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조개에 달하는 사람의 장내 미생물은 효소의 보물창고와 같다. 장내 미생물은 사람이 섭취하는 음식물, 약물, 독소를 직접 변형시키고 대사 시킨다. 장내 미생물은 주로 유익하지만, 때때로 약물의 생체 이용과 효능을 변형하는 역할도 한다.
이 장내 미생물이 파킨슨병의 가장 중요한 약물치료제 중 하나인 레보도파(L-dopa 또는 엘도파)의 성능을 떨어뜨린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밝혀졌다.
하버드 의대 연구팀은 14일 사이언스(Science)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장내 미생물이 파킨슨병 치료제인 레보도파를 도파민으로 분해한 후 다시 2차로 메타-티라민(m-tyramine)으로 변형시키는 2단계 장내 미생물 효소 경로를 식별했다"고 발표했다. 즉 장내 미생물이 가장 중요한 파킨슨병 치료제를 먹어치워 치료 효과를 크게 떨어뜨린다는 것.
세계적으로 1000만 명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으며, 레보도파는 50년 넘게 중요한 치료제로 사용되어왔다.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서 도파민이 고갈되면 환자들은 떨림, 경직성, 움직임의 느림 등 운동 장애를 일으킨다.
도파민의 전구체인 레보도파는 일반적으로 구강으로 섭취하는 약이다. 레보도파는 소장에 흡수돼 혈액-뇌 장벽을 넘어 뇌로 들어가며, 뇌에서 도파민으로 전환된다. 도파민의 보충이 파킨슨병의 증상을 완화시키지만 파킨슨병의 진행을 막지는 못한다.
이번 연구의 제1저자인 에밀리 발스쿠스(Emily P. Balskus) 교수 연구실의 마이니 레크달(Maini Rekdal) 대학원생은 "약물이 체내에서 목표물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고, 갑자기 독성이 생길 수도 있고, 도움이 덜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어떻게 장내 미생물이 신체를 통과하는 약의 의도된 경로에 간섭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첫 번째 연구 대상으로 파킨슨병의 1차 치료제인 레보도파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레보도파는 파킨슨병을 완화하기 위해 뇌에 도파민을 전달하지만, 약 1~5%만이 실제로 뇌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파킨슨병 치료제 효과는 1~5%
1960년대 후반 레보도파가 도입된 이래 연구자들은 신체의 효소가 내장의 레보도파를 분해하여 약물이 뇌에 도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약업계는 원치 않는 레보도파 신진대사를 차단하기 위해 신약인 카비도파를 도입했다. 함께 복용하면, 치료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해명되지 않는 신진대사가 많고, 사람마다 매우 가변적이다. 레보도파가 뇌 밖에서 도파민으로 변질되면, 심한 위장 장애와 심장 부정맥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만약 뇌에 도달하는 약이 적을 경우, 환자들은 더 많은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작용들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레크달은 레보도파 실종의 배후에 미생물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이전 연구에서 항생제가 환자의 레보도파의 기능을 향상시킨다고 밝혀졌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박테리아가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어느 박테리아가 그런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박테리아가 어떻게, 왜 약을 먹는지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다.
연구팀은 ‘인간 미생물체 프로젝트(Human Microbiome Project)’를 활용해서 어떤 장내 미생물이 범인인지 찾기 위해 박테리아 DNA를 추적했다. 프로젝의 결과 오직 한 가지 변종인 엔테로코커스 페칼리스(E. faecalis)는 매번 모든 레보도파를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인간의 효소는 장 속에서 레보도파를 도파민으로 변환시키는데, 카비도파는 바로 이 현상을 멈추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다면 연구팀은 왜 카비도파가 엔테로코커스 페칼리스 효소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지 의아해했다.
하지만 원인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연구팀은 이미 박테리아 효소를 억제할 수 있는 분자를 발견했다.
레크달은 “이 분자는 박테리아를 죽이지 않고 원치 않는 박테리아의 신진대사를 차단한다. 이것은 단지 비필수 효소를 목표로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와 유사한 화합물이 파킨슨 환자의 레보도파 치료를 개선하기 위한 신약 개발의 출발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장내 미생물의 역할 또다시 주목받아
연구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레보도파의 미생물 대사의 두 번째 단계를 풀기 위해 더 밀어붙였다. 결국 엔테로코커스 페칼리스가 레보도파를 도파민으로 바꾼 후에, 두 번째 유기체가 도파민을 다른 화합물인 메타-티라민으로 변환시키는 메커니즘을 발견했다.
메타-티라민이라는 부산물이 일부 유해한 레보도파 부작용에 기여할 수 있다.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왜 박테리아는 뇌와 관련된 도파민을 먹을까? 장내 미생물은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화학 작용이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가?
이 모든 것은 내장의 미생물이 레보도파를 복용하는 다른 환자들 사이에서 부작용이든 효능이든 극적인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발스쿠스 교수는 말했다.
중요한 것은 미생물 간섭은 레보토파와 파킨슨병에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번 연구는 사람의 몸 안에 누가 있는지,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좋든 나쁘든 사람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확히 발견하는데 중요한 출발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 심재율 객원기자
- kosinova@hanmail.net
- 저작권자 2019-06-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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