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현대 전투복의 원형을 제시한 공정부대

[밀리터리 과학상식] 새로운 전투 투입 방식이 군장 변화 이끌어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직전 미군 공정부대를 시찰한 아이젠하워 장군. 공정부대의 군장은 이후 20세기 후반의 서구 각국 군대 전투복에 원형을 제시했다. Ⓒ United States Library of Congres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

21세기 들어와 전투복의 형태는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전투복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비교적 정해져 있다. 반구형 헬멧, 여유 있는 셔츠형 상의와 옆구리에 건빵 주머니가 달린 통 넓은 하의로 이루어진 기본 전투복, 주머니 4개가 달리고 사타구니 높이까지 내려오는 방한복(이른바 야전상의), 그리고 끈으로 여며 결속하는 방식의 높이 20cm 가량의 장화형 전투화가 그것이다.

20세기 후반의 서구, 그리고 서구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 군대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전투복이 대세를 이루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유럽 각국 군대 전투복들의 재질은 요즘과는 달리 모직이 많았고, 전반적으로 착용자의 신체를 구속하는 정복형 디자인이었다. 특히 목을 꽉 조이는 속칭 로만 칼라가 많았고, 넥타이를 착용하기도 했다. 단추는 광택이 나는 금속제. 방한복 역시 무릎 아래까지 내려가는 롱 코트. 신발은 무릎 바로 아래까지 올라오는 잭 부츠, 또는 단화와 각반이었다.

19세기적인 전통이 아직 남아 있던 이러한 전투복이 바뀌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20세기의 새 발명품인 항공기와 낙하산의 발달과 더불어 생긴 새로운 부대인 공정부대 때문이었다. 항공기에 탑승해 낙하산으로 적 후방에 뛰어내려 적의 후방을 교란하고, 아군 주력부대와 상봉할 때까지 버틴다는 공정부대의 개념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부터 연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27년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여러 나라 군대에서 공정부대의 창설이 속속 진행되었다.

여기서 문제는 항공기에서 낙하산으로 뛰어내린다는 부분이었다. 그 부분이야말로 그 이전의 어떤 군인들도 시도하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항공기 승무원들도 비상시 낙하산을 이용해 탈출은 했지만, 착지 후 지상 전투는 고려하지 않았다.

일단 항공기 밖으로 뛰어내려 낙하산이 펴질 때까지 자유 낙하를 하게 되면 엄청난 공기 저항을 받는다. 때문에 큰 공기 저항을 유발하거나, 최악의 경우 뒤집어지거나 벗겨질 위험이 있는 장비는 착용할 수 없다. 낙하산이 펴질 때 낙하산 줄에 걸릴 위험이 있는 장비 역시 착용할 수 없다. 지상에 착지할 때 강하자가 받는 충격은 건물 2층에서 뛰어내릴 때 받는 충격에 필적하므로 이러한 충격에서 강하자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정부대는 적 후방에 투입되어, 아군 주력부대와 상봉할 때까지 버텨야 하므로, 가급적 많은 물자를 수납할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공정부대의 군복은 전통과 결별하고, 실용성을 추구해야 했다.

이탈리아, 독일 등 다른 나라들에 앞서 일찌감치 공정부대를 창설한 나라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

복장의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철모와 방한복의 디자인부터 손보았다. 외형을 반구형의 비교적 단순한 형태로 하고, 공기 저항을 받아도 벗겨지지 않게 턱끈도 강화했다.

방한복은 사타구니 정도까지만 오도록 짧게 하고, 몸 아래에서 풍압을 받아도 아랫단이 들춰지지 않도록 단추로 여밀 수 있게 했다. 전투화는 끈으로 여며 발목을 확실히 잡아줄 수 있으면서도, 너무 길지 않은 형태의 전투화가 채용되었는데, 이 공정 전투화야말로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투화의 전형이 된다.

또한 무릎 및 팔꿈치 보호대도 지급되었다. 심지어 독일 공정부대는 강하시 소총도 휴대하지 않았다. 낙하산 줄에 걸릴 위험성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소총은 별도의 통에 담아 낙하시켰다. 그러나 이 방식은 강하 후 강하자가 소총을 일일이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공정부대 육성에서 비교적 후발주자였던 미국은 이러한 선배들의 행보를 충실히 거울삼았다. 미국은 특히 전투복의 디자인에 한 단계 더 손을 보았다. 최대한 많은 장비품을 수납하기 위해 전투복 상하의에 많은 주머니를 달고, 낙하산 강하시 난이도 높은 동작도 소화할 수 있게 통을 늘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미군의 M1942 강하복이다. 이 군복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서구권 및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여러 나라 군복의 원형이 된다. 소총도 기본 분해한 후 별도의 총기 가방에 담아 몸 옆구리에 휴대함으로써 낙하산 줄에 걸릴 가능성을 최대한 줄였다.

이렇게 스타일이 굳어진 제2차 세계대전의 각국 공정부대 군장은 전후에도 높은 실용성과 합리성으로 일세를 풍미했다. 21세기 들어서는 테러와의 전쟁, 저출산 고령화와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병사 개개인의 전투력 강화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는 전투복 디자인에도 또 한차례의 거센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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