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현실화된 EMP 무기, 그 위협과 대응

[과학기술 넘나들기] 과학기술 넘나들기 (92)

현대의 첨단무기 중의 하나로서, 화약 등을 터뜨리는 재래식 폭탄 등이 아닌 이른바 EMP(Electromagnetic Pulse) 무기가 있다.

이는 강력한 전자기 펄스를 발생시켜서 그 영향을 받는 전자기기들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특히 반도체 집적회로(IC) 기술의 발달로 첨단 전자기기들은 갈수록 소형화가 되므로 전자기 펄스 공격에는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 첨단 전자기기들을 채용한 군사무기체계 역시 순식간에 무력화될 수도 있다.

지금의 평화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불과 1~2년 전만 해도 미국과 북한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핵전쟁 운운하는 얘기까지 나왔었다. 당연히 북한의 군사력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는데, 당시 북한의 EMP 폭탄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언급됐다.

수소폭탄 실험으로도 EMP 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 Wikipedia

수소폭탄 실험으로 EMP 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 Wikipedia

EMP 무기는 핵폭발 시 방출되는 막대한 전자기파를 이용하는 NEMP(nuclear EMP; 핵전자기펄스) 무기와 핵폭발 없이 사용하는 NNEMP(non-nuclear EMP; 비핵전자기펄스) 무기로 구분된다.

미국은 1962년 태평양의 환초에서 핵폭발 실험을 단행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1000㎞ 이상 떨어진 하와이 제도에서 전등이 꺼지거나 각종 전자기기와 통신시설이 작동 불능에 빠진 일이 있었다.

나중에야 그 원인이 핵폭발로 인한 전자기 펄스로 의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EMP가 새로운 무기 방식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핵폭발이 발생하면 컴프턴 산란 효과(Compton effect)가 생긴다. 이는 매우 짧은 파장의 전자기파인 감마선이 대기 중에 퍼지면서 전자가 방출되는 현상을 말한다.

EMP 발생의 메커니즘과 위치에 따른 강도 ⓒ Wikipedia

EMP 발생의 메커니즘과 위치에 따른 강도 ⓒ Wikipedia

이때 대량으로 튀어나온 고에너지 전자들은 강력한 전자기 펄스를 생성하며, 각종 전자기기가 이들에 노출되면 회로에 과전류가 발생하면서 망가지거나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NNEMP 무기는 EMP를 기계적으로 방출하는 장치를 통해 핵폭발 없이 유사한 효과를 거두는 방식이다. 이는 광범위한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NEMP 무기보다 위력이 작을 수도 있지만, 정확히 원하는 지역에 피해를 줄 수가 있다.

즉 NEMP 무기는 자칫 아군에게도 큰 피해를 끼칠 수 있는 반면에, NNEMP 무기는 그런 위험을 감소시키고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EMP 무기를 소재로 한 영화 007골든아이 ⓒ 유나이티드 인터내셔널 픽처스

EMP 무기를 소재로 한 영화 007골든아이 ⓒ 유나이티드 인터내셔널 픽처스

한편 EMP 무기는 영화에도 간혹 등장하는데, 본격적으로 EMP 폭탄을 소재로 다룬 영화로는 007 시리즈 17번째 작품인 ‘007 골든아이(GoldenEye; 1995)’가 꼽힌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새로운 제임스 본드로 처음 분한 이 영화는 긴박한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다. 미국과 구소련간의 냉전이 와해되고 공산주의 정권들이 종말을 맞으면서, 정치적 양상이 급변하는 20세기 말의 혼란한 상황이다.

이때 러시아에 본거지를 둔 유럽의 마피아가 새로운 범죄조직으로 등장,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하여 기존의 핵폭탄을 대체할만한 가공할 위력의 신형 무기를 손에 넣으려 한다.

영화의 제목인 골든아이는 구소련과 미국이 냉전 시대에 함께 개발했던 첨단 비밀무기의 이름이다.

영화에서는 이를 폭발시키면 상대국의 레이더망이나 전자회로를 가진 모든 장비와 무기를 단번에 마비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온다. 다름 아닌 EMP 무기인 것이다.

미래 인류가 인공지능(AI)의 지배를 받는다는 설정의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1999)에서도 주인공이 기계군단을 한꺼번에 물리치는 강력한 무기가 나온다. 이 또한 EMP 무기다.

그 밖의 여러 영화에서도 EMP 무기가 등장하며, ‘스타크래프트’ 등의 온라인 게임에서도 EMP 공격은 상대방을 순식간에 무력화할 수 있는 막강한 수단으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EMP 무기의 실제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NEMP처럼 전략무기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소규모의 전자기 펄스 무기나 이와 비슷한 방식은 이미 실전에서 사용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즉 상대방의 전자기술을 교란하고 파괴하기 위한 전자기 펄스가 지난 걸프전 등에서 사용된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EMP 무기가 현실화하면서 이를 방어하는 수단 또한 군사적, 과학기술적으로 중요한 관건이 되고 있다.

EMP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테스트 시뮬레이션 중인 미공군의 항공기 ⓒ Free photo

EMP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테스트 시뮬레이션 중인 미공군의 항공기 ⓒ Free photo

미국 공군이 운영하는 요인 전용 비행기, 즉 ‘에어포스 원(Air Force One)’이라 불리는 대통령 전용기나 국방부 장관이 타는 비행기 등에는 EMP 공격을 차단하는 장비가 탑재되어 있다.

EMP를 차폐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기술의 하나로, 전자기파를 반사하거나 흡수하는 물질 등을 표면에 코팅하는 방법이 있다. 최근 전도성 고분자 물질 등의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은이나 구리만큼 전기전도성이 우수한 폴리머 복합체를 사용해 전자기파를 차단하는 연구가 국내에서도 성과를 거둔 적이 있다.

또한 기존의 회로보다 과전류에 견디는 힘을 배가시키는 전자부품 등을 채용하여 전자기기를 설계하는 방법 등도 있겠으나, 기존의 전자기기를 모두 대체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물론 매우 중요한 군사 장비나 전자기기를 통째로 안에 들여서 외부의 EMP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방호벽 개념의 차폐실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또한 건설하기가 매우 번거롭고 적지 않은 비용이 들 것이다.

EMP 무기와 그 대응은 오늘날과 같은 첨단과학기술 시대에 과학기술의 군사화 측면에서 또 다른 양상과 과제를 낳게 되었다고 하겠다.

(5950)

뉴스레터 구독신청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