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SR-71 승무원들의 비행 준비물은?

[밀리터리 과학상식] 철저한 정비 점검으로 초고속, 초고도 대비

SR-71는 실용기 중 사상 최고 수준의 순항고도와 속도를 자랑한다. ⒸUSAF

미국이 지난 1960년대에 취역시켰던 전략정찰기 SR-71은 1999년 마지막 비행을 끝으로 현재는 퇴역했다. 그러나 그 엄청난 비행 성능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항공기는 무려 순항 고도 8만 피트(24km) 최고 속도 마하 3.32를 자랑한다. 실용 유인기 중 최고다.

문제는 이만큼 높은 고도를 엄청난 속도로 비행하는 탓에, 조종사와 기체의 준비가 간단치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조종사의 준비는 더욱 까다로웠다. 인간은 지표면 기압, 중력가속도 1G, 자신의 양발이 제공하는 속도에 최적화되어 진화되었다. 때문에 탑승하는 이동체의 속도와 고도가 높아질수록 인체는 더욱 힘들어진다.

특히 고도 8만 피트를 비행하는 SR-71의 경우, 만에 하나 비상탈출이라도 한다면 순식간에 영하 75도, 해발고도 기압의 10만 분의 1에 불과한 기압에 노출된다. 맨몸으로 노출된다면 몇 초 만에 피가 끓어서 즉사할 수도 있다. 때문에 SR-71의 승무원들은 그에 걸맞은 장비와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전날부터 시작되는 비행 준비

SR-71의 비행 준비는 비행일 전날부터 시작된다. 기술자 4명과 감독관 1명으로 이루어진 항공생리안전팀이 배치된다. 이 기술자들 중 2명은 비행복과 관련 구성품을, 나머지 2명은 낙하산 및 생명 유지 장비 등 조종사들에게 직결되는 장비를 철저히 점검한다. 사소한 마모나 파열이라도 있으면 그 상태로는 절대 비행할 수 없다. 육안 관찰뿐 아니라 작동 시험이 실시되며, 역시 작동 시험에서 불합격한 장비는 그 상태로 비행에 가지고 나갈 수 없다.

특히 SR-71 조종사들이 입는 비행복은 여러 차례 변해 왔지만 가장 마지막에 쓰였던 것은 데이비드 클라크 S-1031C 모델로 단가 12만 달러, 중량 23kg에 달하는 우주복 같은 비행복이다. 총 6겹으로 되어 있으며 맨 바깥쪽은 노멕스 섬유다. 내부에는 기낭이 있으며, 이것이 외부의 기압이 떨어지면 부풀어 올라 조종사를 보호한다.

비행 당일 아침이 되면 점검을 마친 낙하산, 생명유지 장치, 통신 장치 등이 항공기에 탑재된다. 그리고 비행 복도 비행 2시간 전에 탈의실에 준비된다.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결함을 찾아내기 위해, 전날 기타 장비를 점검했던 기술자들이 비행복을 탈의실에 가져다 놓고, 비행복을 점검했던 기술자들이 기타 장비를 항공기에 탑재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또한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이 장비들을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식 절차로, 작업을 진행한 후, 두 기술자의 위치를 바꿔 장비를 점검하게 했다. 이 역시 이중 점검을 위해서였다. 모든 작업은 작업자의 기량이나 숙련도와는 상관없이 체크리스트대로 진행된다.

SR-71 조종사의 이륙 전 마지막 식사는 보통 스테이크와 계란이다. 단백질 함량이 높아 장시간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 주면서도, 배설물이 덜 발생되기 때문이다. 100% 면으로 된 전신 속옷과 양말로 갈아입고 난 후, 임무 시간에 따라 소변 수집 장비를 착용한다. 비행 중에도 소변을 볼 수 있게 하는 장비다.

이후 혈압, 맥박, 체온, 스테이크와 계란을 먹기 바로 전 식사 때 먹었던 메뉴, 취침 및 기상 시간을 측정한다. 비행 중 또는 비행 후 몸에 문제가 생길 경우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이때 조종사들에게 비행 중 기내식을 먹을 것인지를 물어본다. 조종사들의 기호에 따라 기내식을 항공기에 싣는다. 음료수로는 게토레이, 물 등이 특수 용기에 실리고, 식사로는 치약 튜브에 들어간 특수 식량이 지급된다. 이 식량은 주둥이를 헬멧에 난 입구에 찔러 넣으면 취식할 수 있다.

SR-71 조종사들의 비행복. ⒸNASA

비행복을 착용한 후에도 산 넘어 산

이후 비행복 착용이 진행된다. 비행복은 매우 무겁기 때문에 조종사 1명 당 2명의 기술자가 도와줘야 한다. 비행복을 입은 다음에는 조끼 모양의 하네스를 착용하고, 특수 비행화를 착용한다. 그다음에는 헬멧을 착용한다. SR-71 조종사들의 헬멧은 안면부가 다른 부분과 철저히 기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이유는 비행복과 비행 헬멧 내부의 기압이 어떻건 간에 이 안면부를 통해서는 무조건 1기압의 100% 산소가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SR-71 조종사들은 저산소증을 피하기 위해 100% 산소를 호흡한다. 맨 마지막으로 비행 장갑까지 착용하면 비행복 착용이 끝난다.

헬멧과 장갑은 기밀 링을 통해 비행복과 연결, 외부로부터 기밀성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다. 비행복을 다 착용한 조종사들은 리클라이너 의자에 앉아 또 장비 점검을 받는다. 이때 비행복 내의 통신 장치 점검도 이루어진다. 만약 비행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신속히 새 비행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비행복 착용 상태에서는 조종사의 착용감 또한 검사한다. 8만 피트 상공에 들어가기 전에는 1시간 이상 100% 산소를 호흡해야 한다. 그러나 SR-71은 보통 연료를 조금만 넣고 이륙한 후, 공중급유기로부터 연료 보급을 충분히 받고 고고도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항공기에 탑승한 이후에야 100% 산소를 호흡한다. 그동안 2명의 기술자가 장비와 기내식을 최종 점검하고 제 위치에 배치한다.

비행복을 입으면 매우 더우므로, 항공기 탑승 시간이 되면 휴대형 액체산소 냉각기를 비행복에 연결해 내부 온도를 낮춘다. 항공생리안전 기술자들과 항공기 정비 팀장의 OK 사인이 떨어지면 그제서야 조종사들은 이동 차량에서 내려 항공기에 탑승할 수 있다.

SR-71 조종사들에게 지급되던 기내식. 현재도 U-2 조종사들에게 지급되고 있다. ⒸUSAF

철저한 점검과 문제 해결만이 살 길

일단 조종사들이 항공기에 탑승한 후에도, 조종사 1명당 2명의 항공생리안전 기술자들이 양옆에 붙어 필요한 시스템의 연결을 해준다. 연결이 끝나고 산소 공급, 환기, 안면 난방, 통신의 정상 작동이 확인되면 기술자들이 서로 위치를 바꾸어 체크리스트를 낭독, 연결 상태를 이중 점검한다. 여기까지 완료되면 기술자들은 항공기에서 이탈해 이동 차량에 탑승해 대기한다. 그러다가 항공기 이륙 허가가 내려지면 다시 항공기에 가서 비상탈출장치(사출좌석과 낙하산)의 안전핀을 제거한 후 이탈한다.

여기까지 끝나야 조종사들은 비로소 캐노피를 닫을 수 있고, 이륙 준비를 완료할 수 있다. 이륙 준비가 완료되면 기술자 4명 중 2명은 다른 업무를 보러 현장을 이탈할 수 있지만, 나머지 기술자 2명과 감독관은 만약의 경우를 위해 항공기가 체공할 때까지 비행 대기선에서 대기해야 한다.

항공기가 귀환한 후에도 할 일은 많다. 조종사들은 조종석 최대 기압, 순항 고도에서의 체공 시간, UCD 사용 여부, 비행복의 정상 작동 여부를 보고해야 한다. 비행복과 비행 장구를 벗은 다음 건조하고, 이를 또 점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문제 사항이 발견될 경우 그 문제를 철저하게 시정해야 다음 비행에 쓸 수 있다. 조종석에 실었던 기타 장비들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은 고공과 고속의 환경에 알맞게 진화하지 않았다. 인간은 그 환경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과학의 갑옷을 입었다. 하지만 그 갑옷도 철저한 정비 점검을 해야 제 성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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