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김이나 쌀과자처럼 바삭거림이 생명인 식품들의 포장지를 개봉하면 항상 조그만 팩이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팩에는 조그만 알갱이들이 수백개씩 담겨 있는데, 바로 수분을 흡수하여 식품이 눅눅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실리카겔(silica gel)이다.
누구나 한번 쯤은 본적이 있을 물질인 실리카겔은 표면적이 매우 넓어서 물이나 알코올 등을 흡수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따라서 오래 전부터 건조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식품이나 생활용품의 수분 흡수제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실리카겔이 인류의 당면 과제인 물 부족 문제와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해 줄 핵심 소재로 떠오르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종합 매체인 ABC 뉴스는 대표적 수분 흡수제인 실리카겔이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하여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도하면서, 이 외에도 에너지를 흡수·저장하여 에너지 부족 문제도 해결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링크)
전 세계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리카겔 사용
공기 중의 수분을 포집하여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물로 변환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호주의 뉴캐슬대 부설 하이드로하베스트 센터(Hydro Harvest Center) 소속의 연구팀이다.
이들은 엑스프라이즈(XPRIZE) 재단이 최근 개최한 아이디어 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해 이 같은 연구를 시작했다. 엑스프라이즈는 인류가 당면한 중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상금을 걸고 아이디어를 모집하여 이를 실용화하는 글로벌 비영리 재단이다.
올해 과제는 지구촌 물부족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인데, 이를 위해 지켜야 하는 규정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까다롭다. 참가팀은 대기로부터 하루 최소한 2000L 이상의 물을 추출해야 하되,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며, 그렇게 물을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이 1 리터당 2 센트를 넘어가면 안 되는 규정을 지켜야 한다.
이 같은 과제를 제시한 이유에 대해 재단 관계자는 “대기 중에는 약 11.4조 입방미터(㎥) 이상의 물이 떠돌아다니고 있다”라고 밝히며 “이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1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대회는 9월에 최종 결선이 열리는데, 현재 뉴캐슬대 팀을 비롯하여 인도와 미국, 그리고 영국 등 모두 4개 팀이 최종 결선에 올라가 있는 상황이다.
뉴캐슬대 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이 대학 화공학과의 ‘베다드 모그타더리(Behdad Moghtaderi)’ 교수는 “연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전에 전제 조건으로 전 세계 누구나,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소재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라고 언급하며 “그 결과 실리카겔이 후보로 떠올랐다”라고 말했다.
모그타더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과제 수행을 위한 첫 단계는 밤에 실리카겔을 이용하여 물을 흡수한 다음, 낮에 태양에너지로 흡수한 물을 데워서 증발시키고, 이어서 증발된 수증기를 냉각시켜 수분을 포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가 뜨거울수록 그만큼 수분을 더 많이 머금을 수 있기 때문에, 태양에너지로 실리카겔이 머금고 있는 수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증발시킬 수 있느냐에 연구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것이 모그타더리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실험 내용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신소재 같은 것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라고 강조하며 “공기가 어떻게 수분을 머금고 있는지, 또는 온도에 따라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처럼 이미 알려져 있는 소재의 특성으로부터 공학적 해법을 찾은 것이 우리의 연구 결과”라고 밝혔다.
페인트에 실리카겔 함유시켜 수소에너지 생산
호주의 뉴캐슬대 연구팀이 실리카겔로 대기 중의 수분을 포집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면, RMIT대학의 연구팀은 실리카겔로 신재생에너지를 만드는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벽에 바르면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발전(發電)’ 페인트가 그 주인공이다.
솔라페인트(Solar Paint)라는 이름의 이 페인트는 공기 중의 수증기로부터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는데, 그 비결은 바로 페인트 속에 함유된 실리카겔이다.
RMIT대의 선임연구원이자 이번 연구의 책임자인 ‘토번 데니크(Torben Daeneke)’ 박사는 “솔라페인트에는 합성 몰리브덴 황화물과 산화 티타늄 입자가 들어있다”라고 소개하며 “이들 화합물과 태양광에너지가 실리카겔이 흡수한 수분을 산소와 수소로 분리하여 에너지로 쓸 수 있는 수소를 모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데니크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솔라페인트의 에너지 생산 과정은 태양광 패널을 활용하여 에너지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간편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태양광 패널에 사용되는 웨이퍼(wafer)는 제조하는데 있어 많은 비용과 인력, 그리고 환경오염까지 유발되는 단점을 갖고 있다.
반면에 솔라페인트는 태양광 패널보다 생산하기가 훨씬 더 간편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정제 과정이 간단하여 많은 인력과 비용이 필요치 않고, 유해 화학물질이 발생하지도 않기 때문에 상당히 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데니크 박사는 “솔라페인트는 에너지를 만드는 공정이 복잡하지 않은 데다 경제적”이라고 전하며 “특히 공기 중에 있는 수분과 태양광만 있으면 친환경 발전이 무한히 가능하다는 점에서 미래형 에너지 생산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 효율성만 놓고 보면 솔라페인트는 태양광 패널이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효율 문제만 개선된다면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새로운 다크호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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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4-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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