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 숨어있는 핵실험의 흔적

과학서평 / 호수, 비밀의 세계

미국인에게 있어서 월든(Walden) 호수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바이칼 호수처럼 그렇게 추운 지방에 있는 것도 아니고, 빅토리아 호수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폭포가 자리 잡지도 않았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월든 호수가 그렇게 유명한 것은 전적으로 한 시인이자 철학자이면서 호소(湖沼)학자였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 덕분이다.

소로는 미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의 친구이기도 했다. 소로는 에머슨 시인이 소유하고 있던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간 살았다. 호숫가 오두막이라고 하면 은둔생활을 하면서 시를 쓰고 철학을 연구한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소로는 앞서가는 호소학자였다.

겨울에 언 호수에 100개의 구멍을 뚫어 추를 단 줄을 내려 미국 최초로 호수 바닥 지형도를 그렸다. 마개를 막은 병에 온도계를 넣고 호숫물에 내려 월든 호수 최초로 깊이별 온도 분포를 측정했다.

소로는 월든 호숫가에서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150년 전 ‘월든’이란 책을 냈다.

커트 스테이저 지음, 김소정 옮김 / 까치 값 16,000원

커트 스테이저 지음, 김소정 옮김 / 까치

커트 스테이저(Curt Stager)가 쓴 ‘호수, 비밀의 세계’(STILL WATERS : The Secret World of Lakes)는 소로가 쓴 ‘월든’을 곁눈질하면서 쓴 책이다. 월든을 비롯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수들을 직접 방문하면서 실시한 다양한 경험과 호수의 특징을 다루고 있다.

호수 퇴적물 코어로 지구 역사 알아내    

호수가 견뎌온 세월을 알아내는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은 ‘퇴적물 코어’를 확보하는 방법이다. 호수 밑바닥 땅을 파고 들어가 샘플을 채취해서 샘플의 분포도를 분석함으로써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알아낸다.

이 코어 분석을 토대로 여름이면 월든 호수의 인 함유량이 2배가량 늘어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수영객들이 몰래 방출하는 소변 때문이다. 호수를 더럽게 한다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소변 방류는 조류가 섭취하는 인의 훌륭한 공급처이다.

호수하면 먼저 떠오르는 곳이 바이칼 호수인 사람들이 많다. 저자는 아직 러시아가 구 소련이던 1990년에 바이칼 호수를 방문했다. 호소학자라면 꼭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저자 역시 세계 최고의 호수라는 평판을 가진 바이칼을 든다. 지구에서 가장 깊고(1642m) 길이가 640㎞나 되며 지구의 모든 담수의 약 25%를 담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바이칼 호수의 담수가 2만 3000㎦라고 발표했다.

헝가리 과학자 죄르지 헤베시는 중수소로 이뤄진 무거운 물은 사람 체내에 들어간 지 30분 만에 소변으로 나오는 것을 측정했다. 보통 물은 인체 안에 11일에서 13일을 머물다가 배출된다.

그렇다면 호수는 어떨까? 물 분자는 제네바 호수에서 10년을 머물고, 바이칼 호수에 들어오면 300년을 갇혀 지내고, 북극해로 간다면 3000년 동안 못 빠져나올 수 있다. 바이칼 호수에는 100종이 넘는 달팽이 등 어패류가 매우 풍부하다. 계절에 따라 호수 표면 온도의 변화가 심해서 봄 가을로 수층이 자주 뒤집히기 때문에 모든 깊이에서 많은 동물들이 산다.

핵실험으로 세슘 퇴적물 늘어    

갈릴리 호수의 특징 중 하나는 세이시(seiche) 현상이다. 정진동(靜振動)이라고도 하는 세이시는 호수와 항만의 수심과 길이에 따라 물이 정상파(定常波)에 의해 주기적으로 진동하는 현상이다. 갈릴리 바다의 세이시는 9m 높이의 파도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것이 사도 베드로가 갈릴리 호수에서 겪은 격랑이나 물고기 떼죽음 사건을 설명하는 메커니즘으로 들이대는 과학자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종교적 신화는 과학이 아니며, 영감을 준 종교적 전통으로 넉넉하게 해석하는 길을 선택한다.

월든 호수 ⓒ 위키피디아

월든 호수 ⓒ 위키피디아

호수의 비밀은 퇴적물 코어를 통해 인간이 살아온 과거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도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이 인류세(anthropocene)를 언제부터 시작할 것인지 정하는 데 있어서 퇴적물 코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중 한 후보는 1960년대 초반이 꼽힌다. 동서 냉전의 갈등 속에서 핵실험이 많이 벌어졌던 시기이다. 이때 대기는 방사성 낙진으로 심하게 오염됐으며 그 흔적이 바로 세슘137이 퇴적물 코어에서 많이 나타난다.

인류는 이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인공의 쓰레기를 대량으로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캐나다와 안데스산맥 호수에서도 황조류가 증가하는 것은 질소오염이 늘어나고 지구온난화가 진행된 결과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폴 스미스 대학 자연과학부 교수인 커트 스테이저는 모든 사람들이 아마추어 학자가 될 수 있는 팁을 하나 알려준다. 구글 어스를 돌려 집에 앉아서 1억 1700만 개의 전 세계 호수를 돌아다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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