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MRI의 물리학적 원리를 발견하다

[노벨상 오디세이] 노벨상 오디세이 (130)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명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적극적인 후원자였다. 그는 사람의 몸 안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진단용 영상장비에 대해 현대 기술이 이룩한 최고의 작품이라며 칭찬했다. 바로 최첨단 고가 장비로 알려진 ‘자기공명영상(MRI)’를 두고 한 말이다.

MRI는 자기장과 고주파를 이용하므로 다른 진단 기기에 비해 인체에 해가 적다. 또한 조영제 같은 특별한 약물 없이도 고해상도로 혈관 영상을 찍을 수 있으며, 근육이나 인대 같은 연부조직의 해상도도 CT(컴퓨터단층촬영)보다 훨씬 좋다. 특히 뇌신경계 영상에서 그 진가를 발휘해 명상 중인 뇌의 상태를 촬영함으로써 명상의 효용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뒷받침하기도 했다.

MRI는 핵자기공명이라고 불리는 현상을 이용한다. 모든 원자의 핵 내부에서는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원자핵은 전하를 가지고 있으므로 회전축을 따라 자기 모멘트를 발생시킨다.

원자핵의 자기 모멘트 측정으로 195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펠릭스 블로흐. ⓒ Public Domain

이처럼 자성을 갖게 된 물질은 외부에서 특정한 주파수의 전파를 가하면 전파의 에너지를 흡수하는데, 이를 공명현상이라고 한다. 이 현상을 각각 발견한 이가 미국의 물리학자 펠릭스 블로흐와 에드워드 퍼셀이었다.

이후 스위스의 에른스트는 물질에 따라 공명의 차이가 있음을 밝혀 영상 재구성을 가능케 했다. 최종적으로 미국의 폴 로터버와 영국의 피터 맨스필드는 그렇게 얻은 데이터를 이용해 인체 영상을 획득하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마침내 MRI가 탄생하게 되었다.

즉, MRI는 최근 100년간 최첨단 과학기술의 집합체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펠릭스 블로흐는 MRI 시스템의 물리학적 원리를 발견해 에드워드 퍼셀과 함께 1952년 노벨 물리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레이더 연구 통해 핵자기 측정법 착안

펠릭스 블로흐는 1905년 10월 23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엔지니어가 꿈이었던 그는 취리히 연방공대에 입학했으나 1년 후 물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물리학과로 옮겼다. 1927년에는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조수로 물리학 공부를 했으며, 이듬해에는 결정 내부의 파동 함수에 관한 블로흐의 정리를 증명함으로써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취리히에 있을 때 존 폰 노이만과 강의 및 세미나에 함께 참석하기도 했던 그는 이후 다양한 펠로십을 통해 파울리, 보어, 페르미 등의 쟁쟁한 과학자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권력을 잡자 1933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이듬해 캘리포니아에 있는 스탠퍼드대학의 교수로 임용됐다.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은 그가 품었던 실험적인 연구의 수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스탠퍼드대학에서 중성자의 자기 모멘트를 철의 산란 실험으로 측정할 수 있음을 밝히고, 이에 의해 발생하는 중성자선의 관측 가능성을 1936년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그는 3년 후 버클리의 사이클로트론에서 L. W. 앨버레즈와 협력해 중성자의 자기 모멘트를 정확히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그는 미국의 원자폭탄 연구 프로젝트인 맨해턴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에 관여했으며, 하버드대학에서는 레이더 계측기 연구에 종사하기도 했다. 이 레이더에 관한 연구를 통해 그는 전자공학에의 접근에 따른 핵자기 측정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착안하게 되었다.

CERN의 초대 소장으로 1년간 근무

전쟁이 끝나자 그는 에드워드 퍼셀과는 별도로 1946년에 원자핵의 자기 모멘트 측정을 발표했다. 수소 핵은 자전과 동시에 세차운동을 하는데, 이 세차운동은 외부 자장의 영향을 받아 공명한다. 즉, 축의 회전속도와 동일한 자기장이 주어지면 또 다른 운동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바로 공명 현상이다.

원자핵의 자기 모멘트 측정법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그는 1954년 제네바에 있는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초대 소장이 되어 1년간 근무했다.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를 보유하고 있는 CERN은 현재 세계 최대의 입자물리학 연구소이다.

스탠퍼드 대학으로 다시 돌아온 후 그는 원자력 자기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이때 그는 초전도성 이론과 낮은 온도에서의 현상들에 대한 연구에 주력했다. 블로흐 궤도 함수, 블로흐 방정식, 블로흐의 모형, 블로흐 벽 등은 모두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한편, 그는 전자가 결정격자의 주기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규칙적이면서도 반복적인 패턴에 따라 결정체 안에서 움직인다는 가설을 처음 제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2013년에 미국 MIT 과학자들에 의해 전자와 광자가 결맞음 방식으로 뒤엉켜 시간과 공간에서 모두 주기성을 갖는 ‘플로케-블로흐’ 상태의 고체 결정체가 실제로 관찰되었다.

이주한 지 6년 후인 1939년에 미국으로 귀화한 펠릭스 블로흐는 이듬해 독일 출신의 망명 물리학자인 로어 미쉬와 결혼했으며 1983년 9월 10일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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