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의 타고난 특성(계급)을 후성유전학 기법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플로리다 목수 개미(Camponotus floridanus)에게 화학물질을 주입해 개미의 계급을 후성유전학적 영향(epigenetic influences)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연구를 내놓았다.
이들은 이번 연구에서 특히 코레스트(CoRest)로 알려진 신경 억제인자(repressor)가 병정개미나 일개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원인임을 발견했다. 이 연구는 ‘분자 세포’(Molecular Cell) 지 12일 자에 발표됐다.
논문 시니어 저자인 셸리 버거(Shelley Berger) 교수(세포 및 발달생물학)는 “우리는 이것을 후성유전학적 메커니즘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는 “인체 조직과 기관의 유전체가 동일한 것과 똑같이 개미들의 유전체도 거의 동일하다”고 말하고, “세포 분화로 이어지는 후성유전학적 변화가 존재하며, 우리는 유기체 수준에서 이런 극적인 분화를 이끄는 후성유전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탐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버거 교수팀은 암과 노화 및 신경퇴행성질환에서 유전체 조절과 후성유전학의 영향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TSA로 병정개미 재프로그래밍
플로리다 목수 개미 종은 거의 동일한 유전자 구성을 가졌으나 별개로 구분되는 두 계급이 존재한다. 즉, 크기가 좀 더 작은 마이너 일개미들은 먹이를 구해오고 새끼를 보살피며, 좀 더 큰 메이저 병정개미들은 집단을 보호하는 전사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2015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실험에서 개미에게 히스톤 디아세틸라아제(HDAC) 억제제인 트리코스타틴A(TSA)를 주입해 메이저 병정개미들이 먹이를 모으는 마이너 일개미처럼 행동할 수 있도록 재프로그래밍 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이번 연구에서 정확한 후성유전학적 메커니즘을 깊이 연구하기 위해 개미 초기 성인기의 특정 시간(부화일, 5일째, 10일째)에 TSA를 주입했다. 그리고 유전자 발현 및 염색질 마크와 같은 후성유전학적 활동 표지자를 측정할 수 있도록 고안된 한층 구체적인 테스트를 실시했다.
신경 억제인자 코레스트는 초기에 확인해 두었다. 메이저 병정개미들이 TSA로 재프로그래밍되자 마이너 일개미처럼 행동하기 시작했고, 통상 마이너 개미들에서만 켜져 있던 많은 유전자들이 재프로그래밍된 메이저 개미들에서도 활성화됐다. 이런 변화는 약물의 짧은 반감기 이후에도 지속됐다.
논문 제1저자인 칼 글라스태드(Karl Glastad) 박사후 연구원은 “우리는 또한 코레스트가 이 메이저 개미들에서 상향 조절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코레스트를 통한 염색질 조절, 사회적 행동 분화에 중요한 역할
재프로그래밍 단계 동안 실시한 유전자 발현 테스트에서는 코레스트가 유충 호르몬(JH)을 분해하는 효소를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충 호르몬은 마이너 개미들에게서는 자연스럽게 수치가 올라가 있다.
자연 상태의 마이너 개미들과 재프로그래밍된 메이저 개미들을 비교하자 거울에 비친 것과 같이, 높은 코레스트에 높은 유충 호르몬 수치 그리고 유충 호르몬의 낮은 저하율 패턴이 나타났다.
글라스태드 연구원은 “이는 코레스트를 통한 염색질 조절이 이 개미들의 사회적 행동 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매우 강력한 증거”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재프로그래밍이 단지 짧은 기간 동안에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논문에서 메이저 병정개미를 부화 후 최대 5일째까지 일개미로 재프로그래밍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10일째에는 재프로그래밍이 불가능했다.
버거 교수는 “이것은 오래 지속되는 행동 변화와 연결되는 일시적인 후성유전적 가소성(plasticity)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후성유전적 메커니즘은 복잡한 사회적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뇌세포 조절 연구에 활용
글라스태드 연구원은 “타이밍의 중요성과 호르몬 그리고 후성유전학이 호르몬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이번 연구에 모두 합쳐져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개미를 통한 한 가지 사례에서 보여준 것은 이러한 것이 매우 짧은 시간에 후성유전학적으로 어떻게 조절되느냐는 것이며, 이는 다른 종들에게서도 유사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코레스트는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 등 동물 종 전체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이 단백질은 원치 않는 신경 유전자들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번 연구는 이 단백질이 행동을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는 최초의 증거 가운데 하나다.
버거 교수는 “코레스트의 활동이 개미나 꿀벌, 말벌 등의 막시목 곤충들에게 고도로 보존돼 있다고 믿는다”며, “이 곤충들은 매우 흥미롭고 복잡한 사회성을 지니고 있고, 우리는 복잡한 사회성이 어떻게 조절되는지를 시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단순 모델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세포 수준에서의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관찰하면서 뇌의 단일 세포들을 연구할 계획이다.
버거 교수는 “뇌의 어떤 세포 유형이 개별적으로 조절되고 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고 말하고, “이는 CoRest 조절 변화가 뇌의 매우 특정한 세포 유형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흥미로운 초기 데이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밝혔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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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11-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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