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한국 엔지니어, 세계 최고 수준”

과학자 이야기 / 카이스트 안성태 교수

카이스트는 지난해 케이스쿨(K-school)을 만들었다. K스쿨은  창업을 가르치고 실제 창업하도록 도와주는 창업석사과정을 운영한다.

이 K스쿨의 안성태 전임교수(62)는 이력이 매우 특이하다. 카이스트에서 석사를 마치고, 키스트(KIST)에서 의무 근무기간 3년을 끝낸 뒤 1983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으로 건너가서 반도체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케이스쿨 전임교수인 안성태 박사 ⓒ ScienceTimes / 심재율

케이스쿨 전임교수인 안성태 박사 ⓒ ScienceTimes / 심재율

졸업 후 미국 회사에 잠시 있다가, 한창 호황이던 일본으로 건너가 샤프전자에서 3년을 근무했다. 그 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로 와서 8년을 일하는 동안 새 사업부를 만들어 성공시켰다.

한국-미국-일본에서 일한 경험 가져

새 사업부는 당시만 해도 수입품에 의존했던 휴대전화의 디스플레이 구동IC 부품을 국산화했다. 여러 부서에 흩어져있던 직원 100명을 한 곳으로 모아 독립적으로 움직였으니, 일종의 사내벤처기업을 운영한 셈이다. 그가 맡은 사업은 5억 달러 수준으로 커졌다.

자신을 과학자로만 생각하다가, 사업가의 기질을 발견한 그는 2000년에 실리콘 밸리로 건너가 리디스 테크놀러지 (Leadis Technology)를 창업했다. 우리나라에 한참 벤처기업의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 리디스 테크놀로지는 불과 4년만인 2004년에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킬 만큼 모든 것이 신속하게 성장했다.

그렇지만, 그는 2006년 회사를 미국인 후임자에게 물려주고 갑자기 조기 은퇴를 하고,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대략 8년을 외국에 살면서 여행하고 배우러 다녔다”고 안 교수는 말했다. 중국에 3년동안 머무는 동안 중국어도 배우고 칭화대학교에서 EMBA과정을 마쳤다. 호주에 가서는 와인 만드는 법을 배웠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1년 반 사는 동안 외국어와 요리를 배웠으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틈틈이 제주도에 살 집을 지었고, 스코틀랜드에서는 1년동안 가구학교를 다니면서 목공 실력을 길렀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가구학교에서 가구제조법을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안 교수는 주말에는 대전을 떠나 제주도 집에 가서 공방에 들어가 나무를 만진다.

조기 은퇴를 결행하고 투자회사에서 파트너로 일하던 안 교수가 케이스쿨 교수로 온 것은 스탠포드 대학 선배가 ‘카이스트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W8건물에 들어선 K스쿨은 지난해 9월 처음 학생을 모집했는데 벌써 학교를 휴학하고 창업하러 떠난 학생들이 나왔다. 제주도에 가서 여행객을 상대로 여행물품을 임대하는 다소 특이한 사업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일종의 ‘공유’개념의 사업이다.

K케이스쿨은 교내 16개 학과와 공동으로 기술 기반의 창업가 육성을 위한 ‘창업석사’과정을 운영한다. ‘창업석사’는 논문 중심의 학위제도에서 벗어나 기업가정신을 교육시키고 졸업 후 실전 창업이 가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1년 과정이다.

졸업 학점 33학점 중 21학점이 창업가 도구상자, 스타트업 재무와 마케팅, 스타트업 현장실습과 경영실제 등 창업실무이다. 교수진은 카이스트 16개 학과의 교원과 창업경험을 가진 신규 교원으로 구성됐다.

창업석사 과정 전임교수로 새 역할

미국 일본 한국에서 각각 일한 경험을 가진 안 교수는 3개국의 특징을 어떻게 파악할까? 한국 회사는 삼성전자만 겪어봤기 때문에 일반적인 평가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안 교수는 “한국 엔지니어들이 세계 최고수준으로 유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일본 회사는 기초는 튼튼하지만, 너무 느리고, 한국보다 회사의 위계질서가 더욱 강했다. 반도체 장비를 구매할 때, 삼성전자는 과장 정도의 실무자가 전권을 가지고 결정했다.

공장같은 느낌을 주는 케이스쿨  ⓒ ScienceTimes / 심재율

공장같은 느낌을 주는 케이스쿨 ⓒ ScienceTimes / 심재율

안 교수는 “실리콘 밸리는 다양성이 뛰어나다. 아이디어가 사장되지 않고 존중되고 자유로움과 다양성 속에서 수월성이 존중받는 곳이다.”고 정의를 내렸다.

우리나라 엔지니어의  단점이라면 미국에서 느끼는 넓은 시야는 부족하다. 안 교수는 “한국은 마케팅이나 디자인 보다, 엔지니어가 세계적인 수준이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중국 인은?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하고, 세계적인 인맥을 가졌다.

세계를 돌고 돌아 이제 그의 시선은 다시 한국으로 왔다. 카이스트의 젊은 학생들을 데리고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창업열기를 전국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곧 창업에 대한 온라인과정도 개설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그런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고 안 교수는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일은 무엇이었을까? 중학생 때 보이스카웃 대원으로 일본을 방문한 것을 꼽았다. 당시만 해도 한일 격차는 매우 컸으며, 전세계에서 모인 수천명의 중학생을 통해 그는 넓은 세계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군대도 면제, 학비도 면제, 장학금도 주고 외국에 논문도 쓰게 하는 카이스트를 졸업한 것도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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