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천만 년 전 한반도에 무슨 일이?

한반도의 공룡, 허민 교수 강의

몸길이 13m, 무게 7톤. 낚시바늘처럼 안으로 휜 아흔 개의 이빨로 한번 먹이를 물면 절대 놓치지 않는다. 바로 8천만 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백악기시대(대략 1억 3천 5백만년∼6천 6백만년 전까지)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했던 공룡 타르보사우루스(Tarbosaurus)다.

5일(목) 오후,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는 타르보사우루스와 같은 한반도 공룡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국공룡연구센터 허민 교수(전남대)가 영화 ‘점박이:한반도의 공룡’ 행사에 초청돼 관객들에게 공룡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 허민 교수와 함께하는 ‘한반도의 공룡:점박이’ 행사가 열린 서대문자연사박물관



허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경남 고성, 전남 여수, 화순, 해남, 보성 등 30곳이 넘는 공룡화석지가 있다”면서 이들 화석지를 발굴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퇴적층에 갈대숲이 우거져 있는데, 손을 대보니까 커다랗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있었어요. 하루 종일 발굴해봤더니 길이 1m가 넘고, 글쎄 깊이 20cm가 넘는 발자국이 하나 나왔어요. 그 발자국을 가지고 계속 다른 걸 발굴해보니까 130개가 넘는 발자국이 나왔어요. 이렇게 큰 발자국은 세계적으로 희귀하답니다.”

허 교수에 따르면 화석을 통해 볼 때 백악기 당시 우리나라에는 공룡, 익룡, 새가 함께 살았으며 화산폭발이 자주 일어났다.

▲ 강의를 하는 허민 교수 ⓒ김수현

우리나라에는 공룡의 뼈보다 발자국이 주로 발견되는데 발자국은 공룡이 주로 뛰어다녔는지, 걸어다녔는지, 싸울 때는 어떻게 했는지, 초식 공룡과 육식 공룡과 만났을 때의 행동 등을 밝혀내는 근거가 된다. 공룡 영화도 이러한 발자국을 통해 과학적으로 구현해낼 수 있다.

그리고 발굴을 통해 공룡은 새끼를 비교적 안전한 내륙에 두었다는 것을 밝혀냈다고 전했다. 이것은 파충류는 모성애가 없는 편이지만, 공룡은 이와 달리 모성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한 목포에서 발견된 공룡알을 통해 볼 때 공룡은 둥지를 돌면서 알을 규칙적으로 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공룡 알의 크기는 각44cm고, 둥지는 자그마치 2m50cm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밖에도 공룡 화석지 발굴을 통해 당시 식물을 알 수 있었고, 하늘을 나는 익룡이 땅에서 네 발로 걸어다니는 방식도 알 수 있었으며, 공룡이 대체로 아무리 빨라도 시속 20km가 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룡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게 없어요.”

허 교수의 말에 몇몇 아이들이 전 알아요, 하고 소리쳤다. 교수가 알아요? 하고 되묻자 5~10세 아이들은 ‘화산폭발’, ‘운석충돌’, ‘공룡알을 서로 먹어서’ 등의 대답을 앞다투어 했다. 교수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직 완벽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어요. 여러분들이 앞으로 밝혀내야할 숙제입니다.”

영화 쥬라기공원 때문에 공룡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있다. 먼저 공룡은 모두 쥐라기시대에 서식했을 것이라는 오해. 공룡은 트라이아스기 후기에 나타나기 시작해서 쥐라기시대에 번성하고 백악기 시대에 멸망했다. 특히 티라노사우루스, 타르보사우루스 등의 거대 육식 공룡은 백악기시대에 대거 등장했다. 우리나라의 공룡화석지는 모두 백악기시대의 것이다.

또 영화 탓에 공룡시대에 사람이 함께 살았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이도 있다. 허 교수는 지구의 역사 46억년을 일년으로 구성해 본다면, 공룡은 대략 12월 14일(2억년전)에 태어나 12월 26일(6천5백만년전)에 멸망했으며, 인간은 12월 30일(300만년전) 저녁에서야 태어난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공룡과 인간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인간에게 공룡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민 교수는 그 이유를 지금도 세계 심리학자들이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룡은 지금도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 허민 교수의 질문에 서로 먼저 대답하려고 몰려든 아이들

(3228)

뉴스레터 구독신청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