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인류족(hominin)은 발원지였던 아프리카에서 머물다 수십만년 전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다른 인류족은 도태되고 현생인류(Homo sapiens sapiens)만이 대륙을 넘어 세계 여러 곳을 석권하게 되었다.
처음 아프리카를 벗어난 초기 인류는 아라비아 반도의 광야나 사막 등 색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애를 먹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막스플랑크 인류역사 연구소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건조하고 혹독한 사막과 같은 극한 환경에 적응할 필요가 없었다.
연구팀은 아라비아 반도 서북부 티스 알 가다(Ti's al Ghadah) 유적지에서 발견한 석기와 화석동물의 잘린 자국 등이 사우디 아라비아로 넘어왔던 초기 인류 생활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 유적들은 기존에 알려졌던 것보다 최소 10만년 앞선 것이다.
당시 아라비아 사막은 푸른 초원
화석 동물상에 대한 안정 동위원소 분석 결과 당시 이 지역은 황량한 사막이 아니라 오늘날 동아프리카의 드넓은 사바나 환경과 비슷한 푸른 초원에 초목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분석 결과는 인류 조상들의 초기 분산이 아프리카를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새롭게 적응한 결과라기보다 범위 확장의 일부로 보는 게 맞다는 주장이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네이처 환경과 진화’(Nature Ecology and Evolution) 29일자에 발표됐다.
초기 인류족이 아프리카를 벗어난 초기 및 후기 분산에 대한 연구는 전세계적인 인류 진화 과정과 함께 인간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호모속(genus Homo)을 구성하는 여러 종들은 학술적으로나 공개 담론에서 종종 ‘인류 혹은 인간(human)’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약3백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이 진화 그룹들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실제로 약3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속(屬)의 다른 호미닌들에 비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특유의 생태학적 유연성을 보였는가는 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토론이 진행 중이다.
아프리카 밖 호모속의 생태 환경 구분
최근 들어 초기 호모 사피엔스는 세계 전역에서 사막과 열대우림, 극지와 고지대를 포함한 다양한 극한 환경을 점령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이와 대조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보다 좀더 빨리 나타나 동시대를 살았던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종은 일반적으로 강과 호수가 있는 환경의 숲과 초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환경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이런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검증하기는 어렵지만 수많은 연구자들은 호모 사피엔스 이외의 종들도 문화와 생태적 적응 능력을 보였다고 주장한다.
‘녹색 아라비아’와 초기 인류 이주
아라비아 반도는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의 교차로에 있다는 중요한 지리학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최근까지 초기 인류의 팽창에 관한 논의에서 제외돼 왔다.
그러나 기후모델과 동굴 기록, 호수 기록, 동물 화석 등에 대한 최근 분석에 따르면 과거의 특정 시점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가혹하고 건조한 사막이 아니라, 다양한 호미닌 군이 살 수 있는 매력적인 초지 환경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아프리카를 벗어난 첫 단계의 직접적 환경 증거
연구팀은 사우디 북부 네푸드 사막에 있는 ‘티스 알 가다’ 유적지에서 새로 고고학적 발굴을 수행하고 발견된 화석 동물상에 대한 분석 결과를 이번 논문에 게재했다.
논문 제1저자 중 한사람인 매튜 스튜어트(Mathew Stewart) 연구원은 “‘티스 알 가다’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고생물학적 장소 중 하나로, 현재 유일하게 연대를 알 수 있는 코끼리나 재규어, 물새 같은 동물을 포함한 중기 홍적세 시대 동물 화석들이 발굴된다”고 말했다.
홍적세는 약170만년~1만년 전의 지질시대로 매머드 같은 코끼리류의 대형 포유류가 많이 살았고 초기 인류가 활동한 시대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는 지금까지 석기가 발견되지 않아 이 동물들과 초기 호미닌과의 연결관계가 불명확했었다.
중요한 점은 이번 연구팀이 동물 뼈에 있는 도살 증거와 함께 석기를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호미닌이 50만년~30만년전 이 동물들과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논문 공저자이자 이번 프로젝트의 수석 고고학자인 미카엘 페트라글리아(Michael Petraglia) 박사는 “이번 발굴 결과는 티스 알 가디를 아라비아 반도에서 처음으로 초기 호미닌 관련 화석 무더기가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며, “이것은 인류 조상들이 초원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동물을 사냥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또한 혁신적으로 지화학적 방법을 화석동물의 치아 법랑질 분석에 적용해 인류 조상들의 이 지역 이주와 관련된 식생과 건조 조건을 확인해 냈다.
안정 동위원소 분석 결과는 오늘날 동아프리카 사바나 환경에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한 건조도를 포함해, 모든 동물들의 먹이에서 풀이 풍부하게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나타냈다.
이 정보는 그 지역에서 발견된 동물들의 종류 분석과 맞아떨어지고, 당시의 특정 시점에는 상당한 양의 물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인간의 적응력 변화에 대한 이해
논문 제1저자인 패트릭 로버츠(Patrick Roberts) 박사는 “이들 초기의 호미닌 군은 상당한 수준의 문화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이 지역으로 이주해 가혹하고 건조한 사막에 적응하도록 요구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동위원소 증거를 보면 초기 인류의 이런 확산은 이 시기에 다른 포유류들이 아프리카와 레반트지방 및 유라시아 사이에서 이동하는 것과 유사한, 좀더 특징적인 범위 확장임을 나타낸다”고 밝혔다.
아라비아 반도를 비롯한 타 지역에서 다른 호미닌 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과거 환경에 대해 좀더 상세하게 연구하면,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다양한 환경에 대한 적응면에서 특유의 유연성을 지니고 있었는지의 여부를 더욱 정확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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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10-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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