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으로 지진을 일으켜라?

[밀리터리 과학상식] 오늘날 벙커 버스터 폭탄의 원조인 영국의 지진 폭탄

초기의 지진 폭탄인 영국의 톨보이 폭탄. ⓒIWM

지진 폭탄이란 영국의 항공공학자 반스 월리스가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발명한 새로운 장르의 폭탄이다. 지진 폭탄은 여러 종류가 개발되어 주요 전략 목표물 타격에 쓰였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다. 지진 폭탄의 발명 경위를 알려면 일단 그게 왜 필요한지부터 알아봐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항공폭탄은 보통 지면 또는 지면 바로 위에서 폭발, 폭발력과 파편을 통해 표적을 타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폭탄은 거의 모두가 무유도 폭탄이었다.

즉, 일단 투하되면 궤도를 수정하여 표적에 더 정확하게 착탄 시킬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매우 견고해서 폭발력에 견디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 표적(방공호, 전함 등)이나, 크기가 매우 작아 애당초 제대로 명중시키기도 어려운 표적(교량 등)에는 제대로 효과를 보기 어렵다.

때문에 반스 월리스는 표적이 서 있는 땅 자체를 뒤흔들어야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서는 매우 높은 고공에서 매우 무거운 폭탄을 투하할 필요가 있다. 폭탄의 투하고도와 중량이 무겁고, 강도(특히 표적에 제일 먼저 접촉하는 탄두부의)까지 높다면 그만큼 높은 속도로 지면에 충돌하고, 지하 깊숙한 곳까지 관통해 들어가 지하에서 폭발할 것이다.

이때 충분한 폭발력이 있다면 폭심지의 지각 일부를 날려 버린다. 즉 지하에 공동을 만들 수 있다. 이로써 탄착 지점 주변의 지면이 붕괴되고 충격파가 전파, 지면을 뒤흔드는 지진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공 지진의 진앙, 즉 탄착 지점이 표적 근처라면, 표적의 기반을 타격 붕괴시켜 표적에 구조적 손상을 입히고, 표적 자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다는 계산이었다.

물론 아예 표적에 직격하면 그 효과는 더할 나위 없겠고 말이다. 반스 월리스는 이러한 인공 지진의 규모가 3.6 이상일 경우, 탄착 지점 근처의 댐, 철도, 교량 등도 완파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간단히 말해, 엄청난 속도와 강도로 중장갑 표적을 관통하는 오늘날의 대전차 철갑탄과 원리는 비슷하지만, 그 파괴력은 훨씬 더 크다고 보면 틀림없다.

월리스는 이러한 구상을 완벽히 구현하려면 고도 12km에서 중량 10톤의 폭탄을 투하, 지하 40m까지 관통시켜 폭발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 영국 공군은 그만한 성능을 낼 수 있는 폭격기가 없었기 때문에 월리스는 이러한 성능을 지닌 일명 <빅토리 폭격기>도 직접 설계했다. 그러나 긴박했던 전시 상황이었다. 영국 정부는 이렇게 제한적 용도를 지닌 폭격기의 개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래도 월리스는 지진 폭탄의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켜, 6톤급 <톨보이> 폭탄과 10톤급 <그랜드 슬램> 폭탄을 결국 완성해냈고, 이를 영국 공군의 신예기인 랭카스터 폭격기에 싣고 실전에 투입하기에 이른다. 랭카스터 폭격기의 성능 한계상 고도 7.6km에서 투하하는 것이 한계였지만 이들 지진 폭탄들은 상당한 전과를 이끌어냈다.

프랑스의 라 쿠폴, 블로코 드 에페를레키에 설치된 V-2 로켓 발사기지, 미모예크 요새에 설치된 V-3 장거리포 포대, 독일 최대의 전함이었던 <티르피츠>(만재배수량 52,600톤급), 생 나제르의 U보트 방공호 등, 기존 폭탄으로 공략 불가라고 여겨졌던 다수의 방어력 높은 전략 표적들이 지진 폭탄 앞에 깨져나갔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제일 대단한 것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직후 프랑스의 소무르 인근 야산을 뚫고 설치된 철도 터널 폭격이었다. 철도는 의외로 복구하기가 쉬워서 폭격을 맞아도 보통 1일이면 원상 복구된다.

지진 폭탄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진. 두께 3.4m에 달하는 독일 함부르크의 잠수함 방공호 지붕이 톨보이 폭탄 한 발로 뚫려 버렸다. ⓒIWM

때문에 영국 공군은 철도 터널을 지진 폭탄으로 폭파해 막는 쪽을 택했다. 랭카스터 폭격기 25대가 <톨보이> 지진 폭탄을 1발씩 투하했고, 이 25발 중 1발이 산을 관통, 터널까지 뚫고 들어가 폭발, 터널을 막아 버렸다. 이 터널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복구되지 않았다. 또한 <그랜드 슬램> 지진 폭탄은 독일 빌레펠트 교량 전 구간을 일격에 완파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연합군이 이전에 무려 54회의 임무를 통해 3,500톤의 폭탄을 투하했지만, 일시적 무력화만 성공했던 교량이었다.

이러한 높은 효과에 주목한 지진 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도 운용과 개발이 이루어졌다. 오늘날 <벙커 버스터> 폭탄으로 알려진 고관통 폭탄들이 바로 이 지진 폭탄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은 2.3톤급 GBU-28, 14톤급 GBU-57 MOP(Massive Ordnance Penetrator, 대형 관통폭탄), 20톤급 T-12 등 이 계열 무기들을 다양하게 개발했다. 이러한 현대적 지진 폭탄은 그 자체의 위력도 강해졌지만 더욱 뛰어난 비행 성능과 정밀한 유도 능력을 갖춘 플랫폼(항공기)에 힘입어 그 힘을 실전에서 여러 차례 증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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