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의 과학적 이유

화풀이는 고통을 떠넘기기 위한 인간의 본능

최근 여의도에서 전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을 흉기로 수차례 찌르고 달아나던 중 길에서 마주친 행인에게도 아무런 이유없이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며칠 전 의정부역에서도 공업용 커터 칼을 마구 휘둘러 8명이 크게 다친 사건이 일어났던 터라 시민들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일명 ‘묻지마 범죄’로 일컬어지는 범죄 유형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 사이코패스를 열외로 하더라도 본인과 크게 상관없는 사람들을 향한 범죄가 증가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화풀이는 분노의 표현

인생을 살다보면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정도가 가벼우면 스스로 이겨내지만 그렇지 않으면 분노로 변하게 된다. 심리학자 베카존슨은 분노가 생기는 이유로 “사랑이나 자존감 등 필요가 채워지지 않는 경우, 희망이 꺾이고 목표가 막히는 등 기대가 무산되면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공포와 위협 등을 느낄 때도 분노로 불안감을 덮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분노는 보통 복수, 보복, 화풀이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복수와 보복은 고통을 준 대상을 향한 행위이지만, 화풀이는 그렇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화풀이는 가족과 동료에게 짜증으로, 혹은 책상을 내리 치거나 문을 쾅 닫는 등의 행동으로 표현한다. 심할 경우 가까운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자살이나 살인을 하게 된다. ‘묻지마 범죄’ 역시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가하는 일종의 위험한 화풀이인 셈이다.

▲ 화풀이는 인간의 고통을 떠넘기기 위한 본능의 일종이다. ⓒ연합뉴스


화풀이는 개인 대 개인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다수가 한 개인에게 집단적으로 하기도 한다. 유럽에서는 흑사병 등 전염병이 창궐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희생자를 찾아 나섰던 경험들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에서도 “ 전염병의 창궐로 군중들이 분노로 빈민가에 불을 지르고 소리 치며 도망 나오는 사람들을 칼과 곤봉으로 위협해 다시 불 속에 집어넣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비단 전염병에 대해서만 ‘희생양’을 찾았던 것은 아니다. 2004년 에밀리 오스터는 <유럽 르네상스 시절의 마법, 날씨, 경제 성장>이라는 하버드 박사 논문에서 ‘70년간 소강상태를 보이던 마녀사냥이 15세기에 다시 시작된 이유를, 가파른 기온 하락으로 인한 곡물 생산 감소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당시는 지구 소빙기 시기로 평균기온이 2도 가량 떨어져 농작물 수확량과 어획량이 감소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굶주림에 대해 ‘탓’할 상대를 찾게 되면서 마녀사냥이 다시 나타난 셈이다. 나치가 성장하고 유태인들에 대한 홀로코스트가 자행된 것도, 1930년대 경제가 악화되면서 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발생한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들도 실업이나 저임금 등으로 어려운 경제상황에 처해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의학의 발달로 전염병에 대한 대처가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어 이로 인한 사회적 화풀이 현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극심한 경쟁사회, 조금만 느리면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점점 어려워지는 경제이다.

지난 2009년 영국의학 전문지 <랜싯>에서는 1977년부터 2007년까지 30년 동안 26개 유럽연합 국가들을 대상으로 국가 경제상황이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논문 중 눈에 띄는 대목은 “실업률이 1퍼센트 증가할 때마다 살인률이 0.79퍼센트 증가했다”는 부분이다. 이는 위험한 화풀이 행동이 경제 상황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화풀이를 관리하고 억제시킬 수는 없는 것일까.

고통을 떠넘기기 위한 방법

진화생물학자 데이비드 바래시와 인간행동생물학자 주디스 이브 립턴 박사는 그들이 공저한 <화풀이 본능>에서 “화풀이는 척추동물과 어류에서 나오는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인간과 동물의 화풀이는 고통을 떠넘기기 위한 본능”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들의 극심한 경쟁이 화풀이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스탠퍼드대학교 생물학과 및 의과대학 신경학과와 신경외과의 교수인 로버트 새폴스키 박사의 연구 결과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인용한 로버트 새폴스키 박사의 <영장류 회고록>에서는 “싸움에서 진 개코 원숭이 수컷이 분풀이 대상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젊은 수컷을 쫓아가고, 짜증 난 젊은 수컷은 암컷에게 돌진한다. 그리고 그 암컷은 어린 개코원숭이를 찰싹 때리고 어린 개코원숭이는 갓 태어난 새끼를 두들겨 패는데, 놀랍게도 불과 이 모든 일이 불과 15초 안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적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서열에서 밀려난 개코원숭이는 ‘종속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점이다. 데이비드 바래시와 주디스 이브 립턴 박사는 “‘종속 스트레스’는 서열이 낮은 개체들에게 성호르몬 감소와 같은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면서 “이는 거의 모든 동물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인간들에게도 이런 패턴을 적용해 볼 수 있다. 경쟁에게 이긴 사람에게는 행복 물질인 세로토닌이 분비가 증가하지만, 패배자들에게는 이와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특히 살인자나 자실 미수자들의 혈액을 검사해 보면 세로토닌 수치가 낮다. 우울증 환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뇌 화학물질 구성을 검사해보면 좌절감이나 패배감을 만성적으로 느끼는 상태이다. 우울증 환자가 자살을 하거나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화풀이 본능>에 나온 쥐와 관련된 실험은 인상적이다. 쥐를 우리에 넣고 반복적으로 충격을 주는 실험을 할 경우, 한 마리만 우리에 들어간 쥐는 위궤양이 발생하고 콩팥 위에 있는 내분비샘인 부신의 크기가 비대해지고, 같은 조건의 우리에 나무 막대기를 넣어 쥐가 씹을 수 있게 하면 위궤양도 덜하고 부신의 크기도 작았다. 그런데 쥐 두 마리를 넣은 경우에 전기 충격으로 포악해진 쥐들은 계속 싸웠지만, 막상 그들을 해부해 보니 위궤양의 흔적은 없었고 부신의 크기도 정상이었다. 즉 고통이 전가되면 몸은 정상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스트레스로 신체에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화풀이는 건강하기 위한 본능적 메커니즘인 셈이다.

현재 경제 불황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화풀이에 대한 사회적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이유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일.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보듬는 일이 절실한 때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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