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 벼린 이야기, ‘한 권의 책’ 되다

[인터뷰] 박해울 SF 작가

박해울 작가의 ‘기파’는 신기한 책이다. SF에 별다른 소양이나 취미가 있지 않더라도, 원래 좋아하던 장르의 영화나 웹툰을 보는 것 마냥 술술 읽힌다. ‘SF는 어렵다’ 혹은 ‘재미가 없다’고 평소 생각했던 사람조차 큰 어려움 없이 이야기 속 등장인물의 시선을 따라갈 수 있다.

대체 무슨 연유일까. 작년 진행된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부문 심사평에서 그 비결을 엿볼 수 있다. “고심해 다듬은 흔적이 역력하다”, “어느 하나 빠진 것 없는 균형의 결정체”라는 심사위원들의 극찬은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이 무엇인지 짐작게 한다. 이야기로서의 기본에 충실한, 화려하진 않지만 단단한 글이다.

박해울 작가의 ‘기파’는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오랜 담금질을 통해 완성된 탄탄한 서사와 흡입력 있는 전개는 독자들로 하여금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 허블

박해울 작가의 ‘기파’는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오랜 담금질을 통해 완성된 탄탄한 서사와 흡입력 있는 전개는 독자들로 하여금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 허블(동아시아)

“기파, 내 20대를 함께 해온 이야기”

“기파는 6년에 걸쳐 천천히 완성한 이야기입니다. 왕복 4시간이 넘는 통근 시간 고속버스 안에서 작성한 문장도 있었죠.”

탄탄한 서사와 흡입력 있는 전개는 오랜 담금질의 산물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20대를 함께 해온 이야기”는 오랜 기간 동안 다듬고 또 다듬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무명의 글쟁이가 온전히 예술 활동에 집중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대학원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한 박 작가 역시 생업을 위해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내야 했다. 그러한 세월은 그에게 태산과 같은 무게로 다가왔다.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았습니다. 그런 상황이 몇 년 동안 지속이 되다 보니 겁은 많아졌고, 용기도 사라졌습니다.”

이런 박 작가의 손을 잡아준 것은 주위 사람들. “아직도 그 소설을 붙잡고 있느냐”면서도 꾸준히 글을 읽어준 이의 피드백, “넌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을 계속 쓸 것”이라는 격려 등 다양한 도움이 그의 용기를 북돋아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 자체가 가진 힘이었다. 박 작가는 이에 대해 “나 스스로가 이 이야기를 재미있다고 느꼈다. 확실히 고치면 나아지는 면이 있었고, 그것이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박해울 작가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콘텐츠를 즐긴다. 편견 없는 넓은 독서와 이를 바탕으로 한 깊은 성찰은 작품 전반에 걸쳐 독자들에게 올곧이 전달되고 있다. © 김청한/ScienceTimes

박해울 작가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콘텐츠를 즐긴다. 편견 없는 넓은 독서와 이를 바탕으로 한 깊은 성찰은 작품 전반에 걸쳐 독자들에게 올곧이 전달되고 있다. © 김청한/ScienceTimes

만장일치 대상작의 확고한 매력

그렇게 완성한 작품에는, 그간의 수고를 보상받듯 호평이 쏟아졌다. 총 280편이 몰린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응모작 중 단연 돋보인다는 평가다. 결국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장편 부문 대상으로 선정된 기파는 우주 크루즈선 오르카 호 난파 사고의 숨겨진 진상을 밝혀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작가는 오르카 호의 성자로 불리던, 의사 기파를 찾는 여정을 통해 ‘인간’과 ‘사회’, ‘선’과 ‘악’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명확한 갈등구조, 군더더기 없는 인물관계 등 충실한 기본기에 더해, 이 소설에는 특유의 매력이 있다. 다양한 장르의 장점을 올곧이 담아냈다는 점이다. 전반적으로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는 스릴러, 주인공 기파의 정체를 알아내는 과정은 추리물, 지루할 틈 없이 벌어지는 속도감 있는 전개는 흡사 웹툰이나 웹소설을 방불케 한다.

이러한 장점은 평소 장르를 가리지 않고 콘텐츠를 즐기는 작가의 취향과 관련이 깊다. 판타지에서부터 그림책, 그래픽 노블, 희곡은 물론 뉴턴이나 과학동아 같은 잡지까지. 편견 없는 다양한 독서와 이를 바탕으로 한 깊은 성찰이 작품 전반에 걸쳐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어떻게 하면 이해하기 쉽고, 독자가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긴장감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실제 먼 미래라면 존재했음직한, 독특하면서도 사실적인 세계관 역시 작품의 큰 매력. 무리 없이 우주로 여행을 떠나고, 인간과 구별하기 힘든 로봇들이 활보하는 세계에서도 박 작가의 시선은 여전히 현실의 부조리에 맞닿아 있다. 최첨단 우주선에서 연일 벌어지는 낯 뜨거운 차별의 모습은 2019년 현재의 인간 군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계층이 나누어진 세계라고 설명을 해도 단지 텍스트일 뿐, 잘 와닿지 않을 수 있잖아요. 오르카 호를 탐색하는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소설 속 세계의 불평등과 부조리함을 독자가 바로 느낄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장르비평팀 텍스트릿에서 비평을 하고, 집 근처 공원을 빙빙 돌며 아이디어를 노트에 적는 등 박해울 작가의 일과는 꾸준히 글쓰기와 맞닿아 있다. 수많은 담금질 끝에 단단하게 벼려질, 박해울 작가의 차기작을 기대해도 좋다는 뜻이다.  © 김청한/ScienceTimes

장르비평팀 텍스트릿에서 비평을 하고, 집 근처 공원을 빙빙 돌며 아이디어를 노트에 적는 등 박해울 작가의 일과는 꾸준히 글쓰기와 맞닿아 있다. 수많은 담금질 끝에 단단하게 벼려질, 그의 차기작을 기대해도 좋다는 뜻이다. © 김청한/ScienceTimes

“새로운 SF 소재 도전하고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글쓰기를 전공했습니다. 이제 기파라는 이야기를 출간했으니 시선을 다른 이야기로 돌려보고자 해요.”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박 작가의 나침반은 이제 어디로 향할까. 기파와 함께 20대를 졸업하고, 30대에 들어선 그의 일상은 의외로 소박했다.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는 듯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를 가고, 퇴근하고 운동을 가거나 책을 읽습니다.”

분명한 것은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라는 사실. ‘장르비평팀’ 텍스트릿에서 비평을 하고, 집 근처 공원을 빙빙 돌며 아이디어를 노트에 적는 등 그의 일과는 꾸준히 글쓰기와 맞닿아 있다. 수많은 담금질 끝에 단단하게 벼려질, 박해울 작가의 차기작을 기대해도 좋다는 뜻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고통받고 사라져가는 동식물, 테라포밍 등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지금까지 제가 한 번도 도전하지 않았던 SF 소재에 도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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