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흐물흐물’ 로봇이 주목받는 이유

[로봇과 미래 기술] 로봇과 미래 기술(1) 소프트 로봇

최근 몇 년 새 로봇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고, 로봇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회 전체가 로봇 프로젝트의 거대한 실험실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사이언스타임즈>는 현재 로봇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기술적 시도와 최신 트렌드를 매주 소개하는 기획물을 마련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

2015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가 개봉됐을 때 영화 속 베이맥스는 로봇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깎아지른 외모와 날렵한 체형, 단단한 골격 대신 풍선과 마시멜로를 뭉쳐놓은 것 같은 말랑말랑하고 둥글둥글한 몸체, 걷지만 전혀 빨리 가지도 못하는 둔한 로봇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관객들, 특히 아이들은 베이맥스에 열광했다. 베이맥스의 치유와 공감 능력과 함께 한없이 부드럽고 둥글둥글한 외형이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디즈니는 지난 4월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소프트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다. 껴안을 수 있고 상호 소통할 수 있는 디즈니의 소프트바디 시리즈는 베이맥스를 현실로 끌어낸 움직임이다. 부드러운 소재의 소프트 스킨으로 제작되며 몸 안에 액체, 공기 등이 채워져있어 어린이들과 부딪쳐도 다치지 않도록 설계됐다.

최근 로봇 개발의 새로운 화두는 소프트 로봇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로봇하면 터미네이터, 아이언맨, 로보트 태권브이처럼 단단한 강철 몸체, 육중한 팔과 다리, 멋진 금속 마스크를 연상한다. 과학자들은 꽤 오랫동안 금속성 재질을 갖춘 로봇 개발에 매달려왔다. 사람과 4족 보행 동물을 모사해 관절과 다리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예측하고 복잡한 프로그래밍 과정을 거쳐 로봇을 만들어냈다. 이들 로봇은 공장이나 수술 등 작업의 형태와 프로세스가 정형화된 분야에서 매우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나 견고하고 딱딱한 재질로 인해 좁아지는 곳을 지나가거나 문턱이나 벽 등을 통과해야 하는 경우, 미끄러운 무엇인가를 집어야하는 경우 등 많은 현실 상황에서 하드케이스의 로봇은 한계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프로그래밍된 패러미터 값을 벗어나면 로봇이 오작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금속 외형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불안감을 자아내고 실제 충돌하면 부상을 입히기도 한다.

유연한 동물에서 영감을 얻은 소프트 로봇 개발이 활발하다. 은 하버드대가 개발한 옥토봇

유연한 동물에서 영감을 얻은 소프트 로봇 개발이 활발하다. 하버드대가 개발한 옥토봇 ⓒ하버드대학

‘로봇은 왜 단단한 강철로만 만들어야 하나’, ‘좀 더 유연하고 친근한 로봇을 만들 수는 없을까’, ‘동물을 모사해 로봇에 적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같은 의문을 로봇 개발에 처음 적용한 과학자가 이탈리아의 세실리아 라스치(Cecilia Laschi)’다. 그는 낚시광인 아버지에게 부탁해 잡은 문어를 소금물 수조에 넣은 다음 멸치나 게 등의 먹이를 어떻게 잡는지를 지속적으로 관찰했다. 이후 제자들과 함께 문어의 동작을 모사한 로봇 개발에 착수해 문어처럼 꿈틀대며 유연하게 움직이고 수축 팽창이 가능한 인공 촉수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게 2007년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꼭 10년전의 일이다.

이후 10년동안 소프트 로봇 개발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다. 문어, 애벌레, 물고기 등 유연한 동물에서 영감을 얻는가 하면 담쟁이덩굴과 같은 식물에서도 아이디어를 얻는다. 소재는 당연히 부드럽고 유연한 천이나 실, 실리콘, 고무, 폴리머 등을 사용하고 관절이나 근육 역할은 와이어나 스프링이 대체한다. 그러다보니 휘어지고 구부러지고 넘어가는 것이 자유롭다.

특히 완벽한 프로그래밍으로 로봇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제어하기 보다는 재료의 유연한 특성에 맞도록 유도하는 것이 개발 상의 특징을 이룬다. 소프트 로봇은 주로 재난 구조 현장이나 위험한 시설물 탐지, 좁고 울퉁불퉁한 지형에서의 탐색 등에 유용하게 쓰인다.

최근들어 흥미로운 소프트 로봇 개발이 이어지고 있다. 스탠포드대 엘리어트 호크스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자신의 몸을 길게 확장할 수 있는 튜브 형태 로봇을 최근 개발했다. 공기압 시스템을 이용해 몸체를 빠른 속도로 확장하는 이 로봇은 폴리에틸렌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마치 풍선에 공기를 집어넣듯이 불어넣으면 로봇의 끝 부분이 계속 확장된다. 끝 부분 이동 방향도 좌우로 조작이 가능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따라 공기를 각각의 방에 넣어주면 된다. 사람을 투입하기 힘든 가스 유출 사고지역에서 이 로봇을 투입, 확장시켜 밸브를 잠그는 미션이 가능하다.

소프트 로봇은 좁은 틈을 기어가거나 위험한 지역에 투입돼 하드 로봇이 하지 못한 역할을 한다. 은 좁은 나무 사이를 통과하는 스탠포드대의 소프트 로봇

소프트 로봇은 좁은 틈을 기어가거나 위험한 지역에 투입돼 하드 로봇이 하지 못한 역할을 한다. <사진>은 좁은 나무 사이를 통과하는 스탠포드대의 소프트 로봇 ⓒ 스탠포드대학

하버드대 제니퍼루이스연구소는 문어를 모사한 소프트 로봇 옥토봇을 개발했다. 옥토봇은 배터리, 컴퓨터칩과 같은 전자 부품이 전혀 없으며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지도 않지만 스스로 움직인다. 기본적으로 공기압 방식의 튜브를 취하고 있으며 과산화수소를 내부로 주입하면 액체가 흘러들어가 백금과 만나 가스를 발생기시키는 원리다. 가스가 확장되면서 촉수를 움직이게 만드는데 1밀리미터 연료로 약 8분동안 작동이 가능하다.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물리학과 과학자들도 지난해 애벌레처럼 꿈틀대며 움직이는 로봇을 개발했다. 액체 크리스털 탄성 중합체(LCEs) 소재를 활용해 애벌레처럼 파동 운동을 하는 로봇이다. LCEs를 고열과 빛에 노출하면 15밀리미터 정도의 애벌레 모양 로봇이 만들어진다. 평탄한 지역은 물론 경사로나 협소한 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신시아 성 교수는 뜨거운 물속에서 스스로 접을 수 있는 소프트 로봇 기술을 개발했다. 적층셀프폴딩(additive self-folding)이라는 기술을 활용해 유연하고 움직임 제어가 수월한 이 로봇은 PVC와 마일라 등으로 이뤄진 재료를 얇은 조각으로 만들고 이를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2D 객체를 뜨거운 물에 담그면 짧은 시간에 3D 객체로 변환되는 원리다.

핸디메이드 소프트 로봇도 등장했다. 목공, 뜨개질을 이용해 만든 코넬대의 블라섬 ⓒ 코넬대

핸디메이드 소프트 로봇도 등장했다. 목공, 뜨개질을 이용해 만든 코넬대의 블라섬 ⓒ 코넬대

코넬대학 연구팀은 최근 목공, 뜨개질과 바느질을 이용한 핸드메이드 로봇 ‘블라섬’을 내놨다. 토끼나 고양이 등 동물 모양의 귀여운 형상에 뜨개질로 외피를 두른 이 로봇은 원하는 색깔, 모양으로 뜨개질해서 로봇에게 옷을 입히듯 로봇을 구성할 수 있다. 기능적으로 첨단을 지향하는대신 공학자, 과학자가 아닌 그 누구라도 핸드메이드 로봇을 만들고, 이를 다른 이에게 선물하며, 사고파는 전용샵으로 유통 구조를 바꾸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EPFL)은 아예 먹을 수 있는 소프트 액추에이터를 개발했다. 젤라틴과 글리세롤로 이뤄진 합성 물질을 이용해 사람이 먹어도 문제없다. 아직 초보적인 단계지만 몸안으로 들어가 약물을 전달하는 의료 로봇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EPFL의 설명이다.

소프트 로봇의 특성을 활용해 심부전증 환자의 심장 운동을 도와주는 기술도 등장했다. 로봇신문에 따르면 하버드대 바이오디자인연구소는 심장을 실리콘 재질의 소프트 로봇으로 감싸 정상인의 심장처럼 이완과 수축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로봇을 소개했다. 그동안 심부전증 환자들은 심장 기능 회복을 위해 전통적으로 심실보조장치를 사용해왔으나 이것이 직접 혈액에 닿으면서 혈액 응고 등의 부작용이 생기는 단점이 있었다.

애벌레 모습을 형상화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의 소프트 로봇 ⓒ 바르샤바 대학

애벌레 모습을 형상화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의 소프트 로봇 ⓒ 바르샤바 대학

소프트 로봇에 대한 연구는 아직 실험실 단계나 논문 수준이지만 앞으로 더욱 활발한 연구와 상용화가 기대된다. 라스치 교수는 “초반에는 전통적인 로봇 컨퍼런스에서도 관련 논문을 받아주지 않았으나 지금은 소프트 로봇만을 위한 세션이 만들어졌으며 소프트 로보틱스라는 전문 저널도 생겼다”고 말한다.

2013년에는 하버드대 화이트사이즈 교수 연구팀에서 분사한 소프트 로보틱스가 스타트업으로 출범하기도 했다. 소프트 로보틱스는 450만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한 이후 소프트 그리퍼를 개발했으며 현재 6개 고객사와 패키징 픽업이나 음식물 다루기 등의 소프트 로봇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프트 로봇의 다양한 원천 기술 개발과 차세대 웨어러블 로봇 기술 개발을 목표로 관련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조규진 서울대 교수를 센터장으로 하는 인간 중심 소프트로봇 기술연구센터(SRRC)가 문을 열어 국내 소프트 로봇 연구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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