H4K16ac를 성공적인 배아 발달을 위한 ‘청사진’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가능성을 높여준다. 인간의 경우도 과연 그러한 지 그리고 그 청사진이 무슨 정보를 담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일은 향후의 연구 과제로 남겨져 있다.

김병희 객원기자
hanbit7@gmail.com
저작권자 2020-06-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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