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현대SF에서의 우주여행

[SF 관광가이드] SF관광가이드/우주여행 이야기 (2)

2013.03.04 09:18 고장원

현대의 과학소설 작가들 가운데 달세계 여행을 단지 사회풍자의 비유적 수단이 아니라 진지한 과학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은 이는 줄 베르느(Jule Verne)가 처음이다. 그의 장편소설 <지구에서 달까지 De la terre a la lune, 1865>와 그 속편 <달 주위에서 Autour de la lune, 1870>는 오늘날 우주비행사들이 달까지 다녀오며 겪게 되는 실제 경험에 유사한 사고실험을 선보였다.

▲ 19세기 초 사람들이 생각한 로켓발사 방식과 우주복의 한 예. Q.Q.Esq의 <달세계 여행, 1815>의 삽화에는 로켓발사장면과 우주복의 도해가 실려 있다. ⓒE.F. Burney


시대의 한계 상 베르느의 예측이 전부 다 과학적인 근거 위에 씌어진 것은 아니다. 소설에서처럼 포신이 300m나 되는 대포에 180톤의 화약을 장전하고 점화시켰다고 해보자. 대포알 모양의 우주선이 달로 날아가기는 커녕 발사와 동시에 그 안에 탄 탑승자 세 명 모두 압사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베르느는 우주선이 달로 향하기 전 우선 지구 중력권을 벗어나야 하며 그러려면 11.2 km/s의 탈출속도를 얻어야 함을 알고 있었다.

나아가서 그는 상상력을 무한정 확장하는 대신 어느 선에서 절제할 줄 알았다. 일례로 그의 대포알 우주선은 달 착륙을 갈구한 독자들의 염원을 뿌리치고 달 궤도만 선회한 채 지구로 돌아온다. (그래서 속편은 제목부터가 <달 주위에서>로 지어졌다.) 당시 과학기술로서는 우주선이 일단 달에 착륙하면 다시 지구로 되돌아올 추진력을 얻을 방도가 없었기에 베르느는 무리한 설정을 추가하지 않았다.

이는 H.G. 웰즈(Wells)가 <달세계 최초의 인간들 The First Men in the Moon, 1901>에서 ‘카보라이트’라는 작동원리 불명의 반중력장치를 써서 지구인들이 달 표면에 내리게 한, 다분히 문학편의주의적인 발상과 대조를 이룬다.1) 베르느는 카보라이트 같은 가상동력원의 도입에 반칙이라며 반발했지만, 웰즈는 어차피 특정 과학장치의 현실성 여부보다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작가의 입장을 밝히는데 주목적이 있으므로 그 정도의 문학적 편의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 1968년 12월 인류 최초로 달까지 날아간 유인 우주선 아폴로 8호가 지구로 귀환하며 낙하한 태평양의 착수지점(着水地點)이 베르느의 소설에 나오는 착수지점에서 불과 4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더욱 공교롭게도 소설에서처럼 유인 우주비행사를 태운 달 여행을 처음 성공시킨 나라는 미국이었고 로켓의 발사장소 또한 플로리다였다. 좌측 그림은 줄 베르느의 달여행 후 지구귀환방식이고 우측 사진은 아폴로13호가 1970년 4월 17일 달탐사 마치고 지구로 귀환한 방식이다. 너무 쏙 빼닮지 않았는가. ⓒHetzel & NASA


실제 과학지식을 기반으로 사고의 비약을 하는데 꽤 신중한 입장이었던 베르느이다 보니 그의 팬들 중에는 정말 그러한 우주선이 제작가능하다고 믿은 나머지 함께 태워주기만 한다면 비용을 분담하겠다며 나선 부자도 있었다 한다. (베르느의 과학적 추론의 신중함을 보여주는 실례가 하나 있다. 1968년 12월 인류 최초로 달까지 날아간 유인 우주선 아폴로 8호가 지구로 귀환하며 낙하한 태평양의 착수지점(着水地點)이 베르느의 소설에 나오는 착수지점에서 불과 4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더욱 공교롭게도 소설에서처럼 유인 우주비행사를 태운 달 여행을 처음 성공시킨 나라는 미국이었고 로켓의 발사장소 또한 플로리다였다.2) 이쯤 되면 우연의 일치가 몇 번 겹쳤다고 보기에는 무리한 감이 들지 않는가.)

19세기 초 어렴풋이 윤곽을 드러낸 유럽의 현대적 과학소설 형식이 20세기 초 미국 자본주의 출판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우주여행은 유력한 하나의 하위 장르로 자리 잡았으며, 1930~1950년대 미국 펄프잡지들3)의 번영과 함께 정점으로 치달았다.

미국의 과학소설이 탄탄한 수요를 바탕으로 무럭무럭 성장하던 이른바 황금시대4)에 우주여행은 청소년 독자들에게 비단 경이감을 심어주었을 뿐 아니라 궁극에 가서 우주로 진출하게 될 인류의 낙관적인 비전과 동일시되는 차세대 패러다임이었다. 그러나 E. E. 스미쓰(Smith)의 <우주의 종달새 호 The Skylark of Space> 시리즈(1915~1966년)와 <렌즈맨 Lensman> 시리즈(1934~1960년)에서 보듯, 이 시기에 나온 우주여행담 대부분은 대중의 인기가 높았지만 박진감 넘치는 모험과 진기한 기계장치들을 시도 때도 없이 들이밀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상투적인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 1930~40년대에 미국 청소년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E. E. 스미스의 우주여행담 <우주의 종달새호>의 삽화. SF잡지 ‘어메이징 스토리즈’ 1928년 9월호에 게재되었다. ⓒFrank .R. Paul


오늘날 전에 비할 바 없이 성숙해진 과학소설계의 시각에서 보건대, 스미스의 시리즈물은 사각 턱의 용감무쌍한 파일럿들과 양가집 처녀들의 신변잡기를 우주적 스케일로 조악하게 변형한 유치찬란한 내러티브에 지나지 않는다.(물론 이후 양산된 수많은 작가들의 모방작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실험적인 SF 아이디어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주의 종달새호>에서 악당 듀크슨이 조우하는 죽은 별은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만 해도 대중에게 몹시 낯설었던 블랙홀에 대한 묘사를 연상시킨다. 어쨌거나 권선징악의 이분법적 구도 아래 선한 주인공 일행이 악당(또는 사악한 외계 세력)과 맞서 싸우며 온 우주를 헤집고 다니는 모험담들은 단순히 환타지에 그치지 않고 인류 과학기술 문명의 장밋빛 내일에 대한 청사진처럼 보였다.

과학소설에서의 우주여행 붐은 꿈이 현실화되는 인류역사의 전환점과도 맞물리는 행운을 누렸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사람들의 뇌리에 과학소설이라면 우주비행을 연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유인 달탐사 계획은 지구촌 인류의 내일에 대해 낙관적인 믿음과 희망 그리고 열망을 북돋은, 역사적으로 의미심장한 프로젝트였다.

과학소설 팬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 더욱 극적인 사건은 1970년 일어났다. 자칫 참사로 이어질 뻔 한 아폴로 13호의 고장을 극적으로 수습해 4일 간의 사투 끝에 지구로 귀환한 우주비행사들… 그들의 투혼에 박수를 보내며 존 W. 캠벨 2세(John W. Campbell jr.)5)는 이 사고야말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서스펜스 드라마(the greatest cliff-hanger)”라 일컬었다(‘아날로그 Analog’ 1970년 8월호, 4쪽).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닉(Sputnik)으로부터 최초의 유인우주선 보스토크 1호 그리고 제미니, 아폴로 계획으로 이어지는 미국과 소련 간의 체제우위 선전을 겸한 치열한 우주탐험 경쟁은 오륙십 년대의 사람들에게 뭐든 가능할 것만 같은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우주여행은 더 이상 상상 속에만 머무는 허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주여행이란 테마를 과학소설 못지않게 쌍수를 들어 환영한 분야는 영화와 방송 같은 멀티미디어 업계였다. 영화에서 우주여행은 H. G. 웰즈(Wells)의 원작을 영상으로 옮긴 <다가올 미래 Things to Come, 1936>에 인상적인 클라이맥스를 제공했고, 로벗 앤슨 하인라인(Robert Anson Heinlein)이 각본에 참여한 <목적지 달 Destination Moon, 1950>과 아서 C. 클락(Arthur C. Clarke) 원작의 <2001년 우주 오디세이 2001 Space Odyssey, 1968>의 주요한 소재가 되었다.

▲ 우주여행을 당대 지식에 비추어 비교적 사실적으로 그려낸 SF영화 <목적지 달>. 각본 작업에는 후일 미국 과학소설계의 3대 거두 가운데 한 사람이 된 로벗 앤슨 하인라인도 참여했다. ⓒLionel Lindon


특히 하인라인이 각본에 참여하고 조지 팔(George Pal)이 연출한 <목적지 달>은 우주여행을 다룬 SF 영화의 신기원을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이 영화가 SF 영화사상 최초로 우주여행에 필요한 기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겪게 될 온갖 문제들을 진지하게 다룬 까닭이다. 예를 들어 여기에 등장하는 우주복은 이후 십여 년 간 SF영화라면 기본적으로 참고해야 할 표준 모델이 되었다.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울지 모르나 이 우주복은 실제 우주탐사에 나설 때 갖추어야 할 기본요건들을 충족시켜준다. 방송에서는 BBC의 라디오연속극 <우주여행 Journey into Space, 1953>과 1966년 방영을 시작한 이래 오늘날까지 꾸준히 시즌을 갱신해오고 있는 TV연속극 <스타 트랙 Star Trek> 등이 고전적인 예다.
 




1) 카보라이트 또한 타임머신처럼 웰즈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영국에서 반중력 개념을 처음 선보인 소설은 크라이소스텀 트루먼(Chrysostom Trueman)의 <달 여행의 역사 The History of a Voyage to the Moon, 1864>이다.

2) 이 사실은 아폴로 8호 선장 프랭크 보먼이 베르느의 손자에게 보낸 편지에 드러나 있다. / 자료원: 줄 베르느 지음, 김석희 옮김, 지구에서 달까지, 열림원, 2005, 324쪽

3) 싸구려 종이에 통속적인 장르의 대중소설들을 연재하던 잡지들을 총칭하는 용어

4) 미국에서 펄프잡지 시장을 무대로 과학소설이 급속히 성장하던 1930~1950년대를 일컫는 과학소설계의 시대구분 개념이다.

5) 캠벨은 과학소설 전문지 ‘아날로그 Analog’의 편집장으로서 미국 과학소설의 황금시대라 불리는 20세기 초중반 과학소설계를 좌지우지한 거물이다. 오늘날 그는 미국에서 과학소설이 유치한 환타지가 아니라 합리적인 근거 아래 전개되는 사변소설이 될 수 있게 기틀을 닦은 인물로 평가된다.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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