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한국 BEST SF작가 10인, 배명훈(2)

[한국SF를 찾아서] 배명훈의 과학소설은 '생활SF'

젊은 작가의 꾸준한 성장과 변신을 고려할 때 섣부른 감이 있지만, 배명훈의 작풍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일종의 ‘생활SF’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는 텍스트에 내재한 과학소설 플롯에도 불구하고 어떤 독자가 읽어도 전혀 괴리감을 느끼지 않는 소설이란 의미다.

예컨대 <타워>에서는 미제(美製) SF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클리세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마치 “그런 것들은 필요치 않다. 그것 말고도 우리끼리 할 이야깃거리는 얼마든지 있으니깐”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러한 작풍은 배명훈이 우리나라 문단에서 단지 과학소설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지 않으면서도 일반 순문학 작가들과는 확실히 다른 아이덴터티로 살아남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비해 장편 <신의 궤도>에서는 전형적인 SF 클리세들을 배명훈의 방식으로 활발하게 변주하지만, 그렇더라도 미국 과학소설들의 번역판처럼 마니아적인 지식이나 몰입도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과학소설 팬덤 내에서만 공감을 얻어내는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심지어 끈이론과 냉동인간 그리고 대종말의 전야 등 온통 SF적인 인습(因習)의 아우라로 둘러싸인 <신의 궤도>에서조차 등장인물들은 주연이건 조연이건 간에 우리네 평소의 삶을 빼닮았다. 한 마디로 말해, 이 장편 역시 포장지를 무엇으로 둘렀건 간에 본질적(정서적)으로는 ‘생활SF’란 이야기다.

▲ 배명훈의 생활SF를 보여주는 [신의 궤도](자료원: http://blog.naver.com/fireflag) ⓒ열혈명호


실제로 <신의 궤도>에는 (구미SF에 낯선) 우리나라 독자들의 순탄한 감정이입을 도와주는 배명훈 특유의 시각적 스타일이 있으니, 필자는 이를 ‘배명훈식 스팀펑크’라 명명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스팀펑크라 하면 증기기관이 세상의 주요 동력원으로 쓰이는 가상의 과거나 현재,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일컫는다.1)

배명훈이 창조한 세계에서는 증기기관 대신 복엽기와 삼엽기가 행성 전역의 주요 교통수단 역할을 한다. 작품의 주무대가 되는 나니예 행성은 인구가 폭증하는 먼 미래의 지구에서 20만 명에 달하는 백만장자들이 투자해서 개발한 휴양 식민지다.

애초 개발 취지에 따라 나니예의 모든 기술 수준은 행성 차원의 생존에 긴요한 최소한의 시스템을 제외하고는 전부 20세기 초 아날로그 시대에 맞춰져 있다. 기름은 일체 쓰지 않으면서 전기와 태양열만으로 동력을 공급하는, 한 마디로 ‘인공적인 청정세상’이다.

이는 복잡다단한 첨단산업사회에서 벗어나 목가적인 향수를 만끽하는 데 주안점을 둔, 부자들의 욕망이 행성 디자인에 적극 반영된 까닭이다. 달리 말하자면 억지로 기술발달을 억제한 사회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헤게모니는 우주왕복선을 포함한 첨단기술과 방대한 문헌정보를 독점적으로 보유한 행성관리사무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형천체망원경과 수천대의 전투기 편대를 보유한 종교집단과 가축 정도의 A.I. 지능을 지닌 비행기들을 방목하며 물물교환이나 원시시장경제에 의존하는 유목민 세력이 대안세력으로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 말이다.

기술발전단계 상으로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서로 이질적인 이 사회들이 같은 세상, 같은 시대에 함께 살아가며 헤게모니를 탐낸다는 아이러니한 설정은 독자들이 낯선 것과 낯익은 것을 함께 비벼 먹으며 차츰차츰 작품에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본질적으로는 과학소설의 까다로운 법칙들을 준수하고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누구나 감정이입할 수 있게 편안한 돗자리를 깔아주었다고나 할까. 이밖에 행성 관리사무소 소장을 비롯한 핵심부서원들의 무사안일주의와 자기 자리보전에 극구 연연하는 행태 역시 <타워>의 연장선 상에서 ‘생활SF’의 해학이 지닌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다음으로 배명훈의 작품들에서 한결같이 묻어나는 미덕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다. 이러한 시선은 알콩달콩한 남녀의 사랑을 그릴 때뿐 아니라 사회의 추악한 권력형 부조리를 파헤칠 때에도 흔들림 없이 유지된다.

예컨대 평생 아내의 코골이로 고통 받으면서도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며 해법을 찾으려는 어느 동화작가의 처절한 노력이 기상천외한 SF적 결말로 치닫는 <마리오의 침대; 2009년>2) 못지않게, 연작집 <타워>에 수록된 단편들 역시 신랄한 사회풍자물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흘러넘친다.

<타워>에는 부동산 투기꾼과 위선적인 학자, 무사안일만 추구하다 파국을 방관하는 정치인들, 부조리한 관료조직 그리고 심지어는 테러리스트와 암살자까지 득실댄다. 하지만 작가의 눈은 사회구조적 모순에 메스를 들이댈 따름이지 그러한 질곡에 발을 접질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깔아뭉개지는 않는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구조적인 악에서 100% 자유로울 수 없다는 관점에서 배명훈은 등장인물마다의 사연과 속사정에 귀 기울이며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 [타워]에서 배명훈은 문제를 파헤치고 욕만 퍼붓는 대신 바로 그 안에 바로 우리와 같은 인간이 있음을 따스한 눈으로 들여다본다. ⓒ오멜라스


배명훈의 이러한 성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타워>에 수록된 단편 <자연예찬>에 등장하는 인기작가 K라는 인물이다. 재개발 사업이 추진 중이던 빈스토크의 한 층에서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자, 한 언론이 대중 영향력이 큰 작가 K에게 예전처럼 정부비판 컬럼을 의뢰한다. 하지만 당도한 원고는 생뚱맞게도 자연예찬 일색이다. 이는 K가 만일 자신이 정부권력 비판에 총대를 메고 나섰다가 얼마 전 뇌물로 받은 해외 고급주택이 들통 나지는 않을까 우려한 까닭이다.

그러나 배명훈은 K를 무조건 부정한 돈의 노예가 된 부패작가로 손쉽게 몰아가지 않는다. 저소공포증이 심한 K는 평생 빈스토크 50층 이하로 내려갈 수 없는 사람이고 뇌물로 받은 스페인 주택 주위의 감탄할만한 풍광은 그곳에 설치한 로봇의 눈을 통해 책상 앞 모니터로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뇌물을 포기하면 어차피 가볼 수도 없는 세상을 멀리서나마 지켜볼 수 없음은 물론이고 K를 위해 그 주택을 관리하는 아르바이트 여학생도 해고해야 한다.

K의 스폰서가 그 학생에게 꽤 후한 보수를 지급하고 있어 만일 모든 게 까발려지면 그녀는 대학을 그만둬야 할 판이었다. 끈덕지게 졸라대는 기자에게 K는 마침내 심사숙고 끝에 거침없는 대정부 비판문을 건넨다. 후폭풍은 예상보다 컸다. 정부권력에 기생하는 자들은 작당하여 K를 사회에서 매장하기 위해 그의 모든 치부를 까발린다. K 자신도 자신의 치부가 그렇게 많았다는 사실에 놀랄 정도로.

세상을 살다보면 K와 같은 선택의 기로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작은 악을 저지른 사람은 사회의 구조적인 악을 비판할 자격이 없는 것일까?

이런 논리대로라면 능력이 많을수록 그리고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일수록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도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기 어려워질 것이다. 개인의 참회와 사회의 구조적 비리 척결 중 어느 쪽이 더 현실적으로 쉬운 일일까?

K의 경우 마침내 더 크고 근본적인 사회악을 뜯어고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악이 만천하에 공개돼도 좋다고 결심하기에 이른다. 권력의 악을 죽어라 욕하는 소설을 쓰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악에 휘둘려온 문화엘리트를 가볍게 손가락질하는 대신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균형추가 되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며 관찰하는 배명훈의 방식은 아무나 따라하기 쉽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한다. 배명훈은 결과보다는 원인과 동기를 거슬러 올라가보고 기다린다. 이러한 장고(長考) 스타일은 <타워> 연작들뿐 아니라 또 다른 단편 <안녕, 인공존재; 2009년>3)에서도 반복된다. 여기서 목매 자살한 아내를 위한 조사(弔辭)에서 미국인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아내가 타협했다면 그것은 아내가 비굴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그만큼 말도 안 되게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아내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 “안녕, 인공존재!”, <안녕, 인공존재!> 수록, 북하우스, 2010년, 103쪽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부조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도 일면적이지 않다. 이런 소재나 주제를 다룬 통속적인 작품들에서 주인공은 대개 자신과는 마치 무관한 양 목청을 돋운다. 하지만 배명훈은 보다 현실적이다. 그는 사회에 만연한 악이 어느 한 사람이나 집단만의 책임이 아니라 대체로 내 자신과 주변 지인들까지 함께 먹이사슬처럼 꿰어놓은 원죄임을 상기시켜준다.

<타워>에 실린 또 다른 단편 <동원박사 세 사람 - 개를 포함한 경우>를 보자. 빈스토크 미세권력연구소의 정 교수와 휘하 연구진은 야당 후보의 의뢰를 받아 선거를 앞두고 현직 시장의 권력구도를 파악하는 조사에 착수한다. 물리적인 중력장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는 권력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제하고 영향을 미친다는 정 교수의 가설은 그가 뇌물로 위장해 전자태그를 붙여 배포한 고급 술병들의 유통경로를 연구진이 추적하면서 설득력을 얻어간다.

나중에 가서 연구진은 당혹스런 결론에 도달한다. 권력장은 중력장과 마찬가지로 불연속적이지 않고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들과 긴밀하게 연계된 연속 스펙트럼임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연구원들은 물론이요, 이 연구의 창안자였던 정 교수 역시 이러한 권력장에서 벗어난, 객관적인 관찰자가 결코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정 교수는 살인자가 되고 연구원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친다.

결국 우리 모두 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정부분은 권력장에 잠겨 있는 것이다. 작가의 이러한 시각은 같은 선집에 수록된 <자연예찬>에서도 확인된다. 여기서 여기자 D는 작가 K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더 이상 쓰지 않는 이유가 뇌물로 받은 고급저택 때문이란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마음 속으로 경원한다. 하지만 다름 아닌 뇌물의 대가로 D가 지금의 일자리에 취직됐음을 알고 나서는 망연해진다. D의 돈 많은 부친이 누구나 선망하는 빈스토크 공화국에 딸의 일자리를 마련해주려 손을 썼던 것이다.
 




회사로 돌아가서 D는 K의 원고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내려 갔다. 그러고는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었다.
‘맞아, 자연이 뭐 어때서! 글만 좋으면 됐지. 나머지 원고 반은 언제쯤 완성하려나.’
                                                       — “자연예찬”, <타워> 수록단편, 오멜라스, 2009년, 62쪽

마냥 배꼽잡고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에 대한 해학적인 묘사. 배명훈이란 작가의 참맛은 바로 이런데 있는 것이 아닐까. 그는 문제를 파헤쳐놓고 욕만 퍼붓지는 않는다. 그 안에는 바로 우리 같은 인간이 있으니까.





1) 스팀펑크가 두각을 나타낸 시기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이며, 이 용어는 사이버펑크(cyberpunk)에다 사이버(cyber) 대신 증기기관의 증기(steam)를 넣어 만든 조어다. 이 하위 장르는 여전히 빅토리아 여왕이 다스리는 19세기 영국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시대를 배경으로 주 동력원이 증기기관인 가상의 세상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이 세계는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이용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일종의 평행우주 이야기나 대체역사 이야기와 접목될 소지가 있다. 예컨대 키이쓰 로버츠(Keith Roberts)의 대체역사 장편소설 <파반 Pavane; 1968년>은 증기를 동력원으로 삼은 디스토피아 풍의 영국 사회를 보여준다.

2) 이 SF적인 결말을 설명하면 직설적인 스포일러가 되므로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생략한다. 선집 <안녕, 인공존재!; 2010년>에 재수록된 단편이다.

3) 단행본 <안녕, 인공존재!; 2010년>에 재수록되었다.

(3713)

뉴스레터 구독신청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