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헬리코박터균을 직접 들이마신 의사

[노벨상 오디세이] 노벨상 오디세이 (120)

위염과 위궤양은 현대인들의 고질병 중 하나다. 1979년에 오스트레일리아의 병리학자 로빈 워런은 위내시경 검사를 마친 환자들의 위조직 표본을 관찰하다가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나선형 모양의 그 물체는 박테리아였는데, 그 박테리아가 사는 곳 주변의 위 점막에는 항상 염증이 발생해 있었다.

그런데 로빈 워런이 이 사실을 학회에 보고하자 다른 학자들은 그를 반미치광이로 취급했다. 강한 산성의 위산 때문에 위 속에는 어떠한 세균도 살지 못한다는 것이 당시의 통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위염이나 위궤양은 스트레스나 잘못된 식습관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지 세균이 그와 관련되어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단 한 명만은 달랐다. 같은 기관에서 내과 의사로 일하고 있던 배리 마셜은 워런과 함께 그 세균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생체조직 검사를 통해 워런이 발견한 위 속 박테리아의 정체를 확인한 마셜은 그 박테리아를 배양하기로 했다.

2006년 3월 서울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한 배리 마셜. ⓒ 연합뉴스

2006년 3월 서울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한 배리 마셜. ⓒ 연합뉴스

하지만 위 속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도 배양접시의 박테리아는 자라지 않았다. 그러다 부활절 휴가를 떠나면서 실수로 방치해두었던 배양접시 하나에 균이 형성돼 있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마셜은 그 새로운 박테리아에 ‘헬리코박터파일로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위와 십이지장의 연결 부위인 유문(pylori)에 존재하는 나선형 모양(helico)의 세균(bacter)이라는 뜻이다.

마셜과 워런은 임상 연구를 실시한 결과, 위나 십이지궤양을 앓는 환자들의 위에서 헬리코박터가 발견되며, 이 균이 점막에 염증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헬리코박터가 위궤양의 원인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를 찾으려던 마셜은 좌절하고 말았다.

동물실험 실패하자 자신이 직접 마셔

동물 모델에게 감염시키는 실험이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의 논문들은 대부분 출판을 거부당했고 심지어 수락된 논문들도 지연되고 있었다. 부정적인 반응과 주위의 비판에 시달리던 그는 마침내 큰 결단을 내렸다. 바로 자신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기로 한 것이다.

1984년 어느 날, 마셜은 위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서 얻은 헬리코박터 배양균을 직접 마셨다. 그리고 약 2주일 후 그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급성 위염 증세가 나타나자 그는 내시경으로 자신의 위에 염증이 생겼음을 확인했다. 이후 마셜은 헬리코박터균을 죽일 수 있는 항생제를 복용함으로써, 위에서 이 균을 제거하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해 보였다.

오직 인간만을 숙주로 삼는 헬리코박터가 산도 pH2의 강산을 내뿜는 위 속에서 어떻게 생존하는 걸까. 헬리코박터는 산도가 가장 낮은 안쪽 점막세포 주위에서 살아가며 강력한 요소분해효소를 분비한다. 그러다 일부 헬리코박터가 사멸하면 그 안의 요소분해효소가 밖으로 나와 위산을 중화하는 암모니아를 생성함으로써 다른 헬리코박터의 보다 좋은 생존 환경을 만들어준다.

배리 마셜은 인류에게 가장 흔한 질병 중 하나인 위궤양의 원인 박테리아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로빈 워런과 공동으로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의 연구 덕분에 소화기관 궤양을 항생제 등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됐음은 물론 만성적인 감염과 암의 관계에 관한 연구가 촉진됐다.

또한 첨단 이론이나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내시경 및 세균배양법, 염색법 등 기존의 평범한 미생물 기술만으로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세균을 발견했다는 점도 내세울 만한 공로였다.

허락보다 용서받는 것이 더 쉬워

헬리코박터균은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감염률이 높고 선진국은 낮은 편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선진국보다 2배 이상 감염률이 높다. 이는 찌개처럼 음식을 함께 떠먹거나 술잔을 돌리는 특이한 식생활 문화 때문이다. 헬리코박터는 물이나 채소, 키스, 내시경 검사 장비 등을 통해 전염된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는 1994년에 석면, 벤젠, 술과 함께 헬리코박터를 1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하지만 헬리코박터에 감염됐다고 해서 반드시 위궤양이나 위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헬리코박터 감염자의 10~15%에서만 궤양이 발생한다.

배리 마셜은 헬리코박터를 직접 들이마시는 용감한 실험을 감행하기 전에 병원 윤리위원회와 부인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병원이나 부인의 승인을 모두 얻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는 ‘허락보다 용서를 받는 것이 더 쉽다’고 표현했다.

자신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그의 일화는 어린이용 과학 만화나 교양 과학  서적 등에 언급될 만큼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사실 그의 행동은 연구 윤리를 위반한 것이다. 특히 동물실험에 실패한 경우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을 현재의 연구 윤리는 엄격히 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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