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호성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알아주는 ‘융합’ 인재다. 영어영문학과 대학원에서 음성학을 전공하다가 문득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일대 해스킨스 연구소(Haskins Laboratories)에서 시니어 과학자로서 발성에 대한 최첨단 연구를 진행하더니, 현재는 국내로 돌아와 문과대에 적을 두고 있다.
남 교수는 특이한 이력답게 하는 일도 독특하다. 인공지능 연구를 진행하면서 연구팀 남즈(NAMZ)를 이끌고 있는가 하면, ‘수학’과 ‘코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한민국 교육계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지난 2016년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고려대학교가 야심 차게 신설한 ‘언어-뇌-컴퓨터(LB&C)’ 융합과정을 주도한 것도 남 교수다.
무엇보다 그의 매력은 본인만의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성 공학자’로서 독보적 영역을 구축하는 한편 경험에 근거한 자신만의 교육철학을 실천해 나가는 열정 가득한 학자, 남호성 교수를 만나 융합과 교육에 대한 그의 인생관을 들어보았다.
남호성 교수의 사람 좋은 웃음 뒤에는 무서울 정도의 열정과 노력이 숨겨져 있다. 그는 ‘음성 공학자’로서 독보적 영역을 구축하는 한편, 경험에 근거한 자신만의 교육철학을 한 걸음씩 실천해 나가고 있다. ⓒ 김청한 / ScienceTimes
영문학도가 컴퓨터에 관심 가진 까닭
남 교수의 거침없는 광폭 행보는 끊임없는 도전의 산물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가 대학원생이었던 지난 1995년부터 시작된다.
“대학원생 때 한국통신과의 대용량 음성인식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당시 공학자들과 같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코딩에 흥미를 갖게 됐죠.”
결국 대학원을 그만두고 바로 학원으로 달려가 1년간 미친 듯이 프로그래밍 공부에 매달린 남 교수는, 국내 대기업 프로그래머 생활을 거쳐 미 예일대 해스킨스 연구소(Haskins Laboratories)에 적을 두게 된다. 그런데 2014년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조교수로 복귀한 그는, 이내 혼란에 빠지게 됐다고.
“세계 최고의 음성 언어 연구기관에서 ‘쿨’하고 ‘핫’한 최신 학문을 배워온 것 까진 좋았는데, 이를 그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 원인은 저조한 대학원 진학률과 학부생 취업률. 학자로서의 연구도 중요하지만, 교수로서 후학을 잘 이끌고 이들의 사회 적응을 돕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어와 과학이 만나 인공지능을 밝히다
현재 고려대 인근에 위치한 그의 연구팀, 남즈(NAMZ)는 남 교수가 겪었던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언어와 과학의 융합을 선도하는 이곳에서는 음성인식 기술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시대를 선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아이폰 시리, 카카오 미니 등의 인공지능 스피커는 물론 전자 문서 관리, 가전 제어, 쇼핑 등에 이르기까지 음성인식의 활용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히 음성을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 변환된 텍스트를 보다 더 심도 있게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대화 자체를 데이터화 시키고, 이를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많을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남 교수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이 기술을 콜센터에 활용한다고 해봅시다. 콜센터 직원과 고객 간의 대화가 텍스트로 기록된다면, 이를 분류하고 분석함으로써 좀 더 효율적인 상담이 가능하게 됩니다. 애프터서비스, 계약 해지 등 각 상황에 따라 어떤 단어가 주로 쓰이는지 등 여러 가지 것들을 알 수 있게 되죠.”
마치 강의를 하듯 행렬과 인공지능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남 교수의 모습. 수학의 개념과 인공지능이 실제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과정을 통해, 수학 공부에 대한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 김청한 / ScienceTimes
융합 인재 길러내는 특별한 비법
이러한 남즈의 운영에는 수장인 남 교수의 철학이 가득 담겨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남즈와 함께 하는 대학원생 8명이 모두 인문계 출신이라는 사실. 그렇다고 이들이 평소 IT에 조예가 깊거나 특별한 재능을 발휘한 것도 아니다. 과연 남 교수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발상을 했을까.
이는 그가 평소 가지고 있던 융합론과 연관이 깊다.
“제가 생각하는 ‘융합’의 반대말은 ‘결합’입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하는 융합 작업 중 상당수가 바로 이 결합에 불과해요. 물리학 전공, 전자공학 전공, 언어학 전공 등 각기 다른 전공자들을 그냥 한자리에 앉혀놓는다고 해서 저절로 융합이 이뤄지리라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심도 있는 대화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 각자의 영역이 아닌, 타인의 영역에서도 전문가 급 소양을 갖추어야 진정한 융합이 이뤄진다는 것이 남 교수의 생각이다. 결국 ‘중심이 되는 전공이 무엇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완전히 여러 학문을 체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남 교수는 독특한 교수법을 바탕으로 인문 전공자에게 IT를 직접 가르쳐 가며, 융합의 소양을 갖춘 이들을 길러내고 있다.
“전담 과외를 진행하듯 1:1로 학생을 앉혀 놓고, 코딩과 수학에 대한 심도 있는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수업을 마친 학생은 다시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학생에게 지식을 나누면서, 그 내용을 확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습득하는 것이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남즈 연구팀이 가지고 있는 음성인식, 음성합성 기술은 국내 최고 수준. 남 교수는 “우리나라 전체를 통틀어서도 자체 개발 음성인식 프로그램을 보유한 곳은 별로 없다”라며 “코딩, 수학 실력을 바탕으로 인문학이라는 콘텐츠까지 갖고 있기에 더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세상은 ‘수학’과 ‘코딩’을 원한다
이야기는 제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 교육계가 나아가야 하는 길로 이어졌다. 그는 “세상은 이미 오래전에 변했는데, 우리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라며 ‘수학’과 ‘코딩’을 강조했다.
“한때는 타이핑이 일종의 ‘기술’이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수요는 있었지만, 이를 잘하는 사람이 적었기에 관련 직업이 있을 정도였죠.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됐나요? 어지간한 사람 중에서 타이핑을 못 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코딩’과 ‘수학’ 역시 이렇게 기본적인 소양으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문제는 경직된 수학 교육. 그는 “두꺼운 교과서의 1장부터 모든 문제를 증명하고 유도까지 하는 것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이라며 “실제 연구에 꼭 필요한 핵심 개념만 압축해서 가르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남 교수가 강조한 것은 ‘동기부여’다. 비전공자가 수학과 코딩을 배우면서 겪었던 어려움들이, 그에게 ‘역지사지’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것이다.
“음성, 텍스트 등의 데이터는 벡터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것도 결국은 이러한 벡터, 즉 단순한 숫자 열의 관계를 학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종의 패턴을 도출하는 것이라 볼 수 있죠. 여기서 각 벡터의 관계를 ‘행렬’, 어떠한 입력값을 넣어서 출력값이 나오는 과정을 ‘함수’라고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수학의 개념과 인공지능이 실제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과정을 통해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남 교수의 설명이다.
남 교수의 연구팀 남즈(NAMZ)는 그가 겪었던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다. 언어와 과학의 융합을 선도하는 이곳에서 진정한 융합 인재가 양성되고 있다. ⓒ 김청한 / ScienceTimes
시간을 갈아 넣어, 자신을 닦는 이유
과거, 연구, 융합에서 교육에 이르기까지, 인터뷰 내내 각종 주제를 넘나들며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던 남 교수는 마지막으로 ‘학자로서의 본분’을 강조했다.
“학자는, 선생은, 매니저는 그 지위가 아닌, 실력에서 나오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합니다.”
지위가 높아지면서 관리자의 영역으로 올라가고, 대외적인 업무가 늘어나면서 점점 실무에서 멀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바쁜 와중에도 그가 “시간을 갈아 넣어” 코딩을 직접 하고, 공부를 계속하는 이유다.
“사실 너무 힘들어요.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를 더 날카롭게 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죠. 특히 학자로서, 학문적인 카리스마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죽은 시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해요.”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과감하게 움직이는 그의 행보 역시 이러한 노력과 고민의 산물은 아닐까. 남 교수와 그의 연구팀 남즈가 던진 작은 돌이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에 선사하는 울림이 제법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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