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20세기 후반 동서 냉전의 산물 ‘SOSUS’

[밀리터리 과학상식] 소련 잠수함의 소리를 듣는 해저의 귀

구소련 해군의 전략원잠 ‘타이푼’급. 냉전 시절 내내 이들을 탐지하는 것은 미국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Bellona Foundation

SOSUS는 Sonar Surveillance System(수중음향 감시체계)의 약자다. 이것 역시 20세기 후반 동서 냉전의 산물이었다. 냉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권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권의 체제 경쟁이었다. 또한 미국과 소련이 핵이라는 최종 병기를 쥐고 있다는 특성상, 언제라도 인류 종말의 최종 전쟁, 즉 핵전쟁으로 화할 위험성이 있었다.

특히 바닷속을 누비는 양국의 탄도미사일 탑재 전략 잠수함이야말로 그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수중에서 활동해 탐지 및 파괴가 극히 곤란한 이 잠수함들이야말로 문자 그대로 수중의 전략기지였다.

좀 아이러니한 얘기지만 이 잠수함들에서 발사되는 핵탄두 탑재 탄도미사일들이야말로 핵전쟁의 불뚜껑을 열어젖힐 선제공격의 병기이자, 유사시 상대국이 쉽사리 핵 발사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하는 보복 공격의 병기이기도 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유사시 소련의 전략 잠수함을 쉽게 탐지 및 파괴할 수 있어야 했다. 잠수함 탐지에 가장 적합한 플랫폼은 속설과는 달리 수상함과 대잠 항공기이지만, 365일 24시간 내내 띄워놓을 수는 없었다.

이에 바닷속에 잠수함 탐지 플랫폼을 상설로 심어 놓을 계획을 세웠고, 이것이 바로 SOSUS의 기본 개념이다.

수중청음기로 적 잠수함을 잡아내

SOSUS의 기원은 1940년대 SOFAR(Sound Fixing and Ranging channel, 음파 고정 및 거리 측정 통로)의 발견에서 시작된다. SOFAR란 음파의 속도가 최소가 되는 수심대를 가리킨다. 보통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수심 600~1200m 사이를 가리킨다. 이 수심대에서 저주파 음은 소멸되지 않고 수천 km나 이동한다. 이러한 특성은 수중 음파 감시에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다.

미 해군은 이러한 특성에 주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이 현상을 응용해 해상 조난자의 구난에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기로 한 것이다. 해상 조난자가 수중에서 작은 폭탄을 폭발시키면, 그 폭발음이 SOFAR를 타고 멀리까지 이동한다. 지상의 기지국에서 이 폭발음을 수신하면 조난자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 해군은 이를 구현하기 위한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연구를 진행하던 미 해군 연구국은 이 원리를 응용하면 지상에서 소련 잠수함의 위치를 탐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SOSUS다.

SOSUS는 엄청난 규모의 공학적 과제였다. 소련 잠수함이 잘 다닐 곳으로 예측되는 해저에 수중 청음기를 깔고, 이 수중 청음기에 전선을 연결하여 지상의 기지국과 연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1952년 1월 바하마 제도의 엘류세라 섬 앞에 처음 설치된 SOSUS는 미국 잠수함을 가상적함으로 상정하여 실시된 탐지 테스트에서 양호한 결과를 얻어냈다. 이후 미 해군은 이 시스템을 미 동해안 및 서해안 전부, 그리고 하와이 앞바다에도 설치했다.

SOSUS 시스템의 수중 청음기 어레이는 주로 SOFAR 축의 대륙 사면과 해산에 설치됐다. 이 청음기가 획득한 소리는 기지국 역할을 하는 해안 종말 처리국으로 옮겨져 분석됐다. 해안 종말 처리국은 보안상의 이유로 ‘해군 시설’, 또는 ‘해군 해양 처리 시설’ 등의 애매한 암호명으로 불렸다.

극초기의 SOSUS 시스템은 상용 전화선을 사용했고, 때문에 수중 청음기와 기지국 간의 거리는 280km 이내여야 했다. 하나의 선에 최다 40개의 수중 청음기만 달 수 있었다.

그러나 장기간 사용된 SOSUS의 특징상 기술 발전에 따라 사용되는 케이블도 꾸준히 개량되었다. 1962년에는 동축 다중 송신 전화선 SB가 설치되어, 하나의 케이블로 모든 수중 청음기를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1960년대 후반에는 기지국에 디지털 스펙트럼 분석기가 설치되었다. 1972년에는 벨 연구소에서 개발한 SD-C 케이블과 제4세대 소나가 시스템에 설치되었다. 그리고 1994년에는 또 광섬유 케이블이 이를 대체했다.

SOSUS는 운용 기간 동안 여러 가지 기록을 세웠다.

이 시스템이 처음으로 소련 원자력 잠수함을 탐지한 것은 1962년 7월 6일의 일이었다. 그린란드-아이슬란드-영국(Greenland-Iceland-United Kingdom, 약칭 GIUK) 결구를 통해 대서양으로 빠져나가려던 소련 잠수함을 노르웨이 서해상에서 탐지해낸 것이다.

또한 1963년에는 미 잠수함 스레셔 함, 1968년에는 미 잠수함 스코피온 함과 소련 잠수함 K-129의 침몰 지점 파악에도 기여했다. 또한 소련의 신예 잠수함 빅터, 찰리, 델타급을 항해 중 처음으로 발견해낸 것도 SOSUS였다.

SOSUS의 비밀, 내부 스파이에 의해 들통나

이렇게 바닷속에 펼쳐진 미국의 귀 노릇을 하던 SOSUS의 실체가 완전히 일반에 기밀 해제된 것은 소련이 붕괴하던 1991년의 일이었다.

SOSUS는 그 중요성 상 누구에게도 그 실체를 밝혀서는 안 되는 비밀 전략 자산으로 분류되었던 것이다. 일례로 1964년 미국 상원 군사 위원회의 군사력 건설 청문회에서도 미 해군은 SOSUS의 기지국 건설 및 유지 예산의 용도에 대해 미 본토 주둔 방공 및 미사일 방어 부대의 지원 용도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소련은 이 SOSUS에 대해 이미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다. 바로 미 해군 장교 존 안소니 워커(1937~2014)와 제리 휘트워스(1939~)를 주축으로 한 워커 휘트워스 간첩망 덕택이었다. 이들은 소련에서 직접 침투시킨 간첩이 아니었다. 금전적이고 정치적인 이유에서 자발적으로 소련에 비밀을 갖다 바친 미국인들이었다.

워커는 비현실적인 음모론적 사고방식에 빠져 있었다. 소련은 미국의 적수가 될 만한 실력도 의지도 없는데도 미국이 소련을 상대로 억지로 냉전을 진행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게다가 더 많은 돈이 필요했던 그는 1967년 10월 주미 소련 대사관을 찾아가 대사관 직원들을 상대로 거래를 제안했다. 미 해군의 통신장교로서 습득한 1급 비밀들을 제공할 테니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 워커와 소련 간의 거래는 성립되었다.

이후 그는 1976년 해군에서 제대할 때까지 자신의 손을 거친 해군 통신문 100만여 건을 소련에 전달했다. 또한 자신의 후배 통신 장교인 제리 휘트워스 준위, 자신의 형인 방위산업체 직원 아더, 자신의 아들인 현역 해군 수병 마이클까지 자신의 간첩망에 포섭, 이들로부터 알아낸 정보 역시 돈을 받고 소련에 전달했다.

그 정보들 중에는 SOSUS에 관한 것도 있었다. 이 정보 덕택에 소련은 자국 잠수함의 기술적 문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그 문제 해결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1980년대 들어 취역한 소련 잠수함의 정숙성은 이 덕택에 미국 잠수함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높아졌다.

승승장구하던 워커 휘트워스 간첩망은 워커의 전처 바바라의 신고로 1985년 일망타진되었다. 주범인 워커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옥사했고, 휘트워스는 무려 365년형을 선고받고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련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SOSUS의 효용은 크게 줄어들었다. 결국 SOSUS는 상당 부분이 불능화되었고, 남은 부분은 여러 민간 교육 및 연구기관들에 의해 해양 연구용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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