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후쿠시마와 관련된 불편한 가설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호르메시스로 방사능 위험 포장하지 말아야

8년여 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태평양 연안의 국가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멀리 떨어진 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방사능 공포를 알리는 기사들이 연일 배포됐다. 바로 그 무렵 미국의 보수적인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앤 하트 코울터(Ann Hart Coulter)는 이상한(?) 내용의 칼럼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방사능에 대한 빛나는 보고서’라는 제목의 그 칼럼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됐다.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해 일본을 황폐화시켰지만 좋은 소식도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원전에서 방사능에 노출된 이들은 암에 걸릴 가능성이 훨씬 낮아진다는 사실입니다.”

앤 코울터는 그 근거로 여러 가지 연구 결과를 나열했다. 흉부 X-선 사진을 찍은 결핵 환자들은 일반인보다 유방암 발생률이 훨씬 낮았으며, 핵관련 선박을 건조해 10배나 많은 방사선에 노출된 근로자들은 일반 조선소 근로자에 비해 사망률 및 암 발생률이 20% 이상 낮았다는 연구 결과 등이 그것이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바다 방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바다 방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이처럼 낮은 수준의 방사능은 오히려 건강에 유익한 효과를 낸다는 가설을 ‘호르메시스(Hormesis) 이론’이라고 한다. 호르메시스는 ‘자극한다’ 또는 ‘촉진한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방사능 외에도 비소, 자기장 등의 물질이 호르메시스 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호르메시스 이론은 하나의 가설일 뿐 법칙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예외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방사능 호르메시스의 경우 찬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린다.

호르메시스 이론은 가설일 뿐 법칙 아냐

앤 코울터처럼 이 이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낮은 수준의 방사능이 유기체에 유익하다는 수많은 연구결과들을 증거로 들이댄다. 연구자들은 이런 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활성 면역 시스템과 관련된 유전자, 효소, 단백질을 방사능이 자극하거나 억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그런 연구결과들의 경우 유익한 효과와 해로운 효과를 나타내는 여러 기제들이 더해져서 우연히 나타난 자극 반응의 결과일 뿐 그 데이터를 일반화시킬 수 없다고 반박한다. 엄격한 과학적 기준에서도 호르메시스 기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놀라운 위력을 확인한 이후 보건 학계에서는 방사능의 위험 수준을 정의하고, 관련 시설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해 노출 정도를 낮은 수준에 머물 수 있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원전 및 우라늄 광산, 병원 방사선과 등의 많은 사업체에서는 방사선 노출을 가능한 낮게 유지해야 한다는 규칙에 의해 운영되어 왔다.

그런데 그 낮은 기준이라는 게 상당히 불확실하다. 다양한 배경 방사능이 존재할뿐더러 사람마다 소화하는 방사능의 한계 또한 달라 수치로 정량화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르메시스 이론에서 말하는 저선량 방사능의 기준치 역시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지난 2015년 ‘정확한 방사능 정보를 위한 과학자 그룹(SARI,  Scientists for Accurate Radiation Information)’이라는 단체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 저선량 방사능이 건강을 개선한다는 사실을 수용하라는 청원을 넣었다. 즉, 호르메시스 이론을 수용하라는 것이었다.

원자력 산업 종사자 및 핵의학 실무자, 산업위생학 교수, 방사선 방호 관련 종사자 등으로 구성된 SARI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에 대한 대중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그들이 이런 청원을 넣은 데는 이유가 있다.

호르메시스 이론 수용하라는 과학자 단체 SARI

광범위한 산업 현장에서 작업자들로 하여금 방사선 노출을 최대한 줄이게 하기 위해선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즉, 저선량 방사선 방호에 대한 요건은 산업체들의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매우 성가신 기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NRC는 그들의 청원대로 이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혀 많은 이들이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더구나 최근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에 보관 중인 방사성 오염수 100만톤 이상을 태평양에 방류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설사 이것이 의혹에 불과하다 해도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도쿄전력은 아직도 남아 있는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물을 계속 투입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매일 170톤씩 늘어나는 오염수가 2022년에는 한계치에 도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기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방사능에 대해 지나친 공포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공포심을 비집고 근거 없는 유언비어들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선량의 방사능은 그렇게 유해하지 않다거나 오히려 건강에 유익할 수 있다는 인식은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을 몰고 올 수 있다.

호르메시스 이론은 아직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가설일 뿐이다. 이에 대한 연구결과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데이터의 복잡성과 필요한 연구 상황들의 방대함으로 인해 저선량 방사능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내는 것은 어쩌면 미래에도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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