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치하, 하이젠베르크의 고뇌

과학서평 / 부분과 전체

독일 현대 과학의 상징적인 인물은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는 1933년 여름, 자신을 찾아온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젊은 과학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독일에 남는다고 불행을 막을 수도 없고, 심지어 살아남기 위해 계속 모종의 타협을 해나가야 할 거야. 하지만 소수의 젊은이들을 모아 과학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끔찍한 시기를 보낼 수 있다면 불행이 끝난 뒤 재건할 때 큰 보탬이 될 거라고 확신하네.

유대인이라 어쩔 수 없이 외국망명을 하는 형편이 아니라면 여기 남아서 상당히 먼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불가피하게 타협도 해야 할 것이고, 이로 인해 훗날 비난과 처벌을 받을지도 모르네.

독일이 처한 끔찍한 상황에서는 아무도 더 이상 올바르게 행동할 수 없네. 어떤 결정을 해도 불의에 가담하게 되는 셈이지. 결국 스스로 선택해야 해. 파국이 종결될 때까지는 많은 불행이 있을 것이고, 그런 불행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같은 것은 버려야 한다는 것 뿐이네.”

양자역학의 대가 하이젠베르크

막스 플랑크를 찾아온 젊은이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01~1976)이다. 현대 물리학에서 피해갈 수 없는 분야를 꼽을 때 반드시 포함되는 것은 ‘양자역학’이다. 양자역학이 탄생하는데 여러 과학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했지만, 하이젠베르크의 이름을 빼 놓을 수 없다.

‘불확정성의 원리’로도 매우 유명한 하이젠베르크는 아인슈타인을 비롯해서 닐스 보어 등 20세계 최고 과학자와의 교류로 과학적 발견의 영역을 넓혀갔다.

부분과 전체

그가 쓴 여러 논문이나 저서 중 자서전적인 성격이 강한 ‘부분과 전체’(Der Teil und das Ganze)는 과학을 전공하려는 젊은이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꼽아서 손색이 없다.

‘부분과 전체’의 정식 한국어판 번역서가 드디어 나왔다. 독일에서 판권을 구입해 ‘서커스’ 출판사가 낸 이 책은 김재영 박사가 긴 해제를 붙이고, 페이지마다 각주(脚註)를 달아 이해의 폭을 넓혔다.

막스 플랑크와 나눈 대화는 ‘부분과 전체’에 나온 내용 중 일부이다.

이 책은 하이젠베르크가 물리학의 여러 분야를 발견하는 과정에 체험한 다양한 일상사가 정리되어 있다. 다른 과학자와의 대화 내용 중 특별히 중요한 것은 대담형식으로 구성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매우 방대하다. 정치, 종교, 철학, 문학, 예술, 윤리 등 거의 모든 분야가 망라되어 있다. 과학자들은 스키도 타고, 테니스도 치고, 함께 여행가서 역할을 분담해 설거지도 하고 요리도 만들고 저녁에 포커도 친다. 믈론 머릿속 한 구석에는 세계 물리학계의 주요 과제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점검하고 토론한다.

히틀러의 광기 아래 과학자들의 무력감

워낙 다양한 인문한 분야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어, 읽는 사람에 따라 특별히 관심가는 분야가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2차 대전을 앞두고 극도로 불안하고 어두워지는 독일 국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고민하는 대목이 가장 긴장감이 높다.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해서 많은 과학자들은 히틀러의 광기(狂氣) 아래에서 과학자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대처방안이 별로 없다는데 커다란 무력감을 느꼈다.

이때 하이젠베르크가 독일 과학계의 존졍하는 선배 과학자인 막스 플랑크를 찾아가서 나눈 대화는 가슴을 울리는 명문으로 꼽힐 것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해외로 망명을 했고, 하이젠베르크도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막스 플랑크는 독일에 남을 것을 조언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북한의 과학자와 일제 시대 애국지사들이 생각났다.

양심을 지키는 것이 친구 목숨보다 소중할까?

고뇌속에서 하이젠베르크는 이런 끔찍한 사례를 생각해봤다.

“독재 정권이 반정부 인사 열 명을 구속해서 그 중 대표적인 한 명이나 열 명 모두를 처형하려 한다고 해보자. 외국여론에 신경이 쓰인 독재정권은 합법적임을 포장하기 위해 국제적인 명성이 있는 법률가에게 서류에 서명해서 주요 반정부 인사 한 명에 대한 처형이 적법하다고 인정하면 나머지 아홉 명은 석방하고 망명할 수 있도록 해주겠지만, 서명을 거부하면 열 명을 모두 처벌하겠다고 협박한다.

법률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 양심을 지키는 것이 친구 목숨보다 소중할까? 자살한다고 해결책이 될까?”

하이젠베르크는 1939년 동료 과학자들을 만나고 싶어서 2주간 미국 앤 아버와 시카고에서 순회강연을 하고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미국 방문 중 수없이 해외망명을 권하는 동료과학자들에게  ‘유럽에 남아 과학하려는 젊은이들을 모아 전쟁이 끝난 뒤 독일 과학계를 재건하게 돕기로 결정했다”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1927년 26세의 나이로 독일 최연소 정교수로 취임하고 193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과학자의 고뇌와 애국심이 잘 드러난다.

‘부분과 전체’는 워낙 중요한 책 중 하나여서 이미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이 나와 있다. 우리나라가 저작권법 이전에 번역한 것은 그대로 인정하는 관계에 따라 발행됐다고 출판사 관계자는 말했다.

‘부분과 전체’는 2014년에 나온 독일어판을 완역한 것이다.

‘원자이론과의 첫 만남’ (1919~1920)부터 ‘소립자와 플라톤 철학’ (1961~1965) 등 20개 주제를 연대순으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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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안성준 2016년 9월 8일12:39 오후

    “부분과 전체”는 완전히 하이젠베르크의 입장에서 쓴 책이고, “E = mc ^2” 등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나찌의 원폭개발을 적극적으로 진두지휘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독일의 많은 과학자들처럼 그 역시 열렬한 민족주의자였고 애국심에 불 탄 사람이었지요. 독일의 패망이 짙어질 무렵 연합군에 의해 연금을 당한 그를 도청한 기록에서 하이젠베르크가 원폭개발을 거의 성공할 뻔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지요.

    연합군이 노르웨이에서 생산되는 중수가 독일에 공급되는 걸 성공적으로 막지 못했다면, 하이젠베르크의 원자폭탄이 전 세계에 터졌을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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