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흑인 임산부들의 스트레스 원인은?

비무장 흑인 살해시 조산 및 저체중아 많아져

2019.12.09 10:00 이성규 객원기자

9.11 테러 후 과학자들은 뉴욕 임산부들이 출산한 아기들의 건강 상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사건 당시 무역센터빌딩 주변에 있었던 임산부들이 그렇지 않은 여성들보다 조산 및 사산율이 훨씬 높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과학자들은 그 같은 결과에 대해 테러 당시 발생한 거대한 양의 먼지로 인한 대기오염의 영향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남아 출산수도 상대적으로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보통 여아 대 남아의 성비는 1:1.05이지만, 9.11 테러 후 뉴욕에서 태어난 신생아들의 경우 남아의 성비가 급격히 낮아진 것이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남아 출산율 저하는 산모의 스트레스 때문이다. 여성들이 심각한 심리사회적 스트레스 및 신체적인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되면 남자아이를 임신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이 같은 성비 불균형은 1,2차 세계대전 등 사회적 대변동 후마다 관찰되었다. 무역센터빌딩 주변의 임산부들이 조산하고 저체중아를 출산한 것 역시 대기오염 외에도 스트레스와 관련이 깊다는 의미다.

경찰에 의해 살해된 ‘비무장’ 흑인들이 거주하던 인근 지역의 흑인 임산부 집단의 경우 조산 및 저체중아를 낳을 확률이 특히 높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 Public Domain(pxhere.com)

경찰에 의해 살해된 ‘비무장’ 흑인들이 거주하던 인근 지역의 흑인 임산부 집단의 경우 조산 및 저체중아를 낳을 확률이 특히 높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 Public Domain(pxhere.com)

최근 미국 하버드대학 연구진은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캘리포니아에서 출생한 390만 건의 신생아 출생 데이터를 조사했다. 여기에는 인종, 민족, 임신 연령, 거주지, 신생아 체중 등 많은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정보에다 그 기간 동안 캘리포니아에서 경찰에 의해 발생한 총기 살해 관련 데이터를 결합했다.

그 결과 유독 한 집단에 대해서만 임산부들의 조산 및 저체중아 출산이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바로 경찰에 의해 살해된 ‘비무장’ 흑인들이 거주하던 인근 지역의 흑인 임산부 집단에서다.

히스패닉 사례에서는 임산부 영향 없어

미국에서는 매년 약 1000명이 경찰에 의해 살해되며, 약 10만 명이 부상으로 병원 응급실에 입원한다. 소수 민족이 그 피해 대상인 경우가 많은데, 특히 경찰 살해 비율의 경우 백인에 비해 흑인이 3배가량 더 높다.

그런데 백인, 히스패닉, 또는 무장한 흑인이 경찰에 의해 살해되었을 때는 주변에 거주하는 동일 인종 및 민족의 조산 및 저체중아 현상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최신호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무장한 흑인이나 히스패닉이 살해된 경우에는 임산부들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경찰에 의해 살해된 사람이 무장하지 않은 흑인일 때만 집단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흑인 살해에 대해 유독 부당하고 차별적으로 여기는 것은 미국 경찰과 흑인 간의 갈등 역사가 더 길고 이에 대한 언론 보도가 더 많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인종과 민족에 근거한 경찰의 불공평한 처사는 집단적 분노와 절망, 그리고 급성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또한 비무장 흑인이 살해된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은 경찰과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만들어내는 부신피질자극호르몬(CRH)의 분비가 활발해져 출산이 촉진(조산)되거나 태아의 체중 감소를 유발하게 된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인종 차별에 대해 자주 걱정하는 흑인 여성은 그렇지 않은 흑인 여성에 비해 조산할 가능성이 두 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인종차별 걱정하면 조산 가능성 2배 높아

조산 및 저체중으로 태어난 신생아는 인지 발달적인 면에서 장기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즉, 시험 점수가 낮거나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DHD)을 보일 확률이 높아진다.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은 미국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보고된다. 예를 들면 미국 의사들은 흑인 환자를 볼 때 같은 증상을 겪는 백인에 비해 진통제를 덜 처방하는 경향이 있다. 사형 집행을 많이 하는 텍사스 주에서는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흑인인 경우 백인보다 사형을 당할 확률이 훨씬 높다.

경찰 살해와 흑인 영아 건강 간의 잠재적 연관성을 조사한 이번 연구결과는 살해 사건이 일어난 지점에서 1~6㎞ 이내에 거주하는 지역민만을 대상으로 했다. 그런데 임산부들이 받는 사회심리적 스트레스는 그 지리적 영향 범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

9.11 테러 이후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트대학 연구진은 테러 사건 당시 12주 이상 임신 중이었던 네덜란드 여성 그룹의 신생아들과 테러 발생 1년 후 임신한 네덜란드 여성 그룹 신생아들의 체중을 비교 조사했다.

그 결과 테러 당시 산모의 뱃속에 있던 신생아들은 1년 후의 신생아들보다 체중이 약 50g 정도 덜 나가는 것으로 밝혀졌다. 뉴욕으로부터 수천㎞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도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지역민들과 비슷한 증상을 경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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