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스템 반도체 산업 발전 선도

[과학과 기술 인터뷰대담] 2019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 - 김기남 삼성전자(주) 대표이사 부회장 인터뷰

<대담> 김기남 삼성전자(주) 대표이사 부회장
            류준영  머니투데이 정보미디어과학부 기자(과학과기숦 편집위원)
김기남 삼성전자(주) 대표이사 부회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김기남 삼성전자(주) 대표이사 부회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4차 산업혁명을 다른 말로 ‘제2의 반도체 혁명’이라고도 부른다. 대표적인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자율주행자동차·로봇 등은 반도체의 뒷받침 없이 이뤄낼 수 없는 탓이다. 첨단 반도체 기술을 쥔 국가가 4차 산업혁명의 승기를 잡을 것이란 전망이 그래서 나온다.

김기남 삼성전자(주) 대표이사 부회장은 30여 년 전 1메가 D램을 개발을 주도하며 우리나라 반도체 신화를 일궈낸 주축이다. 이후 메가, 기가, 테라바이트급 메모리로 발전을 지속하며 김 부회장의 관심은 ‘스마트 월드’를 향했다. 그가 말하는 스마트 월드는 초(超) 고부가가치 서비스와 설루션으로 우리 삶을 한 차원 더 발전시키는 것. 물론 그 중심엔 반도체가 있다.

김 부회장은 다수의 세계 최초 메모리 기술을 개발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 국가로 우뚝 서는데 기여했다. 또 시스템 반도체 제조공정 설계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확보해 한국 시스템 반도체 산업 발전을 크게 도약시켰다. 그의 대표적 업적으로 세계 최초 14나노 핀펫과 극자외선 적용 7나노 제조공정, 고성능 시스템온칩 설계 기술 및 첨단 이미지 센서 등을 꼽는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김 부회장은 국내 과학기술 분야 최고 권위상인 ‘2019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그가 몸담은 반도체 업계가 지금 가장 큰 고비를 맞았다. 일본 수입 규제, 반도체 가격 하락 등 여러 여건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이 파고를 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리란 위기감이 나라 전체로 팽배하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반도체 소재 부품 관련 원천기술의 부재를 뛰어넘을 묘책은 과연 있는 것일까. 이에 관한 질문에 급박한 일정 속에서도 몇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김기남 삼성전자(주) 대표이사 부회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김기남 삼성전자(주) 대표이사 부회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류준영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 먼저 부탁드립니다.

김기남 우선 국내 과학기술 분야 최고의 명예와 권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하기까지, 지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반도체 기술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가 세계 선두에 올라서는 과정에서 제가 일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함께 밤을 지새우며 연구에 매진했던 선후배 연구원들께도 감사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삼성전자를 포함, 대한민국의 IT기술이 글로벌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은 선후배 과학기술인들의 도전정신, 특히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 나아가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혁신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과학도로서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받은 이 상에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더욱 경주하라는 격려와 응원이 담겨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미래 혁신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개발을 위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우리 미래를 이끌어 갈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도 더욱 관심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류준영 그동안 여러 연구개발 성과를 내셨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성과는 무엇입니까.

김기남 수없이 많은 날을 반도체와 함께해 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30여 년 전 1메가 D램을 개발한 것입니다. 당시 삼성전자는 반도체 기술을 외국에서 도입했지만, 내부적으로 기술이 축적되지 않아 사업을 지속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삼성전자는 독자적인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현지법인의 연구팀과 국내 반도체연구소의 연구팀에 각각 1메가 D램을 개발하도록 하는 경쟁 체제를 가동시켰고, 제가 몸담았던 국내팀의 기술이 채택됐습니다. 이것은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자신감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저에게는 본격적인 반도체 인생이 열리는 순간이었고, 삼성전자 반도체인의 신조 1번 항목인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라”를 가슴에 품은 시점이 됐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저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엔지니어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이후 한국의 반도체 기술은 메가에서 기가, 지금의 테라바 이트급 메모리에 이르기까지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됐습니다. 그 당시 연구원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연구에 매진했던 기억은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류준영 반도체 기술이 만들어 갈 미래는 어떤 모습이며, 그것이 인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하십니까.

김기남 반도체 혁신은 인류의 삶과 생활 방식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그 혜택을 소수가 아닌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합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4차산업혁명시대의 도래에 따라 데이터 중심의 인공지능 기술이 더욱 고도화되고 정보통신 기술 발전과 함께 세상의 중심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미래는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반복적이며 일상적인 삶의 비효율적인 부분은 최소화하면서, 초(超)고부가가치 서비스와 설루션으로 우리의 삶을 한 차원 더 발전시키는 스마트한 세상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습니다. 비록 아직 반도체의 수준은 인간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나 과거 엄청난 크기에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했던 ‘에니악’에서 손안에 들어오는 저전력 스마트폰으로 발전했듯이, 반도체는 인간의 기억, 사고, 인지능력을 뛰어넘기 위해 빠르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반도체의 인공지능 기술이, 지금과는 다른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 인류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고 반도체 업계와의 협력을 통해 차세대 디자인, 설계 등을 포함한 공정, 혁신소재, 설비 등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고자 합니다.

류준영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분야를 계속 리드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기남 무엇보다 사람이 핵심입니다. 우수 인력 확보는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확보 및 유지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학계와 기업 모두 우수 인력이 자신의 전문성을 충분히 키울 수 있는 연구 환경을 제공하고 나아가 과학적 원리를 제대로 규명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토대를 지원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국내 유수 대학과의 산·학 협력을 통해 인력 양성 및 연구개발 저변 확대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산학협력 분야를 수학·물리·화학 등 기초 이학 분야까지 확대하고, 대학이 미보유한 고가 장비와 첨단 공정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국내 대학의 반도체 연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류준영 연구자이자 경영인으로서 추구하는 철학과 좌우명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십시오.

김기남 지난 30여 년, 저는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 입사해서는 선배들의 지원 속에서 반도체 개발의 최일선에서 밤낮없이 뛰었고, 맡은 업무에 대해서는 어떠한 난관이 있어도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그런 치열한 과정에서 30년 정도 되니, 어떤 사안에 대해 확실하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됐고, 미래를 내다보는 경영인으로서의 시야도 생긴 듯합니다. 30여 년 전, 제가 낯선 이름이었던 반도체 소자를 미래 유망 분야로 선택하고, 열정과 믿음을 바탕으로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Never Give Up’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마음에 새긴 것이 오늘의 저를 가능하게 한 밑바탕이 됐습니다.

류준영 최근 일본 수출 규제 관련 대응책 마련으로 무척 고심이 크실 것 같습니다. 특히 주된 수출 규제 품목이 우리나라 산업을 이끄는 반도체 산업에서 중요한 소재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걱정도 큰 상황입니다. 이번 기회에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미 글로벌 분업체계가 일상화된 시대에 효율적인 대안인지에 대해서도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이와 관련해 부회장님께 현재 어려운 상황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혜안과 고견을 청해봅니다.

김기남 우리나라는 제조 경쟁력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이미 검증된 여러 국가의 소재·부품을 사용해 왔으며, 이를 통해 선순환적인 글로벌 분업 체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수출규제와 같은 외부 리스크를 고려한다면,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편중을 줄이고 국산화를 포함해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실효성 있는 소재·부품 국산화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원류 단계부터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며 이 부분에 대해 세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정부 차원의 연구개발 로드맵 수립 시 산업현장의 의견이 더 반영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2001년 ‘소재·부품 특별법’ 제정 등의 노력으로 소기의 성과를 이뤘으나 적기 상용화를 위해서는 산업계의 주도적인 참여와 시의적절한 제도적 지원 등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기업 차원에서는 총체적인 SCM(Supply Chain Management, 공급망 관리) 경쟁력 제고 노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동안은 기술 혁신에 대해서만 강조되어 왔으나, 이제는 기술뿐만 아니라 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공급망 관리 전반에 대한 근원적인 혁신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앞서 말씀드린 정부와 산업계의 노력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되어야 합니다. 국내 소재·부품 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도달하기에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단기성과에 치중하지 않는 지속적인 투자와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현재 대외 환경은 어려운 상황이나, 우리 모두 각자 위치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기업이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제도적인 환경이 조성된다면, 대한민국, 나아가 글로벌 반도체 업계가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류준영 최근 뉴스에서 많이 보도됐던 내용은 삼성전자가 271개 반도체 협력사에 총 323억 3000만 원 규모의 역대 최대 인센티브를 지급했다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경기 불황과 대내외적 악재 속에서도 협력사와의 동반성장 의지를 공고히 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계기나 기대 효과, 그리고 앞으로 부회장님께서 그리는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과 협력의 모습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기남 ‘협력회사는 우리의 소중한 동반자’라는 경영철학으로 지금까지 높은 성장과 발전을 함께해 왔습니다. 현재 글로벌 경쟁의 패러다임은 개별 기업의 경쟁에서 협력사를 포함하는 생태계 간 경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협력사의 경쟁력이 삼성전자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철학 아래 다양한 동반성장 활동을 지속해 왔습니다.

협력사 인센티브 제도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며, 2010년 제도를 시행한 이래 총 3059억 원의 금액을 생산·품질 관련 협력사에서 환경안전·인프라, 설비 유지 보수, IT 협력사 등으로 지속 확대하는 등 국내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힘써 오고 있습니다. 비록 올해는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영 환경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동반성장 파트너로서 협력사와 신뢰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상생의 결과는 협력사 임직원 사기 진작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기여함은 물론, 사업장 내 안전 문화 정착 등 실질적인 효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는 인센티브 지급 대상을 1차 협력회사에서 2차 협력사까지 확대 운영함으로써 협력사와의 동반성장 의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대외적으로는 내수 경기 활성화, 대기업과의 임금격차 해소 등의 사회적 책임에 동참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은 상호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를 통한 파트너십 강화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대기업은 중소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업종별 필요 역량을 지속 지원하면서, 이러한 상생의 온기가 2, 3차 협력사까지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각 연결고리를 튼튼히 만들어가는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어떠한 경영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한 상생 협력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발간하는 ’과학과기술’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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