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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이성규 객원기자
2016-10-05

170년 만에 귀향한 ‘인간 박제’ 보츠나와, ‘엘 네그로’ 무덤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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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는 표본 중 가장 많은 것이 박제된 동물 표본이다. 1700년대 유럽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박제는 동물의 가죽을 곱게 벗겨서 썩지 않도록 처리한 다음 그 속을 짚이나 솜으로 채우고 가죽을 꿰매어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모양으로 만든 표본이다.

주로 폐사한 동물을 대상으로 표본을 제작하는데, 희귀한 동물이 폐사할 경우 박물관들이 서로 경쟁해 차지하기도 한다. 그런데 스페인의 한 자연사박물관에는 실제 인간을 박제로 만들어 전시한 표본이 있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바르셀로나로부터 북쪽 112㎞ 지점에 있는 바뇰레스라는 소도시의 ‘다르데르 자연사박물관’이 바로 그 주인공. 이 박물관의 포유류관 유리 전시장 안에는 오른손에 창을 쥐고 왼손에는 방패를 든 채 야자나무 잎 장식과 주황색 치마로 하반신을 가린 ‘엘 네그로’라는 흑인 박제가 전시되어 있었다.

다르데르 자연사박물관에서 판매한 ‘엘 네그로’의 사진 엽서. ⓒ 출처 : BBC
다르데르 자연사박물관에서 판매한 ‘엘 네그로’의 사진 엽서. ⓒ 출처 : BBC

19세기 프랑스의 한 박제사가 칼라하리 사막의 무덤에서 도굴한 부시맨족의 시체로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이 인간 박제가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던 건 지난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둔 시점이었다.

알폰스 아르셀린이라는 아이티 출신의 의사가 스페인 최대 일간지 ‘엘 파이스’에 ‘엘 네그로’를 박물관 전시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투고하면서 파문이 일기 시작한 것. 다르데르 박물관이 있는 바뇰레스 시의 호수에서는 올림픽 조정 경기가 열릴 예정이어서 그의 주장은 국제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논란 일어

아프리카 국가들 사이에서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보이콧 해야 한다는 주장이 흘러 나왔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아프리카인들의 감정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박물관 측에 올림픽 기간 동안 박제를 진열대에서 치우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정작 바뇰레스 시 당국은 그 같은 요청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더욱 확대됐다. 당시 이 논란은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소개될 만큼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그럼 과연 ‘엘 네그로’는 그 후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이에 대한 소식이 최근 영국의 BBC를 통해 전해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에 의하면 엘 네그로의 기상천외한 사후 여정은 1831년 프랑스 상인인 쥘 베로가 케이프타운에서 북쪽으로 수일간 여행하다가 한 아프리카 전사의 장례식을 목격하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쥘 베로는 그날 밤 아무로 몰래 그 전사의 무덤으로 돌아와 피부 및 두개골, 그리고 약간의 뼈를 도굴했다. 그리고 수집한 다른 동물들과 함께 신문지로 포장한 아프리카 전사의 사체를 파리로 배송한 것.

즉, 그는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이 아니라 보츠나와의 젊은 전사였다. 후에 실시된 부검에 의하면 엘 네그로의 나이는 27세 전후, 키는 135~140㎝이며 추정 사인은 폐렴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가 정확히 어느 지역의 출신인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1888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에 전시되어 큰 인기를 모았던 엘 네그로는 1916년 다르데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그는 다른 야생동물과 같은 방식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어떠한 설명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흑인이라는 뜻의 ‘엘 네그로’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두개골 및 일부 뼈만 보츠나와의 한 공원에 매장돼

엘 네그로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지역 주민들의 강한 요청으로 그대로 전시되었지만, 결국 1997년 3월에 유리 전시장에서 벗어나 일반 관람객들이 볼 수 없는 수장고로 옮겨졌다. 그 후 아프리카통일기구(OAU)와의 기나긴 협상 끝에 스페인은 엘 네그로의 반환에 합의했다. 아프리카 땅에 재매장한다는 것이 협상 조건이었다.

2000년 가을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로 옮겨진 엘 네그로는 유리눈 등 박제로 만들어질 당시 첨가됐던 인공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피부는 스페인에 남겨지는 것으로 결정됐다. 전시 기간 동안 원래 모습보다 더 검게 보이도록 피부에 계속 구두약을 칠한 탓에 피부가 딱딱하게 굳어져 바스러졌기 때문이다.

결국 고향인 보츠나와로 향하는 관에는 엘 네그로의 두개골과 사지골의 일부만 담겼다. 보츠와나 수도인 가보로네에 엘 네그로의 뼈가 잠시 머무는 동안 약 1만여 명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2000년 10월 5일 그는 촐로펠로 공원의 한 구역에서 영원히 잠들 수 있었다.

기독교식 장례를 다시 치른 엘 네그로의 무덤은 이후 수년 동안 잊혀졌으며, 주변 공간은 축구장으로 사용됐다. 그러다 최근에서야 보츠와나 정부가 무덤을 정비하고 안내센터 및 표식을 설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사연이 알려진 것은 30년 전 스페인에서 히치하이킹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다르데르 박물관에서 엘 네그로를 목격한 네덜란드의 작가 프랑크 베스터만을 통해서였다. 그는 과거 유럽 식민주의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상징하는 인간 박제를 본 후 엘 네그로에 대한 책을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이 이야기를 추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규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저작권자 2016-10-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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